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회개는 하나님을 움직이는 힘이다 (출32:1~14)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돌이키신 경우가 몇 번 나옵니다. 완전하신 하나님, 후회가 없으신 하나님이 이렇게 뜻을 돌이키신 데는 다 까닭이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내려오지 않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아론을 주축으로 금장식을 모아 금송아지를 만들고는 그것이 신이라고 섬기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것을 보시고 노하셔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출32:10)”고 하셨습니다.
이에 모세가 납작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출32:11~12). 모세의 간절하고 진실된 기도에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사 화를 거두셨습니다.
요나의 이야기도 볼까요?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그들에게 ‘회개하지 않으면 사십일 후에 니느웨가 무너지리라’하고 외치라 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동쪽인 니느웨로 가는 대신 서쪽인 다시스로 가려고 했습니다. 요나는 잔악무도한 앗수르인들이 망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늘 위협적인 앗수르인들이 하나님께 용서 받는 꼴을 도저히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요나를 3일 동안 물고기 뱃속에 집어넣으셨고, 그로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요나는 하는 수 없이 니느웨에 들어가서 하룻길을 행하며 외치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요나의 소리에 니느웨 백성들이 금식을 선포하고 회개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왕도 보좌에서 일어나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재에 앉아 기도했습니다. 심지어는 짐승조차도 아무것도 먹이지 않고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이것을 보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욘3: 10).
또 하나님은 아합의 일도 돌이키신 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아합 왕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악독한 왕입니다. 그의 죄는 우상숭배와 더불어 나봇의 포도원 사건으로 극에 달했는데요. 급기야 엘리야가 아합에게 ‘너에게 재앙이 임할 것’이라고 경고를 합니다. 그러자 그 악한 아합이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 이를 보신 하나님이 아합의 시대에 재앙을 내리시지 않고 그 아들 대에 내리신다고 뜻을 돌이키셨습니다(왕상21:29).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게 한 원동력은 바로 회개의 기도입니다. 회개기도는 하나님의 뜻도, 계획도 돌이키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잘못했다고 우는 자식에게 회초리를 대는 부모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지난 15, 16일 우리는 부천체육관에 모여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먼저 이 민족이 타락한 것과 부패한 것, 그리고 우상을 숭배한 것을 회개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모세가 기도한 것처럼,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고, 아합이 회개한 것처럼 우리는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행여 이 민족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아 재앙을 내리실까봐 용서를 구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급히 집회를 배설한 까닭은 한반도 정세에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연일 북한은 대남방송을 통해 핵과 미사일을 쏘아 남한 땅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며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남북한 교류와 화해의 최후 보루인 개성공단까지 봉쇄했습니다. 긴장이 극에 달했지요. 그래서 우리는 사무엘이 블레셋의 침공을 앞두고 미스바에 모여 기도했던 것처럼 부천체육관에 모여 기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도 느끼십니까? 우리가 기도한 후에 물론 가시적인 결과는 아직 없지만 남북한 분위기가 조금은 달라진 것을요. 위기의 꼭짓점을 찍은 듯한 느낌이 와 닿지 않습니까? 저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돌이키셨으리라 믿습니다. 우리 민족을 용서하시고, 재앙이 없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그리고 통치권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평안과 더불어 우리의 신앙생활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딤전2:1~2).
전쟁은 하나님 손에 달렸습니다. 무기가 좋다고 전쟁에 이기는 것이 아니고, 강대국이나 우방국이 도와서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생존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삼상17:47).
사사기 4장과 5장에 보면 가나안 왕 야빈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때 드보라가 “전쟁이 성문에 미쳤으나 이스라엘 사만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고”(삿5:8)라고 노래합니다. 대적들이 이스라엘을 공략하려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서 이스라엘에겐 적을 방어하거나 공격할 무기가 변변치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철 병거를 지닌 하솔 군을 격멸시켰는데,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이적과 권능을 베풀어 이스라엘을 도우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무기로 이겼다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는 전쟁 뿐 아니라 세상에서 성공하고 승리하는 것은 환경이나 조건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에 달렸다는 말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지 않았을 때 이웃나라를 들어 치셨습니다. 지금 남북상황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 전쟁이 있을 것인가, 평안할 것인가는 우리가 하나님께 바로 섰는가 아닌가에 달린 것입니다. 개인적인 문제도 동일합니다. 내 교회가, 내 기업이, 내 가정이, 내가 평탄할 것인가, 아니면 우여곡절을 겪을 것인가는 바로 내 신앙이 바로 서 있는가에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의인 열 명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하지 않는다고 하셨고(창18),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만 있어도 이스라엘을 멸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렘5:1). 기도하는 우리 교단으로 말미암아 이 나라에 평안이 깃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단이 나라를 위해 전심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외침과 민족상잔의 비극 속에서도 하나님은 지금까지 우리를 지키셨고, 이 나라를 축복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나라를 향하신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나라를 통해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주님의 지상명령을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고로 이 사명을 잘 완수하는 것이 곧 애국하는 길이요,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하는 일에 전념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들이 됩시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삼상2:6~7). 할렐루야!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고 있는가
우리가 이 나라의
기도의 제물이 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