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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있는 자는 포기를 모른다(행20:17~35)

847호 · 2016-05-20

지난 4·13총선 때 후보자의 모습을 기억합니까? 그들은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몸이 부서져라 하고 자신을 홍보하는데 열을 올렸습니다. 비린내 나는 상인의 손도 덥석 잡았고, 노골적으로 욕을 하는 시민 앞에서도 화내지 않고 90도로 고개 숙여 인사를 했습니다. 왜 그들이 그랬을까요? ‘국회의원이 되리라’는 목적이 있었기에 그들은 부끄러움도, 자존심도 버렸고, 또한 피곤함도 없이 그렇게 달렸던 것입니다.

제31회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올 8월에 열립니다. 지금 태릉선수촌에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막바지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집에도 가지 못하고, 쉬지도 않고 훈련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억울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따겠다는 분명한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미국에 집회 차 가면 우리 성도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 중에 아직 영주권이 없는 자들을 보면 눈물이 날 만큼 고생이 심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목사님, 괜찮습니다. 영주권만 나오면, 시민권만 나오면 당당한 직업을 갖고 자식들을 교육시킬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목적의식이 분명하면 삶이 달라집니다. 목적의식은 ‘방향’입니다. 방향을 잡아야 달려갈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이나 믿음의 전당에 오른 믿음의 선친들은 다 확고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외국에 도착하여 입국심사를 받으면 꼭 묻는 게 있습니다. “방문한 목적이 무엇입니까?(What's the purpose of your visit?”)입니다. 그때 정확히 방문 목적을 말해야 합니다. 여행을 왔다든지, 세미나에 참석하러 왔다든지, 비즈니스 때문에 왔다든지 말입니다. 대충 얼버무리면 입국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방문 목적도 분명해야 한 나라에 입국이 허락되는데, 하물며 인생의 목적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여러분, 목적이 있어야 달성이 있습니다. 과녁에 화살을 쏘듯 말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왜군을 무찌르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거북선을 건조하고, 군사를 조련하며, 누구도 생각지 못한 창의적인 전략을 끌어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목적은 우리나라의 독립이었습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는 굴욕적인 한일합방의 주적(主敵) 이토 히로부미를 만주 하얼빈 역에서 암살한 것입니다. 이승만과 김구 선생을 비롯한 많은 독립투사들이 조국을 기필코 독립시키고야 말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저항했고, 해외로 뛰어다니며 대한민국이 약소민족으로서 일본에게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알리는 등, 민족을 다시 일어서게 하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새마을 운동을 주창하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아래 ‘우리도 한 번 잘살아 보자’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국민들을 독려했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일생을 바쳤습니다.

성경의 인물도 그렇습니다. 모세가 도망쳐서 40년을 광야에 살면서 그가 낙심하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그에게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기 민족을 애굽으로부터 탈출시켜야 한다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에 방황하지 않았고, 또 그에게 80의 나이에도 40대의 기력이 회복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땅에 비를 내리게 해서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바알을 섬기는 자들에게 나타내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당당히 450대 1로 싸웠고,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던 것입니다(왕상18). 엘리사는 기필코 엘리야보다 갑절의 영감을 받겠다며 엘리야를 좇더니 그의 계승자가 되어 정말 갑절의 능력으로 많은 일을 행했지 않습니까(왕하2:9).

사도 바울이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왜냐?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는 그것, 즉 그 날에 받을 큰 영광이란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소경 바디매오도 꼭 눈을 뜨겠다는 목적이 있었기에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지 예수를 목청껏 불러 소원을 이뤘고

(막10:46~52), 수로보니게 여인도 개 취급을 받았지만 딸을 고치겠다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으며(막7:25~30), 누가복음 11장에 나오는 친구에게 떡을 구하는 자나 누가복음 18장에 재판관을 찾아간 과부의 결말도 목적이 분명한 자가 일군 쾌거입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마9), 반드시 전쟁에 이겨 이스라엘의 우두머리가 되겠다던 입다(삿11), 친구를 중풍병에서 낫게 하겠다는 목적이 있었던 네 친구(막2:1~5), 꼭 아들을 낳는 것이 목적이었던 한나(삼상1), 이 모두 목적이 분명한 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감람산에 올라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신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찢어 인류를 구원하라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에 그 분은 주야로 기도에 몰두하신 것입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6:38~39). 그러나 그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주님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잠시도 기도하지 못하고 자고 있습니다. 왜요? 목적이 없으니까요.

제가 이단이네, 가짜네 하는 언론 속에서 꿋꿋할 수 있었던 것은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한 상에 앉아 떡을 떼며(눅22:30), 열 고을을 다스릴 권세

(눅19:17)가 제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가 사람이 많건 적건 최선을 다해 설교하는 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게 된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가르쳐서 만물과 만인 앞에 당당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목적의식이 없으면, 혹은 목적의식을 상실하면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민족 꼴이 됩니다. 그들이 출애굽 당시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가겠다는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그 의식을 상실하자 불평하고, 실망하고 포기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었기에 출애굽 1세대로서 가나안 땅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삼손도 그렇습니다. 선택받은 나실인으로 태어나 사사가 되었지만 거룩한 나실인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블레셋으로부터 구원해야 한다는 목적을 상실했기에 한 여자에 휘둘리다가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두 눈이 뽑히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삿13~16).

여러분, 하나님은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는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지으셨는데,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삽니까? 무엇을 목적하며 살고 있습니까?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입니까?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기다리는 하늘의 시민권을 쟁취하는 것에 있습니다(빌3:20). 그 날 주님께 칭찬받고 면류관을 받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적입니다. 그래서 봉사하고, 헌금하고, 주일성수하고,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이관섭 장로는 현재보다 몇 십 배 좋은 직장에서 오라고 해도 장로의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고사했습니다. 그의 목적이 바로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생의 목적도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되겠다, 무엇을 하겠다, 무엇을 이루겠다는 목적이 있어야 노력하고, 인내하고, 기쁨으로 일하기 때문입니다. 목적에 이르는 길이 험난할 수도 있습니다. 힘에 겨울 수도, 수치와 부끄러움을 받을 수도, 자존심을 버려야 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야곱이 라헬을 얻을 목적이 있었기에 7년을 수일처럼 느꼈고(창29:20),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할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에 부끄러움을 참았던 것을 기억합시다(히12:2). 거목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할렐루야!

배를 만들기 전에

바다를 동경하라

과녁이 있어야

화살을 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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