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할머니
청송 산골짜기에서 빨간 보자기를 망토삼아 목에 걸고 산딸기와 설탕을 섞은 할머니표 산딸기주스를 마시면서 할머니의 손을 잡고 먼 시골장길을 따라 나서던 기억. 아련한 그림 같은 그 시절이 인생 최초의 추억인 것 같다.
이후로 할머니와의 삶은 학창시절까지 이어졌다. 집안의 맏딸이 공부를 잘 해야 동생들도 본을 받는다는 어른들의 믿음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대처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유학생활을 시작하였다.
할머니는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필요한 모든 것을 낱낱이 챙겨주시고 주야로 가풍과 예절에 관해 가르쳐주셨다. 넉넉하지 못했던 시절이었지만, 학교에 다녀오는 동안 할머니는 시장에 가셔서 신선한 과일과 생선, 때깔 좋은 육류에 이르기까지 손녀딸이 좋아하는 것은 빠짐없이 사오시곤 하셨다.
그 맛있고 멀쩡한 음식이 당신의 손녀딸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시면서 “마이 무거라. 니 입으로 들어가는 것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고 하셨던 할머니. 당신은 흠이 있거나 손녀딸이 먹고 남은 음식만 드시던 할머니. 늦게 일어나 아침을 굶고 나가려면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 오셔서 밥을 기어이 먹여주셨던 할머니.
할머니의 사랑은 끝이 없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밤새도록 젖은 교복을 수건으로 짜고 선풍기 앞에 말려서 아침이면 새 교복처럼 손질을 해주셨던 할머니 덕분에 학창 시절 내내 깔끔한 학생으로 지낼 수 있었다.
처음으로 남학생에게서 연서가 배달되었을 때 할머니는 엄격하신 검열관이 되셔서 몰래 편지를 변소에 넣고 막대기로 편지가 잠길 때까지 독한 냄새를 맡으시면서 마음으로 기도를 하셨단다. 우리 손녀 대학 갈 때까지 엄한 놈이 채가지 말게 해달라고….
할머니의 정성과 사랑 덕분에 우수한 성적으로 좋은 대학교의 학생이 되었고, 거의 10년 동안 함께했던 할머니와 이별을 했다.
할머니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고, 어느 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임종을 지키지 못했었다. 마지막까지 “우리 순이 잘 살아야 할 낀데….”를 되뇌셨다던 할머니였음에도 팍팍한 삶 속에서 그분의 존재는 쉽게 잊어졌다.
가정의 달 5월이 되었고 문득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나신 할머니. 정말 가슴 아프고 괴로운 것은 할머니를 천국에서 그 날 그 시에라도 다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게 당신의 한 시절을 아낌없이 품어 안고 사랑해주신 손녀지만 할머니를 보고 싶어도 뵐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리고 가슴이 멍해진다. 그때는 예수님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할머니를 보내드려야 했다.
이제 예수님의 구원의 사랑을 알고 할머니를 그리워해보지만, 부자와 나사로의 거리만큼이 할머니와 나 사이에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진다. 만약 그때 구원의 예수님을 알았더라면, 천국에서라도 할머니를 뵐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만 더해간다.
사랑하는 할머니, 보고 싶지만 그리워 할 수조차 없는 할머니! 진실로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Lovely J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