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 붙었군!
여보게!
예전에 비행기 안에 비치된 잡지에서 읽은 내용인데, 어느 유명 영화배우가 극중 대사에서 욕을 많이 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그 사람은 욕이 입에 붙을 때까지 연습을 했다고 하더군. 툭 치면 욕이 나올 정도로 계속 욕을 했다고 하더군. 나는 그 기사를 읽고 그 배우가 괜히 스타가 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네.
우리 땅끝예수전도단 회원 중에 미국에서 오래 산 사람이 있는데, 그는 평상시에는 한국어로 대화를 잘 하는데, 급할 때나 무의식중에는 영어가 먼저 나온다더군. 미국에서 오래 살아서 영어가 입에 붙었기 때문이겠지. 어디 애당초 그랬을까만, 미국에 살면서 계속 영어를 쓰니까 그렇게 된 거지.
입에 붙었다는 것은 늘 말하는 것이기에 의식하지 않아도 그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상태를 말하지. 다시 말해서 입버릇이 될 정도로 익숙하다는 뜻이라네. 그럼 이쯤에서 내 입에 붙은 말은 뭔가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가끔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있지. 배고파서 죽겠다고 해서 먹여놨더니 배불러서 죽겠다고 하고, 힘들어서 죽겠다고 해서 놀게 했더니 재밌어서 죽겠다고 하고….
어디 그런 사람만 있나? 뭘 시키면 무조건 ‘못한다. 안 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있다네. 이래서 못하고, 저래서 안 되고…. 그런 사람에게 무슨 장래가 있을까 싶네. 안타까운 일이지. 그렇다면 자네는 어떤가? 자네 입에 붙은 말은 무엇인가?
여보게!
그럼 자네는 내게 묻고 싶겠지. 내 입에 붙은 말은 무어냐고? 내 입에 붙은 말은 바로 방언이라네. 나는 습관적으로 방언을 하지. 차를 타고 가면서도, 누워 있을 때도,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 막힐 때도, 무언가를 계획할 때도, 어려운 일을 당해도 나는 방언을 한다네.
‘해야지’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방언이 술술 나온다네. 이거야 말로 입에 붙은 거지. 그것이 내가 사는 원동력이지. 사도 바울은 이런 고백을 했다네.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14:18). 바울 사도도 방언이 입에 붙었던 모양일세.
하루아침에 방언이 입에 붙겠는가? 아니네. 습관이 붙을 때까지 노력해야 한다네. 그러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늘 방언으로 하나님과 기도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일세. 습관적으로 방언 기도를 한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하나님과 둘만의 비밀을 이야기 하는데 말일세.
사람이 갑작스런 일을 당하면 입에 붙은 말이 튀어나오게 되어 있지. 갑자기 차가 급정거했을 때 어떤 사람은 ‘엄마’ 그러고, 어떤 사람은 ‘아버지’ 하지. 그런데 어떤 사람은 바로 방언이 툭 튀어 나오지. 언젠가 우리 여자 성도 하나가 치한들에게 납치되어 가는데, 방언을 마구 해대니 그들이 미친 줄 알고 그대로 놓고 간 적이 있다네. 입에 붙은 방언이 그 자매를 살린 거지.
방언이 입에 붙길 원하는가? 그러려면 오늘부터 방언으로 기도하게. 입에 붙을 때까지. 영어가 입에 붙을 때까지 하려고 해도 입이 부르트도록 노력해야 하거늘, 하물며 하나님 나라의 언어가 입에 붙게 하려면 얼마나 노력해야 하겠나. 기도하게. 성령을 받게. 그래서 방언이 입에 붙게 되면 세상만사 걱정이 없어질 걸세.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전14: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