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목자가 되는 비결 (요10:10~15)
요한복음 10장을 일컬어 ‘목자장(牧者章)’이라 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옳은 목자상과 그릇된 목자상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강도와 같은 목자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요10:1). 사실 이런 목자는 목자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강도지요. 그저 양의 털이나 깎고 젖이나 짜려는 생각뿐인 자이기 때문입니다. 양을 통해서 자신의 유익이나 얻으려는 자 말입니다.
둘째는 삯군 목자입니다.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요10:12). 이런 목자는 삯군, 곧 삯을 바라고 일하는 목자입니다. 목자는 주의 종을 일컫는데, 주의 종을 직업으로 생각하여 자기에게 해가 되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 자, 봉급만큼만 일하는 자입니다. 목자는 직업 이상의 사명을 가진 자인데 말입니다.
셋째, 선한 목자가 있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4~15). 이것이 진정한 목자입니다. 양을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는 자, 양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오직 양을 위하여 일생을 사는 자입니다.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선한 목자의 표상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양을 위하여 상하고 찢기셨으며, 우리를 지키기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내어놓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보호할뿐더러 풍성히 먹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선한 목자가 되고 싶지만, 힘이 없다면, 능력이 없다면 과연 선한 목자가 될 수 있을까요? 사자나 곰이 양을 공격할 때, 양을 보호하고 싶은데 능력이 안 된다면, 그는 결과적으로 선한 목자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다윗이 아버지의 양떼를 치던 목동 시절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의 새끼를 물어 가면 달려가서 그 입에서 새끼를 빼어냈고, 그것들이 다시 공격하면 수염을 잡고 그것들을 쳐 죽였습니다(삼상17:34~35).
어떻게 다윗이 그럴 수 있었는가 하면 그에게는 물맷돌이라는 무기가 있었고, 또 그것들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기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한가할 때마다 물맷돌 던지는 연습을 수없이 했고, 결국 그것으로 골리앗까지 쳐 죽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무기가 없이는 선한 목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선한 목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사랑만 가지고 된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것들을 명령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계셨고, 아울러 성령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 세상은 사자와 곰과 싸우는 육체의 싸움이 아닙니다. 공중 권세 잡은 악한 영과의 싸움입니다(엡6:12).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무기가 있어야 합니다. 더욱이 양 떼를 지켜야 하는 목자라면 더 말할 나위 없습니다. 무기가 무엇이냐?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하늘의 권세를 받게 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1:8). 이 권능이 무엇입니까? 권세와 능력입니다.
즉 예수 이름으로 오신 성령을 받는 것은 예수님이 받은 권세와 능력을 동일하게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2천 년 전, 예수님이 악한 것들과 귀신들을 내어 쫓은 것처럼, 우리도 동일하게 그것들을 내쫓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무기가 같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기 바로 전에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눅24:49)고 말씀하신 이유가 이것입니다.
그 말씀대로 120문도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며 성령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무기가 지급되어야 악한 것들과 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가 귀신을 쫓은 것도 성령을 힘입어서였고, 70인의 제자들도, 오늘날 제가 귀신을 쫓는 것도 성령, 곧 무기를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양 떼가 있는 곳에 사자와 곰과 이리 떼가 몰리는 것처럼, 믿는 자들을 노리는 마귀와 악령과 귀신들이 득실거리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예수 이름으로 오신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까? 성령은 회개하고 기도한 자에게 임합니다(행2:38). 성령은 더러운 심령 속에는 임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기에 물세례를 받자 바로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인인지라 회개해야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의 모든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 분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늘 성령의 충만함을 얻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한 시간 기도한 자와 일곱 시간 기도한 자의 능력은 다릅니다. 그것은 한 시간 칼을 간 자와 일곱 시간 동안 칼을 간 자의 날이 다른 것과 같습니다. 요즘 목자들이 능력이 없는 까닭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막9:29)고 못 박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새벽 미명에 기도하심으로 무기를 준비하고 나가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셨고, 저녁에 다시 기도로 재정비하셨습니다. 휴대폰을 다 쓰면 저녁에 충전해야 다음 날 쓸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선한 목자가 되겠다는 목사들이 기도하지 않습니다. 심방 다녀야 하고, 설교 준비해야 하고, 상담하느라 기도할 시간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어떻게 양 떼를 지킵니까? 자기 자신도 못 지킬 판인데요.
여러분, 선한 목자가 그냥 되는 게 아닙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하루에 서너 시간씩 기도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악한 것들과 싸워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외국에 나가 집회를 할 때면 먼저 이렇게 선전포고를 합니다.
“오늘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나는 가짜 목사요.”라고 말입니다. 제가 가진 무기의 날이 잘 섰기 때문에 자신 있는 겁니다. 왜냐? 제가 집회를 나가면 일곱 시간 이상을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일곱 시간 기도할 때야 힘이 들지만, 예수 이름으로 얻은 무기를 쏘아대면 여지없이 귀신들이 쫓겨나가니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몇 해 전 아르헨티나 집회에 갔을 때, 그곳에서 최대 교회를 이끄는 목사 세 명이 어떻게 하면 귀신을 쫓을 수 있는지 제게 묻기에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노라고 말씀을 전한 후에 함께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목사들이 30분 이상 기도를 못하는 겁니다. 제가 그들과 함께 서너 시간 기도를 하는데, 이 목사들이 시쳇말로 용천지랄을 했습니다. 몸을 비틀고, 일어났다 앉았다, 나중에는 누웠다가 정말이지 난리를 쳤습니다. 그렇게 기도해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제가 기도하는 것을 보고 기함을 했습니다.
그 날 그 중에 올리엘 목사는 많은 것을 깨닫고, 한국까지 다녀가며 열심히 기도하여 성령을 받았는데, 그 후에도 매일 서너 시간씩 기도하더니 지금은 아르헨티나의 제일가는 교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여러분, 만 원의 가치와 천 원의 가치는 다릅니다. 서너 시간 기도하는 자와 한 시간 기도하는 자의 능력은 분명히 다릅니다. 다윗이 중무장한 골리앗의 이마에 물맷돌을 명중시킨 것은 그가 한두 번 연습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연습했을 겁니다.
사도행전 6장에 주의 종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에 전무하라고 했습니다. 기도의 달인, 전도의 달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는 곧 기도가 습관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기도의 달인이셨듯이 말입니다(눅22:39~41).
선한 목자가 되는 길은 기도하여 늘 성령의 충만함을 입는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을 수 있습니다. 마귀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성령입니다. 귀신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도 성령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늘 성령의 충만한 자 가 되십시오. 할렐루야!
기도가 떠난 사람에게는
기대할 것이 전혀 없다
연장이 좋으면 일을 잘 할 수 있고
무기가 좋으면 전쟁에 이길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