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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호 목차 › 객원컬럼

은혜의 무게

727호 · 2014-02-01

작년 3월, 서울 구로동의 한 가정을 찾은 사회복지사는 기막힌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 날은 중증 치매에 걸린 어느 할머니를 찾아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찌르더라는 것이다. 다름 아닌 시신이 썩어가는 냄새였다.

화장실에 누군가 쓰러져 있는데 할머니는 누가 찾아온 줄도 모르고 그 시신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반듯하게 누워있는 시신 위로는 두툼한 이불이 덮여져 있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사인(死因)을 분석한 결과, 목욕탕에서 미끄러져 뇌진탕으로 그리된 일이었다고 한다. 알고 보니 시신은 그 할머니의 딸이었다. 정녕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치매가 심해서 자신의 과거는 물론 자기가 누군지, 가족이 누군지조차 잊어버리고 살아가던 할머니였지만 본능적으로 피가 끌렸나 보다. 이미 호흡이 끊어진지도 한참이 지났건만 할머니는 행여 딸이 추울까봐 이불을 가져다 덮어주었다고 한다. 그녀가 자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일어나면 함께 먹으려고 차려놓은 밥엔 퍼렇게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정말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가슴 시린 모정(母情)이 아닐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이다. 맞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이 크고 위대하지만 이보다 다 큰 사랑이 있음을 우리는 또한 잘 알고 있다. 이사야 49장 15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 자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그렇다. 하나님 아버지의 참 사랑이 그것이다. 언제나 변함없는 그 사랑이다. 때로는 우릴 낮추기도 하시고 시험하기도 하시지만, 이 또한 마침내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인 줄 우리는 잘 알고 있다(신8:16).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주어지는 삶의 무게 또한 더해가는 것 같다. 목사로서 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그러나 세월의 무게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무게가 있다. 바로 은혜의 무게가 그것이다.

내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위해 희생하신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오늘의 내가 있게 되었다. 모든 게 부족하여 천지를 분간하지 못했던 내가 그나마 이렇게 쓰임 받을 수 있게 된 것 또한 모두 귀한 종을 만나 그 분의 가르침을 얼추 흉내라도 내보려 했기 때문이다.

열아홉, 멋모르고 들어선 목회길이 벌써 25년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참 많은 이들과 더불어 울고 웃으며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다. 은혜를 아는 이가 적으니 더욱 그 은혜가 새롭다. 감사를 아는 이가 적으니 더욱 더 감사가 깊어진다. 목회자의 입장에서 보니 더더욱 주님의 사랑이 깊어만 간다. 새삼 스승의 존재가, 총회장 목사님의 존재가 더 크게 느껴진다. 갚을 길 없기에 감당할 수 없는 난망지은(難忘之恩)의 무게로 인해 매일 밤 두 무릎을 적시운다.

신현명 목사

yeddo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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