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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2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자기 이름을 아끼시는 하나님 (겔36:16~32)

572호 · 2011-02-11

우리 장로 중에 횟집을 하다가 갈비 집으로 업종을 변경한 분이 있습니다. 그가 저에게 가게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하기에 이런 저런 가게 이름을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다 해외집회를 가게 되었는데, 기도 중에 갑자기 그가 이름을 걸고 장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급히 그에게 국제전화를 했습니다. “김 장로, 가게 이름말이야. 자네 이름을 넣어서 ‘김정태 갈비나라’라고 해. 자기의 이름을 걸고 하는 거니까 사람들에게 믿음이 갈 거야.” 예상대로 그의 가게는 대박났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 자신의 이름을 귀히 여깁니다. 왜냐하면 이름이 곧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초석’이란 이름이 바로 제 자신이기에, 제 이름을 귀히 여기고 제 이름이 실추되지 않도록 애씁니다. 그래서 가끔 지교회 목사들이 부채 문제를 들고 찾아오면 그들 때문이 아니라 예루살렘 교단이라는 이름에 먹칠하지 않으려고, 또한 교단장인 제 이름이 욕먹지 않게 하려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줄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도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이 망령되이 일컫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이름이 더럽히는 것도, 당신의 이름이 잊히는 것도, 당신의 영광이 다른 이에게 가는 것도 원치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이름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2:8).

이름은 곧 명예를 뜻합니다. 명예(名譽)란 세상에서 훌륭하다고 인정되는 이름이나 자랑, 또는 그런 존엄이나 품위를 일컫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아끼시는 이유는 당신의 명예가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들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정착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야 했건만 오히려 그들은 우상을 섬기고, 죄악을 일삼아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파멸시키시고, 그들을 흩어 버리시사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을 바라보는 열국의 시선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들이라고 지금껏 여겼었는데, 결국 이 꼴이 난 것은 그들이 이미 그들의 신, 하나님과 관계없는 철저하게 버려진 자들이고, 또한 그들의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지도, 구원할 능력도 없는 무능한 신이기 때문이라고 단정하고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마구 비웃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 궁극적 주체는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지만, 결국 이방인들에게 욕을 먹은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애들이 못된 짓하고, 나쁜 짓하면 다른 사람들이 “저거 뉘 집 자식이야? 저 부모는 애들이 저 모양인데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이 더 이상 이방인들 사이에서 입방아 찧어지는 것도, 욕먹는 것도 참으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모으시고 고토로 들어가게 하시며,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하여 새 마음과 새 영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모든 것을 풍족하게 하여 당신이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위가 의로워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위해서였습니다.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찌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36:23).

동일하게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에게 오래 참고, 우리를 위경에서 건지시고,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은 우리의 행위가 반듯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행실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해서가 아니라 오직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그리 하시는 것입니다.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할 것이며 내 영예를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사48:9).

다윗은 그것을 잘 알기에 그는 시편 23편에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23:1~3).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시79:9)라고 말입니다.

가끔 주의 종들 중에서도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개도 받는 성령인데, 왜 못 받냐?”고요. 참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성령이 누구 이름으로 왔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왔습니다. 이는 성령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것인데, 개도 받다니요? 그렇게 말하고 살아남길 바랍니까?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20:7). 왜 성령을 훼방하면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하는 줄 압니까? 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막3:29).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더럽히는 자, 당신의 이름에 대항하는 자를 그냥 좌시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자라고 해도 거기에 예외는 없습니다. 천사장 루시엘이 그랬고, 므리바 물을 두 번 내리친 모세가 그랬고, 금송아지를 만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그리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이름을 불러 구원을 받았고(롬10:13), 그 이름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요1:12). 그 이름으로 구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요14:14), 그 이름으로 오신 성령을 받았습니다(요17:11).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이름을 위하여 살아야 할 것입니다. 주의 이름이 욕되지 않게 하기 위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 오늘 본문에서처럼 믿지 않는 이방인들은 우리의 잘못된 행위를 보고 우리를 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이름을 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통해 보면 주의 이름을 위하여 산 자들은 주의 이름과 더불어 자기의 이름도 높아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바울을 통하여 주의 이름이 빛날수록 바울의 이름도 후대에까지 유명세를 탔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오직 주의 이름을 지키고 알리기 위하여 애쓰는 저에게 하나님은 ‘명성(名聲)’이라는 두 글자를 보여주셨고, 저를 전 세계에 유명한 자의 반열에 올려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제 고백으로 받아들이고 이렇게 시인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전15:10)고.

그리고 우리 자신도 우리 이름을 위하여 바르고 선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내 삶이 내 이름을 만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한 것입니다. ‘이순신’ 하면 그의 업적이 기려지듯, ‘베드로’ 하면 그의 믿음의 역대기가 열리듯 우리도 그리 살아야 합니다. ‘이초석’ 하면 ‘병사는 죽어도 전쟁은 이겨야 하고 핍박과 순교가 오더라도 예수는 증거되어야 한다’고 외치고, 그렇게 살다간 사람이라고 여겨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당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지금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전7:1).

세계적인 명품은 그 이름 때문에 철저한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이름을 위하여 자신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곧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산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장난치지 말고, 농담도 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거짓 맹세도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욕되게도 맙시다. 그의 이름은 오직 찬송과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할렐루야!

커다란 명예는 커다란 부담이다

명예는 의무를 뜻하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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