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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자기 일에 근실하면 존귀한 자가 된다 (잠 22:29)

292호 · 2005-09-29

많은 사람들이 저를 두고 이렇게 말들을 했습니다. “이초석은 3년이면 망할 거야, 오래 가야 7년이지.” 그러나 저는 그들의 말에 개의치 않고 오직 제 일에 충실했습니다. 원래 비평가는 비평하는 것이 옳은 일이고, 평론가는 그것이 직업이니 평론해야 하는 것이기에 전혀 괘념치 않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두고 보자. 나중에 결과로 말하자’고 다짐하고는 정말 열심을 다해 복음의 씨를 뿌렸습니다. 내 자신을 혹독하게 다스리고, 내가 사랑하는 많은 것들을 뒤로 접으며 오직 앞만 보며 달렸습니다. 그렇게 21년을 달렸더니 오늘날 세계 70여 개국에 복음의 아름드리나무가 섰고, 그 나무마다 주렁주렁 많은 열매가 맺히게 되었습니다.

올해 세계목회자 영성세미나에 34개국에서 1000명의 목회자들이 참석한 것으로도 우리 교단의 입지를 충분히 잘 말해주고 있는 셈입니다. 제가 늘 즐겨 쓰는 말이 있습니다. ‘과정은 결과를 대신할 수 없지만 결과는 과정을 대신할 수 있고, 대변해 줄 수 있다.’

근실이란 부지런할 근(勤)과 열매 실(實)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즉 근실함이란 부지런하여 일에 실적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작정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근실함이 아니라 부지런하여 어떤 일에 열매를 맺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않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근실한 자를 뽑자면 당연히 요셉입니다. 그는 노예로 팔려간 보디발의 집에서 최선을 다해 집안일을 보살폈습니다. 그런 그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만사형통하는 복을 주시니 보디발이 요셉을 가정총무로 명하고는 자기 아내를 제외한 모든 일을 주관케 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옥에 갇혔을 때도 근실하여 전옥이 옥중 다른 죄수와 그 제반 사무를 다 요셉에게 맡겼습니다. 그리고 바로의 꿈을 해몽하여 국무총리 대신이 되었을 때에 요셉의 근실함은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그는 흉년을 대비하여 곡간을 많이 지어 그곳에 풍년 때에 곡물을 가득 채워 각국의 백성까지 배고픔에서 건져냈고, 애굽을 최대국가로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근실함에는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종종 정말 열심히 뛰는데 결과가 없는 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열심히 사는데 왜 매일 이 꼴이냐?’고 탄식하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부산을 가야하는데 호남선을 열심히 달리면서 ‘왜 부산이 안나오는 거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식이 없는 열심은 결과가 없을 뿐 아니라 화로 없는 불과 같아 오히려 사고를 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실과 없이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했습니다. 지식과 열심이 기차 레일처럼 나란히 할 때 성공에 이르고, 당신을 존귀한 자 앞으로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주인에게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지식과 열심을 다해 다섯 달란트를 남겼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동일하여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들에게 주님은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25:23)’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인에게 받은 한 달란트를 그대로 들고 나타난 자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하시고, 있는 것까지 빼앗으라 하셨습니다. 그는 주인의 마음을 아는 지식과 부지런함이 없었기에 그런 것입니다.

현 서울시장인 이명박씨가 쓴 ‘신화는 없다’라는 책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많은 사람들은 저를 향해 신화를 창조했다라고 하지만, 사실 저는 부단한 노력으로 오늘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명박 시장을 TV영웅이나 풍운아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는 뼈를 깎는 노력과 도전의 산물이 현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생활을 접고 열심을 냈고, 열심에 따른 결과를 산출해냄에 따라 20대에 현대건설의 이사가 되고, 30대에 사장, 40대에 계열회장 자리에 앉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제게도 타고난 체력과 물려받은 재력 때문에 남들보다 빨리 성공의 반열에 들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저를 어찌 알겠습니까? 남들이 잘 때 낙타무릎이 되도록 기도하고, 남들이 놀 때 눈이 짓무르도록 성경을 상고했고, 남들이 가족과 더불어 기쁨을 누릴 때 가족을 떠나보내고 외롭게 나와 싸웠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런 나에게 은혜를 덧입히사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그

러나 노력에 따른 결과가 없었다면 두 동생은 목사가 되지 못했을 것이고, 제게 미쳤다고 하시던 어머니가 예수 앞으로 나오시지 않았을 것이며, 친 아버지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던 두 아들이 결코 효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오늘 말씀에는 ‘자기 사업에 근실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 사업이란 곧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말합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사업, 자기에게 맡겨진 교회와 교구, 구역 그리고 자기에게 맡겨진 가정, 그리고 국가에 근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일은 뒷전이고 남의 일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자들입니까? ‘무릇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2:4).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근실하면 실적이 나타나고 그것으로 인하여 사장의 눈에 들게 될 것입니다. 자기 아내나 남편에게 근실하면 행복의 열매가 맺힐 것이고, 학생이 자기 일인 학업에 충실하면 좋은 대학과 진로를 택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목자가 양 떼를 돌보는 일에 근실하면 교회가 부흥되어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 안에 들게 될 것이고, 한 나라의 통치권자가 국사에 근실하면 국민의 사랑과 지지를 얻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한 장로님이 제게 와서 하소연을 했습니다. “우리 교인이라서 직원으로 채용했는데요. 글쎄 이 집사가 맨날 늦게 출근하고, 허구한 날 퇴근 시간 전에 나가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한소리 했더니 ‘같은 교인끼리 해도 너무 하네요. 주의 일 하느라 그러는 건데...’ 하며 되레 소리를 치는 거예요. 목사님 어떡해야 되나요? 정말 답답하기만 해요.” 저는 그 장로님에게 “당장 가서 잘라버리십시오. 아니, 자기 일 하나 못하는 사람이 나가서 하나님 일은 제대로 하겠습니까?” 라고 했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 중에 간혹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의 일 한다고 자기 일을 태만하게 하고, 엉망으로 하여 직장에서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들은 ‘주님 때문에 핍박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그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일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을 욕 먹이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이 말야. 이 따위로 일을 하고 있어.” 하며 그런 자들 때문에 예수 믿는 자들이 단체로 욕을 먹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중심교회 성도들은 자기 일에 근실하여 남의 본이 되고, 사주에게 혹은 다른 사원에게 칭찬받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역시 예수중심교인들은 달라. 저 교회 한 번 가봐야겠어.” 이런 소리가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열매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꼭 나가 소리쳐 전도하지 않아도 그런 자를 통하여 예수의 모습은 비춰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내 일에 근실함으로 내가 넉넉하고 여유로울 때 남도 도울 수 있게 됩니다. 우리 국민이 각자의 일에 근실하여 넉넉해지니 북한도 돕고, 이라크에 파병도 하고 그러는 것 아닙니까? 내 끼니 걱정하면서 어찌 나누겠습니까? 내가 헐벗고 누구를 입히겠습니까? 가족 모두가 근실할 때 풍족해져 불우한 이웃을 돌볼 수 있고, 내 교회가 부흥될 때 만방에 복음을 전할 수 있으며, 내 지식이 풍부할 때 남도 가르칠 수 있고, 내가 건강할 때 남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일에 근실한 자가 됩시다. 무슨 일에든 눈 가리고 아웅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합시다. 그러면 이 땅에서와 저 하늘에서 존귀한 자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리고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과정은 결과를 대변할 수 없지만 결과는 과정을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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