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을 차야 공을 바라보고 뛰지 않겠는가
축구경기에서 공격수가 할 일은 골을 넣는 것이다.
팀의 승리라는 목적을 위해 어떻게든 상대 수비수를 제치고 골문에 공을 집어넣으려 필사적으로 공격하는 장면을 축구경기를 통해 많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스타플레이어라고 해도 공을 잡은 채 폼만 잡고 있어서는 절대로 골을 넣을 수 없다. 관중의 환호에 마음을 빼앗겨 폼만 잡고 있다가는 곧바로 공을 뺏기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격수들은 부지런히 동료를 찾아 패스를 하거나 앞으로 공을 차며 골문을 향해 달려간다. 축구선수가 공을 차고 달리는 모습을 비유로 목사님은 목표설정에 대해 설교하시곤 한다.
“축구선수가 공을 차야 그 공을 향해 뛰는 겁니다. 곧 목표가 있어야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이 말입니다. 인생에 아무런 목표도 없이 사는 사람은 마치 부평초 같아서 물에 떠있긴 하지만 그것은 단지 물결에 떠밀려 지향점 없이 돌아다닐 뿐입니다.
따라서 그 인생은 곧 좌초하고 말 것입니다. 아주 작은 목표라도 좋습니다. 매일 매일 작은 목표를 세우고, 그 일을 이루려 애쓸 때, 그런 작은 목표들의 달성이 이어져 나중에 큰일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내 앞에 있는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합니다.
한 영혼을 상담하든, 작은 모임에서 설교를 하든 최선을 다해 그 일을 이루려 애씁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알고 단에 오릅니다. 언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더라도 후회 없이 가려고 말입니다. 작은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큰 항아리에 물을 부어 채우려면 오래 걸립니다.
우리가 비전이라고 말하는 큰 목표는 오랜 기도와 인내로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 매일 매일, 혹은 단기간에 수행해야 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몇 달, 몇 년이 걸리는 장기간의 목표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도한다는 것입니다.
목표를 세우고 뛴다는 것입니다. 바보들은 매일 결심만 합니다. 작심삼일로 그칩니다. 따라서 매일 제자리에서 다람쥐 쳇바퀴 인생을 삽니다. 마치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말입니다. 장정이 일주일이면 건너갈 길을 그들은 마음을 빼앗겨 이리 저리 망설이다 40년이 걸려서도 도달하지 못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어갔습니다.
목표가 없는 사람들의 결국입니다. 목표를 세웠다가도 작심삼일로 그치는 바보들의 모습입니다. 나는 이번 대구집회에서 여인의 몸이지만, 대구교회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한송이 목사에게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다음에는 대구컨벤션센터에 나를 세우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대구 스타디움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합니다.
정말 멋있지 않습니까? 그런 목표와 비전이 있기에 그 인생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뛸 것 아닙니까? 그 삶이 아름답지 않습니까? 이는 한송이 목사의 전매특허가 아닙니다. 누구나 뜻을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 하고자 하는 자를 도우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목표를 이루어주십니다.
내가 샘플 아닙니까? 단 한명을 놓고 시작한 목회가 오늘날 전 세계 70여 개국에 가지를 뻗게 된 것이 남이 비웃든 말든 세계교구를 목표로 쉼 없이 달려온 결과입니다. 내가 성도여러분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나를 닮기 바라는 것도 오직 믿음입니다.
2011년이 다갔다고 하지 마십시오. 아직도 20일이 남았습니다. 무엇이든지 시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공을 차고 골문을 향해 달려봅시다. 수비수의 태클에 다리가 다칠까 두려워해서는 결코 골을 넣을 수 없습니다. 걸려 넘어질 수도 있고, 볼을 뺏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 시도하는 겁니다. 골을 넣을 때까지 말입니다.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조급하지 말자. 조급증은 일을 그르칠 뿐이다.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란 뜻이다. 다시 말하지만, 열매를 따는 자는 심은 자가 아니라 그 열매를 끝까지 기다리는 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