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위에 잠을 자는 바보가 되지 말라 (롬13:1~5)
얼마 전에 한 성도가 상담을 왔는데, 잔뜩 공포에 질려 있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러냐고 했더니, 사업 때문에 부득이 사채를 썼는데 그것을 미처 못 갚자 매일 사채업자들이 공갈협박을 한다고 했습니다. 또 이자에 이자가 붙어서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딸을 납치하겠다는 협박도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하루하루가 두렵고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고 그 성도는 말했습니다.
저는 그 성도의 말을 듣고 말했습니다. “집사님, 법 뒀다 뭐할 겁니까? 신고하십시오. 그들의 말을 녹음해놨다가 증거로 삼으십시오.” 그랬더니 그 성도는 보복이 두려워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악과의 싸움에서 두려워하면 지는 겁니다. 담대하게 악과 싸워야 합니다. 법은 강한 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약자를 위해 있는 겁니다. 법이 당신을 보호해줄 것입니다.”라고 말해줬습니다.
여러분, 대한민국은 법치국가(法治國家)입니다. 법아래서 당연히 국민은 보호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무법천지가 되어 가느냐 하면, 우리가 법을 활용하지 못하고, 악에게 담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법이 왜 존재합니까? 선한 자를 위해, 약한 자를 위해 법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또 원칙을 지키는 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법이 있는 겁니다. 만일 법이 없다면 약육강식의 사회가 될 것이고, 반칙으로 인해 사고가 빈번한 사회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법이 있는 것입니다.
법은 산소와 같아 평상시에는 전혀 그 존재에 대해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법을 이탈했을 때, 즉 반칙을 했을 때 법이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됩니다. 우리가 교통법규대로 운전하거나 보행을 하면 법과 무관하지만, 과속하거나 신호위반을 한 경우 딱지를 떼고 벌금을 받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법의 심판을 받을 때 억울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 법으로 인해 다른 생명이 보호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법으로 인해 나도 보호받는다는 걸 알아야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고 선한 법이 있다고 해도 법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악인이 무서워 법을 활용하지 않으면 이 세상은 무법천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 악인도 법 앞에서는 움찔합니다. 감옥에 갔다 온 사람일수록 감옥가기가 두려운 법입니다. 그러므로 악과 싸울 때는 법을 가지고 싸워야 합니다. 그들을 제재시킬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담대하게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40일 금식하신 예수님을 마귀가 시험할 때에 예수님이 힘으로 그들과 싸우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마4:1~11). 근거를 대고, 말씀을 가지고 맞서니까 악한 마귀도 뒷걸음질 쳤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현장에서 붙잡아 예수님 앞에 데려와 고소할 조건을 찾을 때, 주님은 땅에다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셨습니다. 무엇을 썼을까요? 아마도 율법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치라.” 그들이 예수님이 쓰신 글을 보니 자신들의 죄가 다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슬그머니 모두 도망쳤습니다(요8:1~11).
그렇습니다. 법은 우리의 죄가 무엇인지 알게 합니다. 법은 사람을 온전하게 만드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죄가 무엇인지 알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악인들도 법을 들이대면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알기에 아무 말 못하는 겁니다.
율법도 그렇습니다. 율법이 사람을 의인으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율법은 거울과 같아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합니다. 거울을 보면 이빨에 고춧가루가 끼었는지, 머리가 헝클어졌는지, 눈곱이 꼈는지 알게 하여 나로 하여금 바로 갖추게 하듯, 율법이 그렇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롬7:7). 법이 없으면 죄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온전하게 지킬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율법으로 우리는 절대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20). 그렇다면 지키지도 못할 율법을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주셨을까요?
그것은 법의 테두리를 정해주심으로 인해 우리로 죄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며, 예수 앞으로 우리를 인도하기 위해서 율법이 있는 것입니다.
법이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고, 선하고 옳은 사람으로 인도하듯 말입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갈3: 24). 곧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는 이정표와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 율법은 완성된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예수님은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여러분, 사랑하면 죄를 범치 않습니다. 사랑하면 남을 해치지 않으며, 남의 것을 도적질 하지 않고, 남을 곤란하게 하지도 않습니다. 고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인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9~10).
하나님 나라는 법치국가입니다. 고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법을 준수해야 합니다. 법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12). 이 법을 준수해야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여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법을 위반할 시에는 정죄를 받고 맙니다.
선진국일수록 법이 강력합니다. 그것은 그 법으로 국민을 얽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선민으로 하여금 법 안에서 자유와 평강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층계 밖으로 나가면 떨어져 다치기 때문에 그 난간을 높이 쌓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교회에 나가면 하지 말라는 게 많아서 교회에 가기 싫어.” 이렇게 말들 하는데, 그것은 억압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죄를 짓지 않게 하여 넉넉히 영생에 들어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주신 법으로 악한 마귀를 담대하게 내쫓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에는 이런 법이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7~18).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아(요1:12),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을 수 있다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이 법을 마귀에게 들이대면 악한 마귀는 쫓겨 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 법으로 예수님도, 그의 12제자들도 귀신을 내쫓았고, 70인의 제자들도 귀신을 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도 이 법을 믿기에 담대하게 귀신을 내쫓는 것입니다. 이 법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런데 왜 이 법이 당신에게서 효력을 나타내지 못하느냐 하면, 여러분이 담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들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안 나가면 어쩌냐?” 하면서 두려워하기 때문에 안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불법자는 법 앞에서 도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무서워 도망가는 게 아니라 법이 두려워 도망가는 겁니다. 악한 마귀를 이기신 예수 이름을 듣고 도망하는 것이니 두려워 말고 담대하게 귀신을 쫓아 이 땅에서도 천국생활 하시기를 바랍니다. 부디 하나님의 법이든 세상 법이든, 법 위에 잠을 자는 바보가 되지 말고, 법 안에서 자유와 평강을 누리는 자가 되십시오.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인 줄 우리는 아노라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딤전1:8~11). 할렐루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유와 평강을 누려라
어두움이 빛 앞에서 쫓겨가듯
불법은 법 앞에서 쫓겨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