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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7호 목차 › 성경에서 배운다

의무가 먼저다!

687호 · 2013-04-26

‘철의 난초’로 불리며 버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추대 받는 아웅 산 수치여사는 버마 군사정권에 의해 15년 동안 가택구금을 당하면서도 평화적인 방법으로 민주주의 운동을 계속한 노고를 인정받으며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그런 그녀가 최근 한국을 방문해서 한 인터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당신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단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녀는 “단 한 단어다. 의무(duty)! 모든 이가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존중해야 한다. 나 역시 그러려고 노력해왔다. 지금도 나라가 먼저다.”라고 대답했다.

자유나 민주주의라는 대답을 예상했던 나는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국가가 개인에게 주는 혜택과 제도에 대해 기대하고 비판하기에는 능하지만, 우리가 국가에 다해야할 의무에 대해서는 얼마나 소홀하고 무책임한가? 이러한 나쁜 습관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은 수많은 성도의 의무를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의무(마22:35~40),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말고 기도할 의무(살전5:16~18), 십일조와 헌물의 의무(창14:17~24), 예배와 찬양의 의무(시150), 복음을 전하고 예수의 제자를 양성할 의무(행1:8) 등, 이 모든 것이 성도의 의무이자 축복을 부르는 특권이다.

하지만 이러한 의무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작아진다. 도대체 왜일까? 이러한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확신’, 즉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의 믿음이 너무 연약한 까닭이다.

밭에 감춰진 보물을 발견하고 그것이 너무 대단한 보물이어서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산 농부와 같이, 구원의 가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이 믿음이 부족하니 예배의 의무도, 사랑의 의무도 모두 버겁기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우리가 구원 받은 가치가 과연 얼마인지,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간절히 구해야 한다.

더불어 우리는 순종해야한다. 마태복음 21장에 기록된 두 아들의 비유를 보자.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는 명령에 ‘예’하고 가지 않은 맏아들 보다 ‘싫다’고 거부한 후에 순종하여 포도원으로 향한 둘째 아들이 칭찬받았다. 이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의무 앞에 무슨 생각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순종했는가가 칭찬받는 진짜 기준이라는 뜻이다.

구원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기초로 그것이 어떠한 명령일지라도 기꺼이 순종함으로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천국시민의 자세가 아닐까?

이러한 묵상의 눈으로 수치 여사를 보고 있자니 문득 사도 바울이 떠오른다. 남부러울 것 없는 사회적인 배경과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굳이 죄인의 신분으로 고국에 돌아가길 선택하고, 구금된 상황에서도 편지로 교회를 권면하고 성도들을 일으켜 세우며 전도자로서 자신의 의무를 다한 바울 말이다.

그는 비록 수치 여사처럼 가택구금에서 해방되어 이 땅에서 주는 노벨평화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분명 천국에서 큰 자라 일컬음 받고 열 고을을 다스릴 왕권을 얻었으리라!

의무를 다하고 하나님의 권리를 주장하라.

하인명

renmi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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