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꼴은 시간과 정비례한다 (고전11:1)
여러분! 저를 보고 예수를 믿으십시오. 믿음에 관한 한 저를 닮으십시오. 이 말에 코웃음을 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교만하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을 줄 압니다만, 저는 당당히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11:1)고 한 것처럼, 저 역시 다른 것은 몰라도 믿음에 관한 한 ‘나를 본받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고 물으십니까? 첫째, 저는 신앙에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는 누가복음 14장 26절의 말씀에 순종하고 주님을 좇았습니다. 신앙에 저해요소는 그것이 무엇이든 다 잘라냈습니다. 어머니의 통곡소리도 뒤로 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들의 절규도 뒤로 하고 벧세메스로 가는 어미 소의 심정으로 30년을 곧게 왔습니다.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귀신을 쫓는다고 교계의 심판대에 섰을 때도 저는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는 자의 사후의 영’이 귀신이라는 사실, 이것만 번복했어도 그토록 험한 길을 걸어오지 않았을 겁니다. 교계에서 제명되지 않고 편안하게 목회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제가 경험한 바를 어떠한 문화적인 지식 앞에 팔아먹을 수는 없었습니다. 저를 통해서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가 여실한데, 타협이란 있을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형언할 수 없는 핍박과 모함이 다가왔지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 살 소망을 잃을 정도로 모진 것이었습니다. 힘들었습니다. 맞서 싸울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저는 터득한 것이 있습니다. 날아오는 돌을 받아 그것으로 담을 쌓는 것이었습니다. 30년 동안 저는 그들이 던지는 돌을 받아 아주 높고 튼튼한 돌담을 쌓았습니다. 내 성을 구축한 것입니다. 이제 제 아무리 큰 돌을 제게 던진다 해도 저와는 무관합니다. 감히 돌담을 깨뜨릴 자는 이제는 없습니다. 그들은 제게 돌을 던졌지만, 저는 그 돌을 터전의 재료로 삼은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신앙에 타협하지 마세요. 직장에서 상사가 돼지머리에 절한다고 당신도 하면 안 됩니다. 집안의 장손이라고, 큰 며느리라고 제사상에 절하고, 제사음식 장만하면 안 됩니다. 물론 핍박이 옵니다. 그러나 그 핍박을 이기면 하늘의 상이 있습니다. 의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5:11 ~12).
둘째, 저는 무슨 일에든 늘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제 사무실 뒤편에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라는 글씨가 새겨진 액자가 걸려 있습니다. 저는 성도들을 상담할 때 그 액자를 쳐다보면서 합니다. 이런 경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면 답이 나옵니다. 그것은 정답이요, 해답이었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많은 실수를 했지요. 인간적인 생각으로 성도들 대할 때도 있었고,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할 때도 있었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라면 이런 경우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면 바로 중심이 잡혔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을 더 사랑할 수 있었고, 병든 자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할 수 있었고, 나아가서는 이성적인 면이나 물질적인 면에서 깨끗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늘 주창하는 말이 있지요. ‘정직하고 분명하면 떳떳하고 당당하다!’ 이것은 노력해서 되기란 어렵습니다. 고위관직에 있는 사람이나 심지어 목회자들도 넘어지는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 ‘예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면 어떨까?’ 하고 자신에게 먼저 질문한다면 정직할 수 있습니다. 분명할 수 있습니다. 절대 불법을 행하지 않을 것이고, 남을 미워하지 않을 것이며, 가난한 자를 학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셉이 그 샘플입니다.
저는 여러분들도 무슨 일에든, 어느 때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고 늘 생각하고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절로 ‘믿음에 덕, 덕에 지식, 지식에 절제, 절제에 인내, 인내에 경건, 경건에 형제 우애, 형제 우애에 사랑’(벧후1:5~7)이 공급될 것입니다.
셋째, 저는 매사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 중 하나가 바로,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는 말씀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면 하나님이 어떻게 보상하시는 줄 압니까?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눅19:17).
사실 이 진리는 톡톡한 대가를 치른 후에 제가 깨달은 것입니다. 강화에서 기도하지 않고 단에 섰다가 입이 막혀 개망신을 당하고, 또 미국에서는 마지못해 설교하러 갔다가 눈이 터지는 등 하나님의 회초리를 맞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열 명, 백 명이 있건, 만 명, 십만 명이 있건 최선을 다합니다. 또한 찬양을 해도 목이 터져라 춤을 추며 최선을 다합니다. 다윗이 법궤가 들어올 때처럼 말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저에게 큰일을 맡기셔서 오늘날 세계를 메주 밟듯 하며 선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은 대충대충, 얼렁뚱땅,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하면 안 됩니다. 세상일도 그렇게 하면 회사에서 잘리고 사장에게 미운 털 박힐 텐데, 하물며 하나님 일이겠습니까? 성경에도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2)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25:21).
넷째, 저는 일생을 기도로 살았습니다. 제 목회 30년을 단 한 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기도 목회’요, ‘기도의 일생’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 힘든 세월을 꿋꿋이 버틸 수 있었느냐?’, ‘어디서 그런 능력이 나오는가?’, ‘목회성공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으셔도 제 답은 오직 하나입니다. “기도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습니다.”라고 말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요, 천국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또한 기도의 풍족은 모든 것의 풍족이며, 기도의 부족은 모든 것의 부족입니다. 그래서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 4시간 기도합니다. 집회에 나가면 7시간 기도합니다. 저의 철칙입니다. 그것이 오늘의 저와 예루살렘 교단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도 기도하세요. 기도하지 않는 자에겐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마귀의 밥이 될 뿐입니다. 가능하면 부르짖고 기도하세요. 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잠언 13장 20절에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닮은꼴은 시간과 정비례한다는 말씀이지요. 우리는 30년을 함께 해왔습니다. 그러니 닮지 않았겠습니까? 부디 저의 단점은 보지 마시고, 제 장점을 닮고 본받으십시오. 그래서 주님 앞에 섰을 때 잘 했다 칭찬받고, 예수님과 한 상에 앉아 떡을 떼며, 다섯 고을, 열 고을의 왕이 됩시다. 할렐루야!
누구를 만나느냐가
인생의 성패를 가른다
강한 철이 연한 철을
강하게 만드는 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