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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을 짚기도 전에 침통부터 잡으랴!

609호 · 2011-10-28

“감기 조심하세요, *** 에스!”

기억나시나요? 환절기가 되면 자주 등장하던 감기약 CF입니다. 저는 사실 이 광고를 대할 때면 어린 시절의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는 항상 찡그린 표정을 지으셨지요. 바로 두통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중에 나와 있는 두통약 중에 좋다는 약들은 다 써 보았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습니다. 계속되는 통증 때문에 진찰을 받아보아도 돌아오는 답변은 항상 똑같았습니다.

“신경성인 것 같습니다. 마음을 편하게 하시고 푹 쉬시면 한결 나아지실 겁니다.”

종합병원을 가 봐도, 이름 있는 대학병원을 가 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MRI다, CT다 하여 이런 저런 검사를 다 받아보았지만 딱히 그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어머니의 원인모를 두통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나마 다른 약에 비해 광고에 나온 그 약이 효과가 있었나봅니다. 하여 그 덕에 저는 부지런히 약심부름을 다녀야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 그 약에 대한 내성이라도 생긴 것일까요? 처음에는 한두 병 정도로 견디시더니 시간이 지나자 한꺼번에 세 병, 네 병씩, 약을 찾는 분량이 늘어만 가는 것이었습니다. 가족들은 약에 중독이라도 되는 것 아닌가 하여 만류했지만, 고통스러워하시는 어머니를 뵈면 정말 할 말이 없었습니다.

결국, 가족들의 우려 속에 어머니는 다시 한 번 병원을 찾았습니다. 혹여 ‘더 나은 장비로, 더 나은 의사 선생님께 진찰을 받으면 두통의 원인을 알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서 말입니다. 하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답변은 ‘신경성’이었습니다. 그날, 고개를 떨구며 일어서는 어머니를 향해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권유했다고 합니다.

“이왕 오신 김에 밑에 있는 이비인후과에도 한 번 들러보시지요.”

아직 젊은데 반하여 귀가 너무 어둡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깜짝 놀랄 결과가 나왔습니다. 신체 균형 감각을 담당하는 달팽이관에 고름이 그득 들어차 있었던 것입니다. 그 엄청난 고름주머니가 온통 신경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장 일정을 잡고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했던지 한 두 시간이면 끝날 것이라던 수술은 무려 여섯 시간을 훌쩍 넘겼습니다. 그것도 한 쪽 귀만 말이지요. 이후 회복 상태를 보아가며 다른 쪽 귀도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그 고름주머니들을 떼어 내자 어머니의 두통은 그야말로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누가 예상이라도 했을까요? 두통의 원인이 바로 귀에 있었을 줄… 지금까지 계속 헛다리만 짚은 셈이었지요.

때때로 우리는 이와 같은 우를 범하곤 합니다. 맥을 잡기 전에 침통부터 집어 드는 성급함이 그것입니다. 정확한 원인 분석이 없이 정확한 처방 또한 기대하기 어려운 법이지요. 이는 영혼의 문제, 그리고 삶의 문제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지금 고민하는 문제가 있습니까?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막막하기만 한 상황입니까? 드러난 현상, 나타난 결과에만 집착한다면 문제의 근본을 놓치기 십상입니다. 고착된 지식으로 모든 문제들을 껴 맞추려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의 원인을 냉철하게 살피기보다 드러난 상황에 떠밀려 헉헉대다 보면 고통의 악순환만 더욱 가중될 뿐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앓아온 것이 두통이니까 당연히 머리에 문제가 있을 거라는 고착된 지식이 어머니를 평생 괴롭혔던 것처럼, 당신의 틀에 박힌 지식과 생각이 당신을 일생 괴롭힐 수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에 초점을 맞추면 이와 같은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쉽지만 우리의 현실 속에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드러난 사실에만 주목하며 그것만 속결하려는 성향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똑같은 일이 발생하는 악순환이 연속되는 겁니다.

그러나 원인을 분석하고 규명하는 일에 주력한다면, 조금 더딜지라도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맥을 짚기 전에 침통부터 집어 드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오래 맥을 짚고 난 다음, 확신이 설 때 침통을 들어도 늦지 않습니다.

자, 먼저 숨부터 고르세요. 그리고 기도하며 찬찬히 살펴보시죠. 내가 지금까지 미처 살피지 못한 문제의 연결고리는 없습니까? 내가 간과하고 있는 방치된 습관들이나 죄의 쓴 뿌리들은 없습니까? 정밀 진단해 봅시다.

Joseph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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