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라는 그릇 속에 예절을 담아라
이튿날 아침, 식당에서 만난 목사님은 한숨도 주무시지 못한 모습이었다. 첫날 집회는 황당함 그 자체였고, 밤 내내 쏟아진 폭우는 정말 아득한 기분이었다. ‘어쩌란 말입니까? 하나님~!’
그러나 목사님은 한 가지 믿음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성도들이 합심으로 기도해주었다. 금요집회에 기도해줄 것을 요청했는데, 우리 성도들이 기도를 마치는 시간에 비가 딱 멈췄다. 분명한 표적이다. 나는 우리 성도들의 기도를 믿는다.”
목회자 세미나에서 맛본 감동은 더욱 확신을 주었다. 목사님은 늘 강조하시는 대로 목회자의 지식함양과 생각의 전환을 촉구하셨다.
“하나님의 종들은 성경에 해박한 지식은 물론 인격을 갖춰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7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실력이 없는 사람은 가르쳐서 키워 쓸 수 있지만, 인격과 예의가 없는 사람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품위라는 그릇 속에 예절을 담아 영과 혼과 육에 주름 잡힌 것이 없어야 합니다. 리더가 반드시 갖춰야할 조건들입니다.
나는 사람이 많고 적은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이 중에 한 사람만 하나님께 붙들려도 이 멕시코는 변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멕시코에 큰 뜻을 품고 계십니다. 독수리가 뱀을 물고 있는 멕시코 국기만 보아도 예사롭지 않음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울어야 합니다. 주의 종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울 때, 하나님은 이 멕시코에 놀라운 역사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멕시코를 축복하소서! 다 함께 찬양합시다.”
한껏 고조된 분위기 속에 미국에서 온 김성자 전도사의 찬양, “멕시코를 축복하소서!”가 울려 퍼졌다. 곳곳에서 눈물로 찬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통성으로 기도했다. 눈물로 애통하는 종들의 모습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영혼을 울리는 찬양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절감했다. 목사님은 숙소로 향하는 차 안에서, “할멈의 찬양이 설교와 맞아떨어졌다.”며 기뻐하셨다.
집회가 계속될수록 더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기도의 응답이었다. 목사님은 그 애끓는 심정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영상과 신문만 아니면 아무 걱정이 없겠다. 왜냐하면 한국에 돌아가면 기대에 찬 눈으로 기다리고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 집회실황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끌탕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심정을 누가 알겠는가? 그러나 이 영상과 신문이 있어 나를 다잡아준다. 반드시 마지막 날에는 우리가 기도한 대로, 우리 성도들이 합심으로 기도해준 대로 하나님은 역사해주실 것이다. 나는 연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떻게든 명작을 가지고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 저녁, 토요일 밤이었다. 한국은 주일 아침, 한국의 모든 성도들이 교회에 나와 목사님을 위해 합심으로 기도하는 그 시간, 하나님은 그 기도대로 역사해주셨다. 이슬라(Isla) 야구장을 가득 메운 인파, 그리고 성령의 충만한 임재 속에 우리는 감사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나, 한 번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하나님, 우리의 간절한 기도에 언제나 동일하게 응답해주시는 하나님, 어찌 그 하나님 우리 아버지를 찬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목사님은 단에 오르시자마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시는데, 마치 폭포수가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성령에 강하게 사로잡힌 모습이었다. 처처에서 귀신들이 드러나 소리를 지르며 요동했고, 목발을 들고 걸으며, 휠체어에서 일어나 걷는 역사가 이어졌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고자 몸부림치는 자를 반드시 돌아보시고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돌리며, 기도해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주님의 이름으로 감사를 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