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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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7호 목차 › 성도들의 간증

어설프게 죽은 돼지 때문에

847호 · 2016-05-20

필자가 신학생일 때의 일이다. 기도원 집회 중에 식당에서 급히 돼지 잡을 사람을 찾았다. 그런데 마침 봉사자 중에 그 누구도 경험자가 없는 것이었다. 어쩌랴! 별 수 없이 그래도 요리 경력이 있어 칼 좀 써 봤다는 이와 힘 좀 쓴다는 젊은이들 몇이 나섰다.

주방 바닥에 누워있던 건장한(?) 돼지는 제 운명을 눈치 챘는지 요란스럽게도 온 몸을 뒤틀어 댔다. 다리에 줄이라도 묶어두면 좋았으련만 어처구니없게도 초보 도살자들은 다리 하나씩을 붙잡고 그렇게 돼지와 생사를 가르는 씨름을 시작했다. 하지만 ‘단 칼에 멱을 따야 된다’던데 안타깝게도 칼잡이의 칼은 빗나가고 말았다. 더구나 목에 깊이 박힌 칼 때문에 ‘꽥꽥’거리며 몸부림치던 돼지의 기세에 놀라 어설프게 돼지 다리를 잡고 있던 이가 그만 다리를 놓치는 일대 사건이 발생했다. 결국엔 아뿔싸! 돼지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목에 칼을 꽂고는, 피를 뚝뚝 흘리면서….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돼지와 그 돼지를 반드시 잡아 성도들의 주린 속을 달랠 제물로 쓰겠다는 이들의 경주는 그렇게 시작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당 바닥은 돼지 피로 난장판이 되었고, 돼지 멱따는 소리는 식당을 넘어 기도원 경내에 울려 퍼졌다. 나중엔 눈이 뒤집힌 돼지가 주방을 장악한 나머지 사람들이 쫓겨 다니는 촌극이 벌어졌다. 어설프게 칼 맞은 돼지 한 마리 때문에…. 돼지 입장에서야 그냥 얌전떨고 있고 싶었겠는가! 가만히 목 내밀고 있다간 한방에 훅 가는 상황인 것을. 이름도 못 남겨 보고, 가죽조차 쓰일 새 없이 그렇게 허망하게 말이다.

가만히 그 때의 상황을 돌이켜볼 때면 헛헛한 웃음과 함께 항상 송구한 맘이 앞선다. 주님께 말이다. 이 한 몸 바쳐 온전한 제물이 된다면 잔칫상에 오른 돼지 마냥 모든 이들의 기쁨이 되어 줄 터인데…. 가정에서고, 교회에서고,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체면이란 게 또 무엇인지, 오해받고 무시당하면 슬그머니 치솟아 오르는 이 요란한 성미여! 이 때문에 주님 속을 얼마나 아프게 했을꼬?

십자가의 핵심은 자기 부인이 아니던가! 못된 자아는 온전히 깨어져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살고, 가정이 살며, 기업과 나라가 산다. 결코 적당히 죽어서는 안 된다. 반만 죽어서도 안 된다. 목에 칼 꽂고 반쯤 죽은 돼지가 기도원 식당을 무단 점령해 버렸듯, 꼭 반쯤 죽은 이들 때문에 심령들이 상하고 조직이 멍든다. 야고보서 1장 3절에서 야고보 사도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권면하고 있다. 치사하고 서러워도, 억울하고 또 속이 상해도 온전히 죽자.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 거룩한 산 제물이 되자.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는 바울의 고백이 우리 고백이 되자!

신현명 목사

yeddo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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