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하는 자가 복이 있다 (약 5:7~11)
미국 뉴욕의 보험왕인 ‘덥’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큰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퇴직금과 그동안 저축해 놓은 돈으로 금광하나를 샀습니다. 곧 금광에서 금이 쏟아질 거라는 기대감에 열심히 인부들과 일했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몇 달이 지나도 금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점점 자본금은 바닥을 드러냈고, 의욕은 상실되었습니다. 빚은 늘어갔고 그는 완전히 실의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는 고민했습니다. ‘이 작업을 더 해야 할 것인가, 여기서 손을 드는 것이 현명한 것인가.’ 덥은 결국 금광을 포기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금광을 남의 손에 넘겼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틀 후 신문지상에 사상 최대의 금광이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덥은 그 기사를 읽고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바로 자기가 판 그 금광이었던 것입니다.
자기가 파내려간 그 자리로부터 불과 2m밑에서 금맥이 발견된 것입니다. 덥은 땅을 치며 후회했습니다. ‘2m…’, 그것이 덥의 인생을 좌우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보험업을 새로 시작하면서 좌절이 오고 자존심이 무너지는 순간이면 ‘2m’만큼만 더 인내하자는 생각으로 노력하였고 마침내 보험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2m’, 이것이 인내입니다. 인내란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닙니다.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가는 방향으로 나를 밀어주나 인내란 정면에서 불어오는 맞바람이어서 이것을 헤치고 가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람 때문에 가던 길을 멈추는 자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인생은 긴 마라톤경기에 비교되지요.
우리는 도상(途上)위의 주자고요. 단거리야 스피드만 있으면 승리할 수 있으나 마라톤은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자신과의 싸움, 즉 인내가 있어야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습니다. 인생은 평지만 뛰는 것이 아니라 오르막길도 있고, 급경사진 길을 내려와야 할 때도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생활이 매일 단 맛만 나는 것은 아닙니다. 쓴맛도 있고, 신맛도 나고, 짠맛도 있기에 오래 참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뱉어버리면 영양실조로 죽게 되지요. 그러나 참고 이것을 삼키면 몸이 튼튼해지는 것처럼, 영혼이 강건해져 악한 마귀와 귀신들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넉넉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인내가 왜 사람에게 필요한 걸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시간과 사람의 시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습니다. 밥이 끓었다고 바로 먹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뜸이 잘 들어야 밥이 맛있지 않습니까? 욥이 엄청난 고난을 인내하더니 갑절의 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오래 참음으로 이삭을 통하여 많은 민족의 아비가 되었으며, 다윗이 무고한 시련 속에서 묵묵히 인내하여 시온의 영광을 받았던 것을 기억한다면, 오늘 당신의 시련은 당신을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욱 당신을 견실하게 만드는 기회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기 때문입니다. ‘인내가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4).
오늘 저는 참된 신앙을 갖기 위해 우리가 인내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씀드리기를 원합니다. 인내란 ‘있던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 하던 일을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에게 인내가 더욱 간절한 것입니다. 첫째, 믿음의 자리를 지키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보이지 않는 악한 것들과의 싸움으로 믿음의 생활이란 곧 영적 전쟁을 의미합니다.
악한 것들은 무차별공격을 해댑니다. 환난과 핍박, 위협과 모함으로 우리를 위기로 몹니다. 언제까지요?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요. 그래서 믿음의 과정도 중요하나 결과도 중요한 것입니다. 기차를 타면 기차표를 보여야 기차에 오를 수 있고, 도중에 검표할 때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내려서도 기차표를 가지고 있어야 역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은 늘 가지고 지키고 있어야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 들어갈 때 믿음의 표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겁니다. 주님의 우려에 찬 음성을 들으십시오. ‘내가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 다니엘처럼 사자굴에 떨어지더라도,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처럼 불 속에 들어가더라도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이 얼마나 멋집니까?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저도 이렇게 외칩니다. ‘병사는 죽어도 전쟁은 이겨야 하고 핍박과 순교가 온다 해도 예수는 증거 되어야 한다.’
둘째, 내 교회에 머무를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요즈음 정계만 철새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도 이리저리 떠도는 철새가 많습니다. 말씀 찾아, 능력 찾아 오늘은 이 교회, 내일은 저 교회 다니는 사람 말입니다. 그래서 머리만 잔뜩 커져가지고 ‘저 목사는 이게 나빠, 이 목사는 저게 틀렸어.’ 하며 자기 잣대로 목사들 평가나 하는 자들, 저는 감히 말하지만 그들은 부평초와 같아 결국 개구리밥이 되고 말 것입니다.
나무도 뿌리가 있어야 거목이 되는 겁니다. 뿌리가 없으면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한 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오늘은 이 땅이 좋으니 여기에 심고, 내일은 저 곳이 옥토니 저곳에 심어 보십시오. 반드시 죽게 됩니다. 서울에 집이 많다고 다 내 집이 아니고, 모든 남자가 다 내 남편이 아니듯, 목자도 내 목자가 있는 것입니다. 양을 버리고 가는 삯군 목사가 아니라면 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내 목자의 젖을 먹고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 때문에 이 교회가 싫다고 떠나보십시오. 다른 교회에도 반드시 그런 사람보다 더한 사람이 꼭 나타납니다. 신앙생활은 사람보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속감이 없는 자, 위험합니다.
셋째, 내게 주어진 직분과 자리를 지키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교회의 직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것이 비록 작은 일일지라도, 힘들고 드러나지 않는 일일지라도 그것을 내 멋대로 놓아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군에서 상부의 명령은 절대 복종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까? 하물며 하나님의 명령에 불복종하면 어찌 되겠습니까? 죄가 뭡니까? 유다서에는 분명히 자기 자리를 떠난 것이 죄임을 밝히 말하고 있습니다. 루시엘 천사장이 자기 자리를 이탈하더니 타락하여 루시퍼, 곧 사탄이 되지 않았습니까? 에서가 장자의 직분을 하찮게 여겨 팥죽 한 그릇에 팔아먹고 얼마나 후회했습니까? 하나님의 주신 직분, 봉사의 자리가 힘드십니까? 인내하십시오. 하늘의 상이 클 것입니다.
거센 파도가 유능한 해군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오래 묵은 장이 맛있는 것처럼, 오래 뿌리 내린 나무가 거목이 되는 것처럼, 인내는 신앙과 인생을 더욱 굵게, 더욱 아름답게, 더욱 풍성하게 만듭니다. 춘향이가 고난 중에도 인내하여 이 도령을 만나 행복했던 것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험과 환난을 참고 견디면 우리 신랑 되신 예수께서 우리를 만나러 오실 겁니다. 그 때까지 믿음을 지키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영광의 면류관이 당신에게 씌어질 것입니다.
‘2m’ 밑에 축복과 기쁨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성도의 표는 바로 오래 참음이라 했습니다. 조금만 더 참으십시오. 할렐루야!
거센 파도가 유능한 해군을 만든다
오래 묵은 장이 맛이 있고 뿌리 깊은 나무가 거목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