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소중한 것을 인정해주자
오래 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교 부근에 자리를 잡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할 즈음이었다. 우리 어머니께서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할머니와 함께 살던 집을 대청소하셨다. 그것도 내가 며칠 집을 비운 사이에.
고등학교 신입생 시절부터 3년 동안 구독했던 한 무더기를 다 버려버렸다. 뭐 그것까지는 그럴 수도 있었다. 근데 나만의 보물이었던 해적판 LP를, 거의 칠백여 장이 넘는 소중한 딸의 피 같고 영혼의 생명줄 같았던 것들을 깔끔하게 정리하셨다. 어머니의 시선으로 보시기에는 못마땅한 것이고 별 것 아니셨겠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남포동 레코드 가게로 달려가서 틈틈이 한장 한장 떨리는 맘으로 모았던 것들인데…. 난 그날 이후로 소중한 것을 상실당한 채 우주의 방황하는 미아로 청춘을 보냈다. 어렵사리 구했었던 사라진 명반들이 대학 방송실에 꽂혀서 당당함을 뽐내는 것을 보는 것조차도 내 영혼에 생채기가 났고, 영원히 치료받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다.
삼십여 년이 지나고, 지금은 내 딸아이가 수집광이었던 엄마를 닮았는지 방방마다 책이 가득하다. 그 책들 덕분에 이사비용을 추가로 더 지불해야 하고, 보기에도 답답한 2미터가 넘는 책장을 해마다 하나씩 들여놔야 한다. 방마다 가득 찬 책들을 보면 언젠가 기회 봐서 모조리 대학 도서관에 기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나의 어머니처럼 그런 엄마는 될 수 없기에 딸의 책들을 묵묵히 바라보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애정과 열정과 시간과 노력이 담긴 자녀의 분신은 어지간하면 훼파시키지 않고 지켜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그렇게 되려고 노력한다. 부모라는 이유로 자녀의 소중한 것을 지켜주지 못하는 어미가 되기보다는 자녀의 입장에서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인정해줄 수 있는 어미가 되어야겠다. 나에게는 하잘 것 없는 그 책들이 딸의 지성의 산실이 되어 미래의 꿈을 키워갈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하기 때문이다.
그 옛날, 우리 어머니가 딸의 소중한 자산을 그리 훼파시키지 않았더라면, 그 명반들이 오늘의 나를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해줬을 텐데… 라는 아쉬움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는 이러한 아쉬움이 남지 않길 희망한다.
오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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