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없으면 눈 먼 소경이다 (사43:7~8)
저는 28년을 한결같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외쳤습니다. 아는 자만이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며 자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는 것이 없으면 할 일도 없습니다. 아는 것이 없으면 눈을 떴지만 소경이요, 귀는 있지만 귀머거리입니다. 사람구실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외국에 나가면 사실 소경이요 귀머거리입니다. 왜냐고요? 그 나라 말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통역하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밖에 나갈 수도 없고, 필요한 것을 구할 수도 없습니다.
답답한 노릇이지요. 그래서 깨달은 것이 ‘지식이 없으면 눈을 떴어도 소경’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자고로 배워야 합니다. 돼지는 그냥 놔둬도 돼지가 되고, 개도 그냥 놔둬도 개가 되지만 사람은 가르쳐야 사람이 되기 때문이고, 배워야 사람답게 살고, 배워야 사람대접을 받고, 배워야 사람구실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고 하는 겁니다.
‘지식이 없는 소원은 선치 못하다’고 잠언 19장 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식이 있어야 소원을 이룰 수 있고, 배워야 소원 성취한다는 겁니다.
먼저 배워야 할 지식은 영적인 것입니다. 이는 성경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딤후3:16). 또한 성경은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에 대해 말씀하고 있으며, 악한 마귀와 귀신, 그리고 천사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장래 우리에게 일어날 일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늘 상고함으로 영적인 지식을 갖춰야 합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9).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식의 근본이 되기 때문입니다(잠1:7). 그러므로 먼저 영적 지식을 갖춰야 합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6:3).
저는 이제 곧 해외선교를 위해 또 세계로 나갑니다. 그동안 눈 수술 때문에 약 석 달간 국내에 체류했는데, 이제 눈이 완치되었기 때문에 다시 세계 선교의 대장정에 나서려고 합니다. 제가 세계 선교를 통해 하는 일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 영적 지식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전하는 자가 없으면, 즉 가르치는 자가 없으면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
그 다음은 혼적인 지식도 갖춰야 합니다. 세상지식입니다. 지식을 갖추는 것은 호미 대신 포클레인을 쓰는 것과 같고, 도끼 대신 전기톱을 쓰는 것이며, 지게 대신 도르래를 쓰는 것과 같습니다. 이 지식이 인생을 편하게, 자유롭게,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배워야 합니다.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미국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말하기를 ‘교육은 신분상승의 도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공하려면 배워야 합니다. 신데렐라는 이야기 속 주인공이지 현실 속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분상승은 배워 성공해야 가능합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대국의 반열에 오른 것은 바로 교육에 박차를 가했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 나라가 반세기 만에 이렇게 성장 발전할 수 있었던 주요 동력은 바로 배움, 뜨거운 학구열 때문이었습니다.
일년지계(一年之計) 막여수곡(莫如樹穀)이요, 십년지계(十年之計) 막여수목(莫如樹木)이요, 종신지계(終身之計) 막여수인(莫如樹人)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한 해의 계책으로는 곡식을 심는 일만한 것이 없고, 십 년의 계책으로는 나무를 심는 일만한 것이 없으며, 평생의 계책으로는 사람을 심는 것이 으뜸’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을 심는 일이란 곧 교육이며, 이는 곧 교육이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젊은이들은 지금 좋은 옷 입고, 비싼 커피 마시고 그럴 때가 아닙니다. 그 돈으로 한권의 책이라도 더 사서 읽어야 합니다. 그 돈으로 기술 하나라도 더 배워야 합니다. 그 돈을 모아 여행을 하며 세계를 배워야 합니다. 놀 시간에 하나라도 더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 재산이요, 내일의 밑천이기 때문입니다.
배움은 성공의 발로입니다. 배우지 않고, 공부하지 않고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라는 노래가 있는데, 잘못된 겁니다. 젊어서 공부하고 노력하고 배워야지, 왜 허송세월 합니까? 그러면 나중에 어찌 되는 줄 압니까? 베짱이처럼 얻어먹으러 다니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요즘 제가 예수중심아카데미를 창설하고 젊은이들에게 집중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 저는 ‘공부해라. 배워라. 시간이 너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젊었을 때, 머리 잘 돌아갈 때 공부하고 하나라도 더 배워라.’고 가르칩니다. 분명히 우리 젊은이들은 열심히 배우고 익혀 세계에 뛰어난 인물이 될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그렇다면 젊은이만 배워야 할까요? 아닙니다. 중국 속담에 ‘늙어죽을 때까지 배움은 끝나지 않는다(活到老, 學到老)’는 말이 있습니다. 배움은 요람에서 무덤까지입니다. 평생 배워야 합니다. 은퇴했다고 뒷방 영감 되지 말고, 제2의 인생을 위하여 뭔가 배우는 겁니다.
젊어서는 가족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 나를 위해 살아보는 겁니다. 서예도 배우고, 외국어도 하나쯤 배워보고, 악기도 하나 배워보고…, 얼마나 멋집니까? 요즘 치매 환자가 엄청나게 많다고 하데요. 머리를 안 써서 그런 겁니다. 늙을수록 배워서 머리를 회전시켜야 합니다. 우리 고모님이 84세이신데, 글을 모르다가 근래에 경로당에서 글을 깨치셨는데, 그 후에 고모님 말씀이 “세상에 보석이 널렸다. 세상이 달리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세상은 아는 것만큼 보이고, 배운 것만큼 보이는 법입니다. 반대로 모르면, 아는 게 없으면 눈 뜬 소경이 되는 것입니다. 70년대, 제가 살던 방배동 일대가 거의 농토였는데, 개발붐이 일자 땅값이 급등했었습니다. 그래서 외지에서 땅을 사러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동네 어르신 한 분도 땅을 팔았는데, 알고 보니 완전히 사기를 당하셨습니다.
이 어르신이 까막눈이란 것을 알고 사기꾼이 와서 감언이설로 속이고는 계약서에 도장을 받아 가버린 것입니다. 이 어르신이 글을 모르니 계약서에 뭐라고 쓰여 있는 줄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눈 뜨고 땅을 도둑맞았지 뭡니까. 무지가 죄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딤후3:14)고 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배울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가난했기에 밥 먹고 사는 게 급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배우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습니다. 꼭 대학, 대학원에 가지 않아도 인터넷을 통해서, 책을 통해서 얼마든지 배울 수 있습니다. 가난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으면 공부하십시오. 배우십시오.
교육부재현상은 후진성을 탈피할 수 없습니다. 아프리카 원조, 좋습니다. 먹을 것도 주고, 우물도 파줘야 하겠지만 먼저는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물고기 요리를 먹여주는 것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근본적인 것이고, 향후 발전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아이들이 글자를 터득할 즈음에 글자에 꿀을 묻혀준다고 합니다. 공부가 재미있다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한 거랍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오늘날 세계 경제를 쥐고 있고, 각 분야의 노벨상을 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배움이 곧 성장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옥이라도 그것을 갈고 다듬지 않으면 그 값어치는 형편없습니다. 그러나 갈면 상품으로서 가치를 발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인물과 품성과 머리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 지식이 겸해지지 않는다면 제대로 평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지식을 익히고 함양한다면, 그는 지식인으로서, 능력자로서, 인재로서 대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잠24:5). 할렐루야!
교육부재현상은
후진성을 탈피할 수 없다
평생직장은 없어도
평생직업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