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 타는 교인
‘내꺼 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라는 가사로 된 ‘썸’이란 노래가 있습니다. 썸은 연인도, 친구도 아닌 관계를 일컫는 단어로, 즐기듯이 연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즘 썸 타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교회 간만 보고 돌아다니는 교인, 신자인지 비신자인지 구분이 안 되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의 경고는 이렇습니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3:15~16).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한 남자가 남군과 북군의 경계 선상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남군이 지나가면 남군을 응원했고, 북군이 지나가면 북군을 지지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옷도 바지는 남부 연합군의 군복인 회색을 입었고, 윗도리는 북부 연합군의 푸른색을 입고 다녔습니다. 얼마 후, 이 지역에서 양군 간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이 남자는 자신의 옷 덕분에 자신은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전쟁터를 어슬렁거렸습니다. 그런데 그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남군은 그의 윗도리 색깔을 향하여 총을 쏘았고, 북군은 그의 회색 바지를 향하여 총을 쏘았던 것입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아합 왕 시절, 선지자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누가 섬기는 신이 참 하나님인지’ 대결을 했습니다. 이 때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 편에 선 것도 아니고 바알신 편에 선 것도 아니고 두 가운데 어정쩡하게 서 있었습니다. 이를 보고 엘리야가 호통을 쳤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왕상18:21).
다른 것은 썸을 탈 수 있지만, 신앙만은 썸 탈 수 없습니다.
예수중심편집실
내 인생의 사계절!
며칠 전만 해도 더워서 선풍기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처서가 지나더니 이젠 새벽녘에 제법 쌀쌀해서 이불을 덮어야 하는 가을이 소리 없이 다가왔습니다. 시장에는 새콤달콤한 햇사과가 나와 있고, 길가엔 코스모스가 피고, 들판엔 고추잠자리가 마치 가을을 알리는 특파원들 같습니다.
모든 계절이 그렇듯 여름도 이내 지나가버리고 마는 것을, 뜨거운 햇빛이 자연과 인간에게 베풀어주는 혜택은 잊어버리고 그저 덥다는 말만 습관적으로 되풀이 하다 여름을 보낸 것 같아 조금은 멋쩍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마치 사계절과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계절은 덥고, 어느 계절은 춥고, 또 어느 날은 좋았다가 또 어느 날엔 갑자기 폭풍우가 쏟아지는 예측할 수 없는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말입니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곡식과 실과의 풍성한 수확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모진 태풍 “고니”를 이겨내야만 상품가치가 있는 실한 열매로서 좋은 값으로 출하될 수 있는 것처럼, 마치 하나님의 사람,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사단의 세력과 귀신들의 공격에 맞서 이겨내야만 한다는 절대 절명의 영적전쟁을 하는 것과 많이 흡사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인생의 폭풍우’를 만난 동방의 의인 욥처럼 말입니다(욥기1장).
한 알의 대추도 저절로 영글지 않습니다. 몇 달간의 땡볕과 세찬바람, 몇 번의 천둥소리에 익어갑니다. 하물며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비바람과 폭풍이 힘들고 혹독한 것이긴 하지만 태풍이 지나가야 바다에 영양분이 풍부해지고, 천둥이 치고 비가 쏟아져야 대지가 깨끗해지고 땅이 열매를 내어주는 것처럼 내 인생의 시련과 아픔은 결국 나를 깨끗케 해주고 ‘갑절의 축복’(욥42:10)을 받는 거목이 되게 해 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