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작은 나무가 산을 지킨다
1992년 6월 7일, 한국 기독교 역사상 전무후무한 집회가 열렸다. 잠실에서 있었던 메인스타디움 집회. 그 역사의 현장에서 예배의 시작을 알리며 사회를 보았던 김종일 장로. 그 후 오랜 시간 변함없이 주일예배 사회를 진행하시는 김종일 장로를 만났다.
인터뷰를 시작할 무렵, 당신은 특별한 시련과 연단의 시간이 있지 않았기에 특별할 게 없다는 겸양의 말씀을 하셨다. 하지만 김종일 장로의 삶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하나님 말씀의 산 증거였고, 진실한 기도가 어떻게 응답받는지를 보여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분의 신앙과 철학, 그리고 그 분의 삶과 함께한 예루살렘 교단의 역사를 들어보았다.
제가 처음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것은 청년 무렵이었을 겁니다. 집안 대대로 불교였던 제가 교회를 가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한 가정의 상황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아져야함에도 불구하고 저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때 제가 바랐던 가정의 모습이 다름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창대한 복(창세기 12:2)이었음을 알았지만, 그 때에는 교회를 가면 막연히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란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처음으로 교회를 찾았습니다. 저는 제 생애 처음으로 드린 예배 시간의 말씀에 크게 격동하였습니다. 그 날의 그 설교 말씀은 저에게 주님의 말씀이 되어 큰 은혜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출석하면서 단란한 가족들의 모습과 다정한 청년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저렇게 화목한 가정이 되어 주일 성수를 하고 싶다’는 소망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서투른 기도로 저의 소망을 읊조리면서 나에게도 ‘주님 안에서 화평한 가정’을 주시길 소망하였습니다.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고 약 3년 정도 후에, 철산리 예루살렘교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저의 예루살렘 신앙이 시작되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예루살렘교회의 정착은 하나님과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산 시간들이었습니다. 아직 믿음이 나약하다고 생각하던 시절, 직분에 대한 두려움을 피해 예루살렘교회에 정착을 했으나, 이후 지금까지 저는 예루살렘교회에서 크고 작은 직분을 맡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에게 엄청난 시련과 환난의 시간이 찾아온 적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의 믿음이 반석처럼 굳건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항상 순종함으로써 주님의 뜻과 목사님의 말씀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제가 예루살렘 교단의 초대 장로로 장립될 수 있었던 것, 더구나 예루살렘 교단 역사상 전무후무한 최연소 장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주일학교 교사부터 장로까지 맡은 직분에 맞게끔 저의 믿음을 성장케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직분을 통한 믿음의 성장 말고도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넘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성경책도, 찬송집도 찾지 못하던 시절, 그 때 간절히 기도했던 화목한 가정의 소망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기도 방법도 몰랐던 저의 기도가 하나님의 은혜로 온전히 응답받았습니다.
사실 제가 딱 한 가지 목사님의 말씀에 따르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의 종’이 되라는 목사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밤낮으로 강권하시던 목사님의 그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던 것은 제가 잘나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목사님의 삶을 보면서 그분처럼 목회에 헌신과 열정을 다 바치고 모든 것을 희생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온전히 주님께 자신을 바치시는 목사님처럼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목사님의 단 한 말씀, ‘주의 종’이 되라는 그 말씀은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주님의 뜻을 따르고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 온 예루살렘 교단의 키 작고 못생긴 한 그루의 나무라고 생각합니다. 키가 큰 나무들은 목재로 베이고 열매 많은 나무는 자신의 과실을 자랑하다 태풍에 쓰러질 수도 있지만, 볼품없는 나무는 어떤 시련이 와도 그 자리에서 산을 지킵니다.
저는 지금껏 그런 나무로 이 자리에 머물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산이 나무를 키웠으니 이제 산사태가 나지 않도록 나무가 산을 지키겠습니다.
김종일 장로
(글: 전훈지 기자 ppjee@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