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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라 (창 18:1~21)

233호 · 2004-08-11

최근 중국이 고구려사(高句麗史)를 왜곡하는 바람에 중국에 대한 감정이 악화되었습니다. 역사왜곡 문제가 대두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그 강도가 날로 더하고 있어 심각한 단계에 이르고 있습니다.

역사왜곡과 같은 중화패권주의 의식이 팽창되고 있는 것은 근래에 부쩍 신장한 중국의 경제력이 그 원인인 듯 합니다. 아무튼 이번 사건은 우리나라를 무시하는 처사임이 분명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더욱 분노하게 만드는 겁니다. 대한민국을 우습게 보는 중국의 처사가 우리로 하여금 울분을 터뜨리게 하고 있습니다. 마땅히 국가적인 대응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시당하고 가만있을 사람은 없습니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누구든 받은 만큼 돌려주게 되어 있습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지 않습니까? 무시한다는 것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을 없는 취급하는 경우가 하나이며, 다른 하나는 존재는 인정하나 가치를 인정하지 않거나 그의 말을 듣지 않는 경우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첫 번째 경우에 해당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아예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하나님을 완벽하게 무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어놓은 세계에 살면서 ‘하나님이 어디 있냐?’고,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며, 예수가 십자가 못 막힌 것은 한 편의 감동적인 소설일 뿐이라고 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정말 몰라서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글자를 몰라서 지뢰밭의 경고문을 읽지 못했다고 지뢰가 안 터지고 참아줍니까? 이유를 불문하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의 결과는 다 같습니다. 바로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이나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예수가 메시아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귀신도 예수를 알아봤으나 그들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좀 더 근사한 메시야를 기대했나 봅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께서 ‘독사의 새끼들아, 지옥의 판결을 피하지 못하리라.’고 단언하셨습니다. 인정하지 않은 당연한 대가입니다.

예수께서 나사렛을 왜 떠나셨습니까? 고향에서 예수는 목수의 아들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목수 요셉의 아들이지 절대 하나님의 아들로 대접받을 수 없었기에 고향을 등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한 베드로를 복되다 하시고 그를 축복하사 교회의 반석이 되게 하셨으며, 천국 열쇠를 쥐어주셨고, 마르다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고백할 때 죽은 지 사흘이 지난 그의 오라비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사람도 자신을 인정하는 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듯이, 하나님도 당신을 인정하는 자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푸십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할 때 당신 생활에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 분을 인정할 때 가난이 떠나가고, 병이 물러나고, 죽었던 것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로는 하나님을 인정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소도둑도 도적이고 바늘도둑도 도적이거든요. “언제 우리가 하나님을 대접하지 않았습니까?”하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말라기서에도 이스라엘 민족이 동일한 질문을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말1:6,7). 더러운 떡이란 깨끗지 못한 마음과 불경한 마음을 뜻합니다.

즉 이런 경우입니다. 주일에 교회 나오는 것을 선심 쓰듯 하는 사람, 아예 주일을 밥 먹듯 빼먹는 사람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겁니다. 주일을 성수한다는 것은 예수를 내 주인으로, 내 구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의 재물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시인하는 것이고, 나는 단지 청지기에 불과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고로 주일을 지키지 않고, 십일조를 도적질 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인정하시겠습니까?

저는 외국에서 목사들이 오면 제 힘 미치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예우를 갖춰 대접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잘 몰라 그러는 겁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마10:40, 41). 주의 종은 하나님을 대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을 예수님 대접하듯이 하는 겁니다. 예수님께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이 땅에서도 한 나라의 대사는 그 나라의 원수를 대신한 것으로 같은 대우를 받지 않습니까?

고넬료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입니다. 그가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라는 하나님 사자의 음성을 듣고 베드로를 청했을 때 어떻게 했는지 봅시다. 그는 그의 일가와 가까운 친지들을 다 불러 모아 놓고 베드로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다가 베드로가 들어오자 달려가 발 앞에 엎드리고 절을 했습니다. 식민지 어부가 오는데 로마 군대장관이 그에게 엎드린 것입니다. 고넬료는 베드로를 하나님 대하듯 한 겁니다.

그랬더니 이방인 고넬료에게 성령이 선물되었습니다. 수넴여인이 선지자 엘리사를 잘 대접했더니 죽은 아들이 살아나는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소자에게 흐르는 물 한 컵을 줘도 하늘에 상이 있다고 했는데 선지자를 잘 대접하는 것에 어찌 상이 없겠습니까? 그래서 저를 도와 일하는 모든 자들이 그 날 저와 같은 상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천사를 잘 대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고운 밀가루로 떡을 만들고 송아지로 급히 요리를 했습니다. 지극정성을 다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약속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할 때, 예수를 예수로 인정할 때 우리에게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창조주요, 절대주권자 되시며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믿습니까? 그리고 예수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나의 구세주 되심을 인정하십니까? 당신이 ‘아멘’할 때 하나님은 당신을 호적에 입적하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 삶의 주인으로 모실 때 성령께서 당신 삶 속에 역사하실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종을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로 섬길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그의 손길을 통해 당신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아내를 아내로 인정할 때 아내가 힘이 나게 될 것이고, 남편을 남편으로 인정할 때 세상에 나가 기가 죽지 않을 것이며, 자식을 믿고 인정해 줄 때 속 썩이지 않을 것입니다.

무시하면 무시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니까요. 인정할 것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지혜입니다. 할렐루야!

선비는 인정하면 충성하나 무시하면 등을 돌리는 법이다

대접받기 원하면 먼저 대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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