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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호 목차 › 성경 에세이

예복을 입어야지!

727호 · 2014-02-01

여보게!

과테말라 공항에 내리니 중년의 남자와 두 여인이 우리를 맞았네. 나는 그들이 집회를 주관한 목사와 그 일행인 줄 알았지. 통역관이 미처 도착하지 않아서 그저 인사정도만 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나중에 통역관이 와서 자세히 알아보니 여인 하나가 집회를 주관한 목사였고, 남자는 고메라 시의 시장이고, 다른 여인은 국회의원이었네. 시장과 국회의원이 우리를 환영하러 나온 거지.

그런데 그들의 옷차림이 아무리 봐도 시장이나 국회위원 차림은 아니었네. 손님을 맞으러 온 차림새는 더더욱 아니었지. 시장은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고, 두 여인도 그저 마실 가는 차림이었거든

며칠 후 그들이 나에게 은혜를 받는 기색을 포착한 나는, 손님을 맞이할 때는 그에 걸맞은 옷을 입어야 한다고 그들에게 가르쳤네. 의복을 갖춰 입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예절이라고 말일세. 그들 문화가 아직 거기까지는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하네.

여보게!

마태복음 22장에는 임금이 예복을 입지 않는 자를 내쫓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이 입혀주시는 의의 옷, 구원의 옷을 말하는 것이며,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인 회개와 믿음이라는 옷을 말씀하시는 것이지. 그러나 이 말씀은 실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이라네.

아주 오래 전의 일이 생각나네. 내가 미국에 처음 갔을 때, 나는 나를 초청한 한 박사의 안내로 상류층이 출입하는 한 클럽에 가게 되었는데, 거기는 반드시 정장을 입어야 출입이 가능한 곳이었지. 그래서 그 박사는 나에게 정장을 입으라고 했지만, 나는 고집을 부리며 편한 차림으로 그곳에 갔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서 나는 입장을 저지당했네. 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지. 결국 나는 그들이 준비해가지고 온 양복을 입고서야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다네. 그 클럽은 격이 있기 때문에 출입자의 의복에까지 신경을 쓴 거겠지.

‘내가 편하면 되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무리 세상이 변한다고 해도 예절은 있어야 하고, 격은 있다고 보네. 내 주가는 내가 높이는 것이 아니겠나.

물론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지만, 사람은 외관을 보지 않은가? 그런데 굳이 남에게 책잡힐 필요가 뭐가 있겠나.

옷이란 장소와 시간, 그리고 상대에 따라 갖춰 입는 것이 옳은 것이라네. 등산을 하는데 하이힐에 치마를 입고 가서는 안 되듯, 격 있는 자리나 사람을 만날 때는 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네. 그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고, 예절이지. 또 그것이 자기 주가를 높이는 것이라네.

내가 늘 말하는 것이 있지. 품위라는 그릇에 예절을 담으라고. 아름다운 사람도 좋고 멋진 사람도 좋지만, 품위 있고, 예절바른 사람이 제일이거든.

물론 옷으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되지. 그리고 값비싼 옷을 입으라는 것도 아니니 무리해서 옷을 살 것은 없네. 다만 내 형편 안에서, 상황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는 말이니까.

오늘 저녁 모임이 있다고? 학창시절 친구들이걸랑 편한 옷을 입고 가고, 혹 상사와 함께라면 적당히 갖춰 입고 나가게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에 들어왔느냐 …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마22:12~13).

朋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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