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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1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기도가 끝난 자에게는 기대할 것이 없다 (단6:1~28)

631호 · 2012-03-30

멕시코 집회를 떠나기 전 주, 저는 인천교회에서 수요예배를 인도했습니다.

저는 예배 전에 인천교회의 모든 주의 종들과 장로들을 단으로 집합시키고, 무릎 꿇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아마 한 시간쯤 기도했을 겁니다. 그런데 예배 후에 어느 권사님이 제게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목사님, 정말 오랜만에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권사님의 말씀대로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바로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무릎 꿇어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세상 무엇보다 값지고 귀한 것이고, 아름다운 모습임에 틀림없습니다.

여러분, 기도는 나의 진실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나의 사랑을 전하고, 내가 필요한 것을 아뢰고, 나의 형편과 처지를 아뢰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왜요? 그 분이 나를 만드셨고, 그 분은 전지전능하시며, 만물의 주인이시고, 만군의 주가 되시며, 그 분이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의 마음이 움직이면, 그 분의 손이 움직이면, 그 분의 발이 움직이면 만사형통의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통해 쉬지 말고 계속하라고 한 것은 단 하나, 기도밖에 없습니다(살전5:17). 성경을 보십시오. 믿음의 선친들은 모두 기도의 용사였습니다. 그들은 기도를 통해 기적을 일궈냈고, 기도를 통해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켰으며, 기도를 통해 사람들을 감화, 감동시켰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으로부터 이끌고 나와 가나안 땅을 지날 때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모세가 한 것은 오직 기도였습니다.

홍해를 만났을 때도(출14:15), 마라의 쓴 물을 만났을 때도(출15:25) 모세는 이 모든 것을 기도로 풀었습니다. 한나도 평생의 소원인 자식을 기도로 얻었고(삼상1:27), 히스기야가 앗수르 침공과 산헤립의 농락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왕하19:19), 그가 죽을병에서 고침을 받고 더 살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기도했기 때문이었습니다(왕하20:2).

또한 에스더가 풍전등화의 이스라엘 민족을 구할 수 있었던 것도 기도했기 때문이었습니다(에4:16). 오늘 본문의 다니엘이 굶어 허기진 사자의 굴속에서 털 끝 하나 상치 않고 살아나올 수 있었던 것 역시 그가 하루 세 번 기도를 그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힘이요, 이것이 기도의 능력입니다.

“그럼 기도하면 다 되냐?” 라고 묻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겁니다. 네, 다 됩니다. 되고말고요.

왜냐? 하나님이 약속하셨거든요. 하나님은 마태복음 7장 7절 이하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고, 요한복음 16장 23~24절을 통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분은 절대 식언치 않으시며, 한 번 뱉은 말에 후회가 없으신 분입니다. 약속을 생명으로 여기시는 분이기에 이 약속은 파기될 일이 절대 없습니다. 고로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고, 만사형통의 길입니다. 이 말씀을 달리 풀면, 우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약4:2).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얻지 못하고,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찾지 못하고, 열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우리는 일생을 기도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런 그 분도 이 땅에 오셔서 육신을 입고 계시는 동안 기도의 일생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할 때 사십일을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마4:2). 그리고 예수님은 동트기 전에 일찍 일어나셔서 기도하셨습니다(막1:35).

뿐만 아니라 기적과 이적을 행하신 후에도 한적한 곳에 가셔서 저녁에 기도하셨습니다(눅5:16). 또한 12제자를 뽑을 때에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고(눅6:12),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땀방울이 핏방울로 변할 정도로 애절한 기도를 하셨습니다(눅22:44). 그리고 십자가상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고 인자의 삶을 마감하셨습니다(눅23:34). 예수님은 그의 사역을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마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기도의 일생을 살아야 합니다. 짧게는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쳐야 하며, 길게는 일생을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마쳐야 합니다. 그래야 마지막까지 탈나지 않고 갈 수 있고(벧전4:7), 사는 동안 시험에 들지 않을 것이며(눅22:46), 사는 동안 삶에 장애물이 없을 것입니다.

제 목회 28년을 단 한 마디로 정의하라면 ‘기도 목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 힘든 세월을 꿋꿋이 버틸 수 있었느냐?’고 물으셔도, ‘어디서 그런 능력이 나오는가?’ 하셔도, 목회성공의 비결을 물으셔도 제 답은 오직 하나입니다. “기도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습니다.” 이 나이에 하루가 멀다 하고 전 세계에 나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도, 한 달에 반 이상 교회를 비워도 교회에 문제가 없는 것도 다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2시간 기도합니다. 또 밤에 일과를 마치고 2시간 기도합니다. 이 하루 4시간의 기도는 기초대사량 같은 것으로, 제가 살기 위한 마지노선입니다. 그러나 집회에 나가면 여기에 3시간 정도를 보태어 보통 7시간 기도합니다. 그래야 말씀을 전하고, 능력을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에 문제가 있습니까?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과부처럼 기도하십시오. 교회에 문제가 있습니까? 초대교회처럼 전혀 기도하십시오(행12:5). 국가에 문제가 있습니까? 이스라엘이 미스바로 모여 기도했던 것처럼 기도하십시오(삼상7:5). 병이 들었습니까? 히스기야처럼 기도하십시오(사38:2). 지혜가 부족합니까? 기도하면 하나님이 주십니다(약1:5). 결단이 필요한 시기입니까? 기드온처럼 기도로 여쭤보십시오(삿6:36~ 40). 우리에게 복을 못 줘서 몸살이 나신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 응답하실 것입니다.

기도가 없는 삶은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은 이스라엘과 같습니다. 먹을 것이 없고, 되는 것이 없는 삶, 뿌옇기만 한 삶 말입니다. 그러니 기도해야 합니다. 엘리야가 기도했듯이 우리도 기도해야 합니다(왕상18:42). 그러면 우리의 삶 속에 단비가 내려 더러운 것이 다 씻기고, 초목이 살아나고, 강물이 다시 흐르고, 나무가 열매를 맺는 그런 삶이 시작될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삼상12:23). 왜냐하면 기도하지 않는 것은 불신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때로는 부르짖어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렘33:3). 반면에 골방에서 은밀히 기도해야 할 때도 있지요(마6:6). 눈물로 기도할 때도 있으며(시126:5), 감사로 기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빌4:6). 그리고 함께 기도하는 합심기도도 있습니다(마18:19).

에베소서 6장 18절에는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기도를 습관화하라는 말씀이며, 기도를 일상화하라는 말씀입니다. 습관은 생각보다 빠른 것으로, 우리가 무슨 일을 당하든, 무슨 일을 하든지 기도가 선행,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습관화, 일상화는 바로 방언기도입니다. 방언기도만이 무시로 기도할 수 있고, 오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강력한 무기를 두고 적이 무서워 두려워하고 있다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정답을 옆에 두고도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이 또한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기도가 바로 세상을 이기는 무기요, 세상을 사는 정답입니다. 그런데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뭐가 그리 바쁩니까?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할렐루야!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기도의 무릎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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