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의욕을 좀 먹는 암이다 (사41:10~17)
“느브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단3:16~17).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유로 당장 풀무불로 던져질 위기 앞에서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가 한 말입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4:16). 하만의 궤계로 이스라엘 민족이 멸절될 위기에 처했을 때, 에스더가 한 말입니다.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느4:14).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던 느헤미야가 도비야와 산발랏이 훼방하고 협박하자 백성들을 독려한 말입니다.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이 하나님을 능멸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을 협박할 때, 어린 다윗이 물맷돌을 가지고 싸우러 나가며 한 말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담대함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선친들은 모두 담대했습니다. 어디 믿음의 선친들뿐이겠습니까? 한 시대에 획을 그은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담대한 자들이었습니다.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한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 에디슨을 비롯한 발명가들, 허영호 같은 에베레스트, 남극점 탐험가들…. 모두 담대함이 무기였던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담대해야 할 이유를 정확히 말씀해주십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1:9).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늘 어디나 동행하시고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두려워말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입니다. 옛날 한국전쟁 때 전쟁터에 나가 총에 맞아 죽으면 “빽”하고 죽었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빽 없는 사람은 다 전쟁터에 나갔지만, 빽 있는 사람은 요리조리 다 빠져서 전쟁터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빽을 가지고 있다면 뭐가 두렵겠습니까?
다윗은 그것을 알기에 성전 건축에 앞서 아들 솔로몬에게 “너는 강하고 담대하게 이 일을 행하고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여호와의 전 역사의 모든 일을 마칠 동안에 여호와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사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시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리라”(대상28:20)고 유언했고,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쳐들어왔을 때, 두려워하는 그의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 좇는 온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하는 자가 저와 함께하는 자보다 크다”(대하32:7)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두려움은 의욕을 좀 먹는 암적 존재입니다. 제가 늘 말하지 않습니까? “이자가 두려운 자는 사업을 하지 말고, 이혼할까봐 두려운 자는 결혼하지 말고, 맞는 것이 두려운 자는 챔피언의 꿈을 버리라.”고 말입니다.
두려워하는 순간 귀에 아무것도 안 들리고, 눈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입니다. 12명의 정탐꾼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보고한 것을 보십시오. 10명이 정탐꾼은 두려움에 가득 차 가나안 땅을 보니 그 땅은 사람을 삼키는 땅으로 보였고, 그 성은 너무나 높아 들어갈 수 없게 보였고, 사람들은 대장부들이라 자기네들이 메뚜기처럼 보인 것입니다. 공포에 질려 있으니 뭐가 제대로 보였겠습니까?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담대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며, 아름다운 땅으로 보이고, 그들의 밥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민14:6~9).
갈릴리 호수에 풍랑이 일자 제자들이 두려워 떨었습니다. 왜요? 예수님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8:26). 여러분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 세계로 다니면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이유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바로 이 말씀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9~20).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 줄 알기에 “오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면 나는 가짜 목사요.”라고 담대히 말하고, 귀신을 쫓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30년 목회를 하는 동안, 수많은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었고, 무수한 핍박도 받았습니다. 최루탄으로, 몽둥이로, 칼로, 권총으로 협박도 무수히 받았습니다. 경찰, 검찰에 조사를 받기도 했고, KGB에 끌려가기도 했고, 재판정에 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두렵지 않았습니다. 왜요? ‘지금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확고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롬8:31)?
우리가 진짜로 두려워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이 떠나버리면 큰일 나기 때문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그 하나님은 권력자, 재력가, 지력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보시고 이렇게 한탄하십니다.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여늘 나여늘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같이 될 인자를 두려워하느냐”(사51:12).
분명한 것은 두려움은 마귀가 주는 것이고, 두려워하면 그 두려움이 내게 정말 실상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욥3:25). 그러니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두려움을 몰아내십시오. 두려움은 유리벽과 같아서 깨면 깨지게 되어 있습니다. 빛이 들어오면 어두움이 떠나지요? 하나님을 믿는 믿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한다는 믿음으로 두려움을 밀어내면 됩니다.
여러분, 한강이 발원하는 곳에는 컵 하나도 띠울 수 없지만, 강이 되고 바다가 되면 항공모함도 띠울 수 있듯, 두려워하는 생각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것이 결국 당신의 인생을 망치게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담대함이 낳을 결과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매사에 담대함으로 나가십시오. ‘담대하라’는 말씀이 성경에 365번 기록된 것은 1년 365일, 곧 매일 담대하라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히13:5). 할렐루야!
두려움은 인류 최대의 적이다
공포가 있는 곳에 행복은 없다
두려워하는 자는
이미 죽은 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