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문화 속에는 성장과 발전이 있다 (사55:8~13)
어느 유명한 학자들이 대한민국을 연구했답니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전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였던 나라,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가 어떻게 한 세대 만에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되었는가, 어떻게 60년 만에 경제 수혜국에서 경제 지원국이 되었는지를 연구했답니다.
그래서 그 연구결과를 책으로 발표했는데, 결론은 바로 ‘문화가 다르다’는 거였습니다. 60년 전 당시, 대한민국과 동일한 형편이던 방글라데시나 가나 같은 나라는 지금도 최빈국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반면, 대한민국이 경제 부국으로 우뚝 선 것은 우리의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그 문화가 뭐냐? 바로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해 보자.’라는 문화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빈민국의 상태로 있는 나라들은 그런 문화가 없다는 겁니다. ‘그냥 저냥 살지.’ 하기 때문에 성장발전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대한민국이 가능성이 무한한 나라이며, 젊은이 같은 힘과 저력을 가진 나라라고 결론짓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들의 연구결과가 조금은 미흡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저력이 다른 나라가 갖지 못한 ‘할 수 있다’는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근본 이유는 바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기독교 사상이 우리나라의 전통사상을 무너뜨리고 자리 잡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하나님의 문화, 곧 크리스천 문화’라고 명명하고 싶습니다.
세계사를 들여다보면 경제의 흐름이 기독교의 흐름과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제국이 언제 가장 왕성했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예수가 이(異)민족임에도 기독교를 국교(國敎)로 받아들였을 때입니다. 그래서 로마는 천년의 영화를 누렸습니다. 그 다음 유럽의 야만족들에게 기독교 문화가 들어가면서 유럽 각국은 중세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이 그 대표적인 예이지요. 그다음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지위를 갖게 되었고, 그 미국이 보낸 선교사로 인해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되더니 이 나라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지위까지 오르게 된 것입니다. 곧 전통문화로 인해 이 나라가 발전했다기보다는 하나님의 문화가 이 나라를 변화시켰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단도 그렇습니다. 제가 27년 동안 외친 것은 ‘하나님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시는 분(눅18:27)이시며,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막9:23)’는 것이었습니다. 그 정신이 오늘날 우리 예루살렘 교단을 만들었으며, 세계 70여 개국에 복음을 전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제가 광명시 철산동에서 1명을 놓고 개척할 당시, 저와 함께 개척한 동지는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 다 왕성한 교회로 성장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미자립교회로 2, 30명을 놓고 목회를 하고 있는 분도 부지기수입니다. 왜 그럴까요? 같은 예수 안에서 목회를 하는데 왜 결과가 이렇게 다를까요? 그것은 문화가 달라서 그런 겁니다. 그들이 믿는 예수님이나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나 같은 분이지만, 우리 교단은 ‘믿는 자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문화 속에 푹 젖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때론 핍박을 받고 모함을 받았을지언정 결과는 이렇게 판이하게 나타난 겁니다. 여전히 후진국으로 살고 있는 가나나 방글라데시에 없는 문화가 대한민국에 있었듯이, 다른 교회에 없는 문화가 우리 교회에 있었기 때문에 전 지구촌을 교구화할 수 있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차치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 중에도 어떤 사람은 할 수 있다는 하나님의 문화를 가진 반면, 어떤 사람은 사람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염려하여 안 된다는 사람의 문화를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똑같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결과는 엄청나게 다릅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사상과 생각으로 사는 자는 우리나라가 10대 빈국에서 10대 부국이 된 것처럼, 놀라운 성장과 발전을 이룰 수 있지만, 사람의 사상과 생각으로 사는 자는 여전히 세계 빈국으로 사는 나라꼴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문화에서 사람의 문화로 바뀌면 어떤 꼴이 날까요?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복음은 이스라엘에서 유럽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유럽은 천여 년 동안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문학과 음악, 미술, 심지어 건축물에까지 하나님이 가득했었습니다. 하나님의 문화 속에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14세기에 들며 그들은 인간을 재조명하고,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르네상스 사상’, 곧 ‘인문주의’에 빠집니다.
그러더니 문학에서 하나님을 빼고, 그림에서, 음악에서 하나님을 빼고 인간의 사상과 철학을 채우더니 결국 ‘신은 죽었다’고 철학자 니체는 말하기까지 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1,500여 년 동안의 영화는 사라졌고, 지금 유럽의 교회는 다 박물관이 되었으며, 모든 주도권을 미국에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미국마저 하나님의 문화에서 탈피하려는 조짐이 보입니다. 그러면 어찌 되는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것이 한국 교회가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5). 우리나라에 넘어온 촛대가 다른 나라로 옮겨지지 않도록 우리가 하나님의 문화, 하나님의 사상, 하나님의 생각 속에 있어야 합니다.
기업도,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문화에 절어 있어야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예수중심으로 가는 인물, 예수중심으로 가는 기업, 예수중심으로 가는 교회, 예수중심으로 가는 국가가 신명기 28장의 축복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문화는 마른 막대기에서 싹이 나는 문화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고, 바다에 길을 내는 것이 기독교 문화이며, 태양을 멈추고, 바위에서 생수가 터지는 것이 바로 기독교 문화입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병든 것이 소생하고, 물 위를 걷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문화요, 크리스천 문화입니다. 우리가 그 문화 속에 살 때 그 기적을 기대하고 맛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화가 우리 심령 속에, 구역에, 가정에, 사회에, 기업에 넘쳐나야 하는 것입니다.
‘안 된다. 못 하겠다’는 하나님의 문화가 아닙니다. 예수 안에 있으면서 사람의 생각, 사람의 기준으로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 안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문화로 살지 못하고, 사람의 문화로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못하는 겁니다. 가나안 정탐을 보냈는데 열 지파의 두령들은 사람의 생각으로 생각하니 우리는 메뚜기 같이 보이고(민13:33), 안 된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사상과 생각으로 바라보니 ‘그들이 밥(민14:9)’으로 보인 것입니다. 열 명은 하나님 안에서 쓰임은 받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문화를 갖고 있지 않은 까닭에 결국 멸망한 것입니다.
동일한 사건을 두고도 어떤 자는 안 된다고 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어떤 자는 할 수 있다고 하는 자가 있습니다. 문화의 차이입니다. 당신은 어떤 문화 속에 있습니까?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교회는 다니지만, 여전히 사람의 문화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까? 어떤 문화를 소유했느냐에 따라 우리나라가 10대 빈국에서 10대 부국이 된 것처럼, 당신도 그렇게 될 수 있고, 여전히 60년 전이나 동일하게 빈국으로 남아 남에게 구걸하는 신세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문화를 가지느냐에 따라 세계를 누비며 선교하는 교회가 될 수도 있고, 여전히 힘든 교회로 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문화를 소유하십시오. 하나님의 문화, 거기에 생명이 있고, 행복이 있고, 풍요가 있습니다. 할렐루야!
큰 생각에서 큰 결과
작은 생각에서 작은 결과
21세기 대한민국의 오늘은
크리스천 문화의 소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