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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5호 목차 › 성경 에세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635호 · 2012-04-27

여보게

산새도 숲 속에서 둥지 하나면 족한 줄 알고, 거기서 사랑을 나누고, 새끼를 치고, 노래를 하지. 그것들은 둥지가 몇 평인지 따지지 않고, 비교하지도 않는다네. 또 욕심꾸러기의 대명사로 통하는 돼지조차도 자기 배의 70%만 채운다더군.

그런데 사람은 욕심이 끝없지 않나?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야. 그러니 어찌 채우겠는가.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잠27:20).

지난 멕시코 집회에 갔을 때, 나는 후안의 이야기를 듣고 기함을 했네. 후안은 과테말라 제2의 부호로, 내가 과테말라 집회에 갔을 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네. 그의 집은 수백만평으로, 그 안에서 말을 타고 다니면서 사냥까지 할 수 있을 정도였지. 가내 종업원이 200여명이나 될 정도니 얼마나 호화로운 생활이겠는가?

그러면 족한 줄 알고 감사하며 살았어야지. 안 그런가? 그런데 그는 더 갖겠다고 무기밀매에 손을 댔는데, 그만 그게 멕시코 마약집단으로 흘러들어간 게야. 그로인해 그는 결국 쇠고랑을 차게 되었다네. 넘칠 만큼 많이 갖고 있으면서 왜 그런 짓까지 했는지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네. 욕심에 눈이 가린 게지.

인욕(人慾)이란 것은 정말 끝이 없는가보이. 하긴 옛말에 ‘말 타면 종두고 싶다’는 말이 있지. 이건 사람에게 만족함이란 없다는 말 아니겠나.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인 다윗도 그런 사람이었지.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그에게 얼마나 많은 처첩이 있었겠나. 그 나라 최고의 여자들로 넘쳐났을 텐데도 다윗은 남의 아내를 탐내지 않던가. 그 여자 좀 갖겠다고 거짓말에, 살인까지…….

욕심이지.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욕심의 결과는 사망이라는 사실이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4~15). 다윗도 욕심 부린 대가를 톡톡히 치렀지.

여보게

만족할 줄 아는 것이 지혜네. 만족하지 못하면 아무리 큰 집에 살아도, 재물을 쌓아놓고 살아도 절대 행복할 수 없는 거라네. 우린 어차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네. 길어야 80, 90 사는 세상에 더 가져보겠다고, 더 이뤄보겠다고 욕심 부리면 그게 다 무슨 소용 있겠나.

다 부질 없는 짓이고, 다 헛된 것 아니겠는가. 있는 것에 족하게. 지친 몸 누일 집 있으니 됐고, 몸 가릴 옷 있으니 됐고, 진수성찬은 아니지만 배 안 곯으니 됐고, 매일 출근할 직장 있으니 됐고….

세상 것 다 가져보고 다 누려본 전도자가 이런 말을 했더군.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5:10). 디모데전서 6장 10절의 말씀도 들려줌세.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많이 갖는다고 많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네. 자네도 알잖은가? 천석꾼 집에는 천 가지 근심이, 만석꾼 집에는 만 가지 근심이 있다는 것을. 천석꾼이라고 하루 밥 다섯 끼 먹던가? 만석꾼은 잠 잘 때 방 두 칸 쓰던가? 아니지. 그러니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세나. 만족할 때 감사가 나오고, 만족할 때 행복이 찾아오니까.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잠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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