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떠나게 하는 말을 듣지 말라 (잠19:27)
사람의 육체는 무엇을 먹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기름기가 가득한 음식을 먹으면 몸에 기름기가 가득하게 됩니다. 그러나 채소나 과일을 주로 먹으면 비타민이나 무기질이 풍부하게 됩니다. 즉 ‘먹는 것이 내 육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영혼은 어떨까요? 영혼은 보고 듣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무엇을 보느냐, 무엇을 듣느냐가 내 영혼을 형성합니다. 영적인 것을 보고 들으면 영적인 영혼이 되고, 육적인 것을 보고 들으면 육적인 영혼이 되는 것입니다. 고로 ‘보고 듣는 것이 내 영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이 말씀은 믿음의 말을 들어야 믿음이 생긴다는 것인데,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 곧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천국에 대한 믿음, 구원에 대한 믿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만일 석가모니나 마호메트의 말을 들으면 우리에게 그러한 믿음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듣느냐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말을 듣고, 어떤 말을 듣지 말아야 할까요? 잠언의 말씀입니다. “내 아들아 지식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교훈을 듣지 말찌니라”(잠19:27).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말은 듣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회적인 저명인사나 지식인, 혹은 연예인들처럼 좀 배우고, 좀 잘난 사람들의 말에 곧잘 현혹되어 휩쓸리곤 합니다. 합당한 말이야 괜찮다지만, 그네들이 대통령이요, 왕이요, 박사라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말이나 이론은 따르면 절대 안 됩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브 호킹 박사는 몇 년 전에 영국의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국이나 사후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꾸며낸 동화에 불과하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뇌가 깜빡 거리는 순간 이후에는 어떤 것도 없다.” 또 그는 우주탄생에 신은 개입하지 않았다고도 했습니다. 호킹 박사는 현대과학의 신으로 추앙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는 대표적인 무신론자라는 것입니다. 그런 그의 말에 일부 사람들이 동조하여 신도 없고, 사후세계도 없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말을 들으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잡혀갔었을 때 많은 이스라엘 젊은이들도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 중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라는 젊은 청년 세 사람도 있었는데, 그들이 영특한 고로 느브갓네살이 그들을 바벨론 도에 지방장관으로 세웠습니다.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는 느브갓네살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느브갓네살이 자기 모습을 닮은 금신상을 두라평야에 세웠습니다. 이 낙성식에 지도급 인물들이 대거 참석했습니다. 이제 음악이 연주되면 모든 참석자들이 이 금신상에 절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넣어버린다고 경고를 받은 상황이었습니다. 모든 자들이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고개를 처박고 금신상에 절을 했습니다. 행여 죽을까봐서요. 그러나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는 절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이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느브갓네살은 그런 그들이 괘씸하여 풀무불을 칠 배가 뜨겁게 하며, “지금이라도 절을 해라. 그러면 살려주겠다.” 라며 회유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단호히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3:16~18). 그런 그들을 하나님은 건지셨고, 더욱 높이셨습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리오 왕 시절, 다니엘을 시기한 자들이 다니엘이 하루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을 알고는 음모를 꾸밉니다. 그들은 왕에게 나아가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신에게 무엇을 구하는 자는 그가 누구든 사자굴에 던져버리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왕이 변개치 못하도록 어인도 찍게 했습니다. 다니엘은 이 금령이 내려진 것을 알고도 평소 하던 대로 하루 세 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게 하는 말은 들을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사실이 왕에게 보고되었고, 다니엘을 아끼고 사랑하던 왕은 어떻게든 다니엘을 구원코자 했으나 어인을 찍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자굴에 다니엘을 던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한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건지셨고, 고레스 왕 때까지 형통케 하셨습니다(단6).
욥도 볼까요? 욥이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여 모든 것을 잃고 몸에 악창까지 났을 때 그의 아내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2:9). 욥의 상황은 얼마든지 하나님을 욕해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아내를 호되게 야단치며 입술로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후에 욥이 받은 축복은 욥기서 4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베드로를 칭찬하셨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예수님이 당신이 당할 일들에 대해 설명할 때 베드로가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16:22)라고 하자 좀 전에 그렇게 칭찬하셨던 예수님이 돌변하여 그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마16:23)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의 말이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라 인간적인 생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당신을 넘어트리는 말을 하는 자가 당신에게 은혜를 끼친 자일 수 있고, 사랑하는 가족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말에 더 흔들리고, 그 말을 무시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누차 말하지만, 신앙은 그 어떠한 것과도 타협할 수도, 타협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게 하는 말은 영혼의 독초와 같습니다. 자고로 독초는 아름답습니다. 보암직하고, 들음직하지요. 마귀가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서게 할 때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고전4:6)고 했고, 더불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고후2:17)라고 경고한 것입니다.
제가 교단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처럼 눈 덮인 산야요, 물 없는 사막 같은 길은 걷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의 말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는 것이 비록 힘들고 더딘 것 같았지만, 돌이켜 보건데 그것이 가장 첩경(捷徑)이요, 정도(正道)임을 지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의 지식인이나 지혜자의 말도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저 순리에 불과합니다. 오직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그 말씀을 벗어나는 말에는 귀를 닫고, 오직 하나님이 무어라고 하셨나, 예수님이 무어라고 하셨는가에 귀를 여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영혼이 잘 되고, 이로 인하여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한 축복이 당신에게 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