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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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고난 받기에 합당한 자 (고후 1:3~11)

213호 · 2004-03-26

이 세상에서 가장 불효자가 누구인 줄 압니까? 허구한 날 속 썩이는 사고뭉치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부모보다 먼저 간 자가 가장 불효자입니다. 그는 부모에게는 씻을 수 없는 죄인입니다. 자식이 죽으면 부모는 그를 가슴에 묻는다고 합니다. 평생을 그로 인해 가슴앓이 한다는 것이지요.

그에 버금가는 불효자가 누구입니까? 부모 앞에서 “죽고 싶다”, “왜 날 낳았어?” 하며 신세 한탄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요,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엄청난 불효를 저지를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죽고 싶습니다. 절 데려 가십시오.” 이런 기도 한 번쯤은 해봤을 겁니다. 이런 기도가 하나님 마음을 얼마나 갈기갈기 찢어놓는 일인 줄 압니까? 자식이 죽고 싶다는 데 어느 아비가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살다보면 힘들고 낙심되어 살 소망마저 끊어져 정말 ‘죽었으면’ 할 때가 있습니다. ‘왜 나는 이럴까.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믿음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선친들, 더는 사도들도 때론 생명을 거둬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키는 과정에서 모세도 불평해대는 사람들의 원성에 “주여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했고, 하늘 문을 닫고 열었던 불의 사자 엘리야도 이세벨의 엄포에 도망쳐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소망했으며, 사도바울도 빌립보 교인들에게 말하기를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싶으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할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셨습니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성경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살 길을 주셔서 다시 소망 가운데 거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순풍에 돛단 듯 평탄할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오면 풍랑도 있고, 태풍도 몰려옵니다. 왜 그럴까요? 이는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을 의뢰하게 하심입니다. 병기나 재물이나 방백이나 자기의 의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라는 뜻이 있습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사26:3).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는 기쁨이 넘치며, 수치를 당치 않게 하십니다. 또 주님을 의지하는 자가 승리를 누리며,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 당신에게 고난이 있음은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소망의 항구로 이끌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로 말할 수 없는 환난을 겪었습니다. 집에서 내어 쫓기고, 친구들이 다 떠나고,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된 후 교계로부터 제명되고 별의별 누명과 모함속의 터널을 통과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인생을 ‘물 없는 사막이요 눈 덮인 산야’라고 자주 노래하듯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 번도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같이 부족한 것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케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그저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저에게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넘쳤고 마침내 승리하게 하사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며, 넘치는 복으로 안겨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들어온 자라야, 그리스도께 인정된 자라야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는 베드로와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고, 그의 이름으로 말하다가 옥에 갇히고 채찍질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한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결혼 한지 8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늘 간구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아내가 임신을 하게 되어 이들 부부는 아이의 탄생만을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이들 부부는 태어난 아이를 보고는 그만 까무러쳤습니다. 아이가 뇌성마비였던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원망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그러실 수 있습니까? 얼마나 기도해서 얻은 아이인 줄 하나님이 제일 잘 아십니다.” 그 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아이를 세상에 보내야 하는데 가장 잘 보살펴 줄 사람을 찾다보니 너희 부부가 가장 합당했다. 너희의 그 믿음과 사랑으로 이 아이를 잘 키워다오.” 이 부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위로를 얻었으며, 하나님께 인정받은 것에 감사하여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합니다.

당신이 환난 가운데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은 것이니 오히려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또 환난을 당하게 하심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하심같이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의 위로자가 되게 하심입니다. 아픔이나 가난은 이해한다고 이해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감동적인 설교가 무엇입니까? 신학적으로 완벽한 설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경험한 하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나를 가난에서 건지신 하나님’으로 전하고, 아픈 자에게 ‘나를 치료하신 하나님’을 전하고, 고난 가운데 있는 자에게 ‘위로 자이신 하나님’을 전하면 그들에게 힘이 되고 소망이 샘솟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도록 길을 제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상명령입니다. 이 명령을 준행함에 있어 세상의 지식은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또 신학적인 문구로 그들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내가 체험한 예수 그리스도를 간증함으로 그들에게 ‘너희도 나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새 삶을 얻으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로 하여금 환난 가운데 두심은 우리로 하여금 정금같이 하사 하나님나라에 합당한 자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나무도 아무거나 자르지 않습니다. 재목이 되겠다 싶은 걸로 골라 자릅니다. 또 바람이 불어야 나무의 벌레가 떨어지고, 해일이 일어나야 바다의 생태계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우리를 환난 가운데 두심은 우리 삶에 더럽고 추한 것을 버리고 온전한 자로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가게 하심입니다.

야곱이 베냐민을 잃었을 때 오래 산 것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얼마 뒤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요셉을 만났던 것을 보십시오. 환난이란 커튼 뒤에 바로 기쁨의 날이 숨어 있습니다. 거센 바람도 영원히 머무는 경우는 없습니다. 백 년만의 폭설이 왔다고 봄이 안 옵니까?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당해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아이 곁을 떠나지 않는 법이거든요.

절대 죽을 생각일랑 하지 마십시오. 죽을 결심으로

고난없는 영광은 없고 고통없는 기쁨도 업다

골이 깊으면 산이 높고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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