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담금질을 받아야 하는가? (빌4:4~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목적 없는 훈련은 없습니다. 훈련 말고 목적에 이르는 지름길이나 왕도는 없습니다. 목적에 이르는 길은 오직 훈련이라는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피겨의 여왕 김연아 선수가 언젠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릴 때 엄마가 제일 미웠어요. 엄마는 내가 아프다고 해도 스케이트 연습을 시켰고, 정말 하기 싫다고 해도 스케이트장에 나를 데리고 갔어요. 그래서 엄마가 미웠어요. 그런데 지금은 엄마에게 감사해요. 엄마가 그 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테니까요.”
그럼요, 김연아의 엄마가 딸이 미워서 그랬겠습니까? 딸이 아프다는데 어느 어미가 마음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란 소릴 하지 않고 스케이트를 타게 한 것은 그의 엄마가 냉정해서가 아니라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훈련 없이는 목적한 세계적인 피겨스케이트 선수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김연아의 엄마처럼 이 땅의 부모도 그럴진대 하물며 당신의 외아들을 죽이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이 목적 없이 우리를 훈련시키시겠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은 예외 없이 다 훈련을 받았습니다.
모세의 훈련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죽음을 피해 하수에 던져졌고, 어미가 아닌 다른 여인의 품, 애굽 공주의 품에서 자라야했습니다. 그리고 장성하여서는 광야에서 40여년을 살았습니다. 왜 하나님은 모세를 그토록 혹독하게 훈련시키셨을까요? 다 목적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기로 미리 작정하시고 훈련하신 것입니다.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영·혼·육에 갖춘 자가 되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요셉의 훈련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는 형들에 의해 애굽의 종으로 팔리고, 그 후로도 그런 대로 살만할 때면 요셉에게 인생의 회오리가 몰아쳐왔습니다. 요셉은 이 고된 훈련이 가져올 소망을 몰랐지만, 그 훈련을 통해 하나님이 목적하신 바에 한 발자국씩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의 아버지를 비롯한 형제와 친척을 구원하기 위한 위치에 오르게 하기 위해 그를 굴리고 굴리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훈련도 누구 못지않게 힘들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고된 훈련을 받았는가 그의 고백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고전4:11~13).
하나님이 바울을 정말 인정사정없이 굴리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바울을 이토록 심하게 훈련하셨을까요? 그 답이 오늘 본문 말씀에 있습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 12~13).
로마의 시민권자로,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있던 바울을 이렇게 바닥으로, 벼랑으로 몰아 단련하신 목적이 바로 일체의 비결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일체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곧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사도 바울은 눈물겨운 훈련을 통과하여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자로서 거듭난 것입니다. 그런 사도 바울을 통해 복음이 널리,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길 하나님은 원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뭐든 할 수 있습니다(막9:23). 그런데 왜 우리에게 못하는 것이 있느냐? 그것은 우리가 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안하냐? 훈련받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훈련이 힘들다는 겁니다. 힘들고 고달프니 안 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니 못하는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 금이나 은도 제련되지 않으면 제 값을 못 받습니다. 다이아몬드도 세공되지 않으면 빛이 나지 않습니다. 하물며 사람이겠습니까?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겠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이 머리가 되고,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사람이 되게 하려고, 또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온전하게 하시려고 훈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훈련이 싫습니까? 물론 훈련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훈련은 누구에게나 고된 것입니다. 그러나 훈련이 고되다고 안하면 지금 그대로 살아야합니다. 훈련만 받으면 빛나는 다이아몬드가 되어 모든 사람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데, 훈련을 싫어하면 그냥 원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냥 원석으로 사시겠습니까?
저도 훈련이라면 누구 못지않게 세게 받았습니다. 예수를 믿은 후에 가족과의 불화, 교단에서 제명, 매스컴에서의 비난, 교회가 깨지는 아픔 등…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저라고 이 훈련이 달콤했겠습니까? 저도 힘들었습니다. 힘들어서 엉엉 울었습니다.
그러나 울었을망정 훈련받기를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훈련하면 내가 인물이 되고, 내가 목적한 바, 하나님이 뜻하신 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훈련을 끝낸 지금은 너무 감사할 뿐입니다. 농사꾼의 자녀에서 세계 70여 개국에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거듭났음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사람들은 훈련을 시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를 버리셨다고 생각하여 불평하고 낙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험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쓸 만하니까, 훈련만 시키면 대단한 인물이 될 가능성이 보이니까 그러시는 것입니다. 제가 해병대 출신 아닙니까? 해병대 시절, 월남 파병을 위해 차출되었는데 그 때 정말이지 엄청나게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때 차출된 자들은 다 건장하고 민첩한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아무나 차출해서 훈련시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도 사람 보실 줄 아는 분입니다. 겉만 보는 사람과 달리 속을 보시는 하나님이 오죽 잘 고르시겠습니까?
그러니 당신을 뽑아 훈련시키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4:12~13).
돌이 징을 맞으면 아름다운 조각품이 됩니다. 나무가 대패로 베이는 고통을 받고 나면 집의 대들보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두려워 피한다면 그저 지나가던 개가 오줌이나 누고 가는 돌이요, 나무가 되고 말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목적에 이르기 위해서 훈련은 필수항목입니다.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습니까?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피아노를 쳐야 합니다. 골프선수가 되고 싶습니까? 쉼 없이 공을 쳐야 할 것입니다. 박사나 교수가 꿈입니까? 엉덩이에 땀띠가 나도록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곧 영국 런던에서 열릴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국가대표 선수들이 태릉선수촌에서 얼마나 고된 훈련을 하고 있는지 압니까? 그러나 누구도 불평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훈련 없이 목적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오래 전에 어떤 녀석이 대학시험 전에 와서는 대학에 붙게 기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공부는 많이 했느냐’고 물었더니 머리를 긁으면서 ‘많이 못했습니다.’ 하기에, 제가 ‘공부 안하고 어떻게 대학엘 가?’ 라고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럼요, 훈련이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영·혼·육의 결실을 얻기 위해서는 훈련을 통과해야 합니다. 거센 파도가 유능한 해군을 만드는 법이니까요.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무엇이든 대가를 치러야, 값을 치러야 내 것이 됩니다. 영·혼·육의 성공도 훈련의 결과요, 애쓰고 힘쓴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훈련 받는 것을 겁내지 말고, 훈련 받을 때에 기쁨으로 임하십시다. 영원한 훈련은 없으니까 낙심치 말고요. 할렐루야!
고난 없는 영광이 없고
희생 없는 승리도 없다
거센 파도가 유능한 해군을 만들고
거센 폭풍이 뿌리를 깊게 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