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좋은 것을 줘야지
여보게,
오늘은 내가 남에게는 좋은 것을 줘야한다는 이야기를 해볼까 하네. 우리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 비비가 로얄에게 물려서 다리뼈가 탈골 되었다는 이야기는 지난번에 했었지? 그래서 병원에 입원까지 했지만, 결국 다리를 절게 되었다네. 사실 나는 비비를 잘 아는 모 기업대표에게 주려고 약속했었네. 그 녀석이 귀엽게 생겼거든. 그런데 그만 다리를 저는 장애견이 되고 만 거야.
나는 비비를 주기로 한 기업대표에게 “약속을 못 지켜서 미안합니다. 비비가 장애견이 되어서 줄 수가 없군요. 내가 키워야겠습니다.”라고 말했지. 그랬더니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하더군. “당신은 언어자체가 다르군요. 다른 사람 같으면 장애견이니까 남이나 주려고 할 텐데 당신은 장애견이라 당신이 기른다고 하니 말입니다.” 당연한 일에 그가 감동을 먹으니까 되레 내가 무안해지더군.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이 깊었다네. 나에게 상담을 오는 사람들 중에 자식 일로 오는 사람이 상당히 많지. 그런데 그들 중에는 내 앞에서 거침없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말을 하는 성도들을 본다네.
“목사님, 큰 아들은 공부를 잘하니 의사를 만들고, 둘째 녀석은 운동을 잘 하니까 세계적인 운동선수로 자랐으면 해요. 근데 막내 녀석은 잘 하는 것도 없고, 말도 지지리 안 들어요. 목사 길이나 갔으면 좋겠어요.” 참, 기가 막힐 노릇 아닌가? 목사가 누군가?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인데, 자식 중에 제일 못한 놈으로 드리겠다니. 정말 나는 그 말을 듣고 귀를 씻고 싶은 심정이었다네.
남에게 선물을 줘도 좋은 것으로 줘야 하는데, 어찌 하나님께 제일 못한 것으로 드리겠다는 것인지. 그래놓고 하나님께 복 달라 하는 것을 보면….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찐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찐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말1:6~8).
여보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가장 좋은 것이어야 하네. 내게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 최고의 것을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가납하신다네. 하나님이 없어서 우리 것을 노리시던가? 하나님이 욕심이 많으셔서 우리 것을 빼앗으시던가?
아니지 않은가? 다만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먹다 남은 떡을 드리듯, 씹던 껌을 드리듯 하면 하나님이 어떠실까? 그런 자가 복 달라고 하면 하나님도 먹다 남은 떡을 주시지 않겠는가?
하나님께 자식을 드리려거든 가장 잘 난 자식을 드리게. 하나님께 시간을 내드리려거든 가장 왕성한 때를 드리게. 돈 있고, 권력 있고, 힘이 있을 때 주의 일을 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