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料理) 예찬
난 40대 중반의 직장인이다. 하는 일은 영화를 만드는 제작사에서 제작관리를 하고 있다. 다소 특별해 보일런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관리업무와 같은 범주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3~4 년간 와 등을 비롯한 여러 영화를 제작했고, 그 중 70% 이상이 흥행하였다. 그러는 동안 영화계에서 주목을 받았고, 회사도 점차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나? ‘좋은 일에는 탈이 많다’는 뜻의 고사성어가 절실히 느껴지는 작년이었다. 회사 대내외적으로 여러 어려움이 한꺼번에 찾아와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아마 살면서 가장 강도 높고 길게 이어지는 스트레스인 것 같았다.
작년 여름, 나는 나름의 탈출구가 필요했다. 고민하다가 관련학과의 특수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했다. 이유는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은 사람들과 친분을 나누며 공부하면 마음이 좀 편안해 질 것 같았고, 두 번째는 ‘석사학위를 받아 놓으면 나중에 혹시 도움이 되지 않을까’ 라는 스펙 쌓기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가을학기 등록을 앞둔 어느 날, 저녁자리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에 한 친구가 “대기업 다니면서 승진하려고 새벽에 중국어학원 다니는 것은 자기계발이 아니다. 너 스스로가 좋아하는 것을 좀 더 프로페셔널하게 가꾸는 것이 자기개발이지. 너한테 필요한 건 그런 걸 찾는 것 같다.”고 한 말은 내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
나는 친구의 말에 100% 공감하면서 순간, 머릿속으로 회사근처에 있던 일식전문 요리학원이 떠올랐다. 점심때 지나다니며 벽면이 통유리로 되어있어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건물을 보고는 “어~ 저긴 뭐 하는 곳이지?” 하고 눈여겨보았던 곳이었다. 나는 아마추어 실력이지만 평소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기회가 된다면 요리를 한 번 배워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도 조금 했었던 것 같았다. 아주 조금.
다음날 사이트로 검색을 하면서 한참을 고민했다. 아무리 회사근처라 가깝긴 하지만 40대 중반의 직장인 남자가 요리학원 문을 열고 들어가기에는 나름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입학설명회에 참석한 후, 관리하는 분께 과감하게 카드를 내밀며 “3개월 할부로 해 주세요!” 라고 외쳤다. 대학원의 한 학기 등록금을 훨씬 웃도는 수강료를 지불했다. 와이프의 동의하에…. 이후 나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이렇게 재미있는 일을 왜 여태 몰랐을까?”, “ 내 나이 마흔 넷에 드디어 이런 취미를 같게 되다니…. 주님, 감사합니다.”
요리수업은 일주일에 두 번,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빡빡하게 진행된다. 먼저 2시간은 3~5가지의 요리 시연과 함께 선생님의 설명, 그리고 80분 정도는 각자 학생들의 실습, 나머지 시간은 평가 받고, 먹고, 뒷정리까지 마친다.
요리의 좋은 점은 첫째, 엄청난 집중력이 요구된다. 선생님의 시연이 있긴 하지만 막상 실습에 들어가면 3~5가지의 음식을 시간 내에 만들기가 쉽지 않다. 선생님이 “10분 남았습니다.”라고 고함치면서 시간을 재촉하면 정말 머리가 하얗게 된다. 그렇게 3시간 정도 초집중을 하며 무아지경을 겪고 나면 마음이 그렇게 편안해 질 수가 없다. 요리 중에 느낀 편안함은 이후 이어지는 본업의 여러 업무들을 대할 때도 여전히 이어질 수 있었다.
두 번째, 크리에이티브(creative)를 자극한다. 같은 시간, 같은 레시피, 같은 재료 등 똑 같은 조건에서 요리를 해도 결과는 다 다르다. 재료손질방법, 불의 세기, 양념의 정도, 그릇에 담기 등 모든 것이 영향을 준다. 결과물의 모양이 다 다르고 선생님의 평가도 당연히 달라진다. 정말 창의적 뇌사용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러한 창의적 욕구가 신기하게 해소된다. 기분 좋아진다.
점심 식사를 그럴싸한 일식으로 해결하는 것과 같은 반 동료들끼리 간간히 맛집에 모여서 음식 만들기에 대한 수준 높은(?) 이야기를 하며 수다 떨 수 있는 재미는 덤이다.
세 번째, 주말에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나의 취미생활을 가족들과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이러한 이유로 요리 예찬론자가 됐다. 주면 사람들에게 진심을 담아 “요리, 한번 배워 보십시오.”라고 권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목을 ‘음식 만들기’라고 정한 이유는 ‘가장 맛있는 음식은 남이 만들어 주는 음식이고, 음식을 만들면서 가장 큰 기쁨은 남이 맛있게 먹어 줄 때’ 이다. 요리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남을 위해 요리하지만 남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 된다. 이 얼마나 수준 높고 멋진 행위인가?
JK필름 대표 길영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