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전쟁터는 교회가 아니다
몽골제국 원(元)나라의 세조 쿠빌라이는 정복과 통치의 문제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마상(馬上)에서 세상을 정복할 수는 있겠지만, 제국을 통치할 수는 없다는 통찰이다. 대제국 로마의 승승장구는 잘 조직된 로마군의 전투력에도 있었지만,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해 로마시민 전체가 똘똘 뭉쳐 카르타고 등 외적과의 전쟁에 올인할 결과다.
그러나 대제국 로마 역시 북아프리카, 유럽, 페르시아에 이르는 팍스 로마나를 구가하기 시작하면서 내부로부터 무너져 내렸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역사의 자부심인 고구려만 보아도 이 사실은 증명된다.
광개토대왕이나 장수왕 시절의 정복전쟁은 고구려를 아시아 최강의 대제국으로 이끌었지만, 말에서 내려와 내치(內治)에 골몰하기 시작하면서 고구려 역시 쇠락의 길을 걷는다. 많은 역사의 영웅들이 국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외정복전쟁을 강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교회 역사를 살펴보아도 마찬가지다. 초대교회 핍박의 역사는 곧 생존의 문제였다. 언제 발각되어 사자 밥이 되거나 십자가형에 처해질지 모르는 속에서도 교회는 외부의 극심한 박해와 싸우며 전 세계로 하늘나라를 확장해갔다. 그러나 교회가 대제국 로마를 점령하고 중세 기독교 제국을 건설하며 세상권력 위에 서기 시작하더니 역시 부패와 타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루터의 종교혁명 등 대대적인 노력이 없지 않았으나 오늘날 유럽의 교회를 보면 그 참담한 실상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교회는 핍박을 먹고 자란다. 교회의 부흥과 침체의 역사를 살펴보아도 이는 자명하다. 교회가 세계질서의 주류로 떠오르면서 침체하기 시작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이단시비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을 짐스러워할 일만은 아니다. 그것이 우리를 성장시킨 동인이었던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는 전쟁터가 아니다. 교회의 전쟁터는 세상이다. 세상을 향하여 끊임없이 하늘나라를 확장해가는 영적 정복전쟁을 계속할 때만 교회는 교회로서의 힘과 생명력을 갖는다. 그 사실을 모르지 않을 터인데도 오늘날의 교회는 교권화의 망령에 사로잡혀 교회의 머리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며 빛과 소금이 되어야함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역으로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가 되고 있지 않는가. 교회 안을 전쟁터로 착각하는 무지한 교회 지도자들 때문이다.
교권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교리들을 양산하고,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는 교회와 종들을 향해 포를 발사한다. 예수님은 소경된 인도자들, 곧 무지한 교회 지도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23:13).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몰라서 그러했든, 알면서도 교권을 지키기 위해 그러했든, 예수를 배척하고 십자가에 매달았던 유대교회 지도자들의 전철을 오늘의 교회 지도자들도 그대로 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또한 평신도들도 각성해야 한다. 지금이 무슨 문맹시대도 아니요, 모든 정보를 한눈에 확인하고 판단할 수 있는 인터넷 세상인데, 아직도 소경된 인도자의 말에 휘둘리고 있다면 이는 더 이상 핑계 댈 수 없는 일이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성령을 훼방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죄 사함이 없다고(마12:31~ 32).
우리가 기뻐하고 감사할 것은 목사님이 그 힘든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세계선교를 위해 우리 교회의 전력을 투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회의 생명력은 바로 세상을 향하여 끊임없이 구원의 포를 쏘아대는 영적 정복전쟁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목사님의 사역을 위해 함께 기도하며 함께 싸우는 것이 결국 우리의 영적 생활을 강건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교회가 아무런 문제없이 지구촌으로 지경을 넓혀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겠다.
교회가 전쟁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어깨싸움이나 하는 곳은 더더군다나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공급하고 영적 군사를 길러내어 세상으로 내보내는 영적 군사학교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영적 싸움은 우리의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지기까지 멈출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최대의 명령, 곧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만이 우리가, 우리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Henry H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