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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7호 목차 › 객원컬럼

외할머니를 추억하며

597호 · 2011-08-05

기차에서 내려 먼지가 이는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려가다 보면 얼음장 같이 시원한 맑은 개울이 나온다. 그 시냇가 징검다리를 건너면 마주보이는 곳, 그곳에 정겨운 외갓집이 있었다. 전북 고창군 성내면 용저리….

초등학생 때, 여름방학이 되면 어머니는 종종 나를 데리고 외갓집엘 들렀다. 외할아버지는 으레 호탕한 웃음으로 우리 모자(母子)를 맞아주셨다. 그러면 그 뒤로 다소곳이 서 계시던 외할머니는 주름진 손으로 내 볼을 어루만지시며 살갑게 한 말씀 하신다. ‘우리 강아지 왔는가!’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면장 일을 보시던 와중에도 외할아버지는 기꺼이 외손자의 개인 훈장(訓長)이 되어 주셨다. 그러면 외할머니는 온갖 맛난 것들을 내어 오신다. 날이 너무 덥다 싶으면 개울에서 멱을 감기도 하고 통발을 놓아 물고기도 잡았다.

모깃불 옆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을 뒤로 하고 들려주시던 외할머니의 이야기는 요즘 유행하는 그 어떤 3D 영화보다도 더 흥미진진하기만 했다. 외갓집은 정말 신기한 것, 맛난 것들의 천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외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몇 번이고 목청을 높여 보았지만 좀체 대꾸가 없었다. 집 안에 인기척이 없는 것이 늦잠을 자는 아이를 남겨둔 채 어른들이 모두 어디로 나선 것일까?

혼자 이것저것 해보다 심드렁해져 있을 무렵에, 그제야 외할머니가 돌아오셨다. 그런데 곱게 차려 입으신 외할머니의 한 손엔 성경이 들려있었다. 교회에 다녀오신 게다.

그 후로도 외할머니는 주일이면 어김없이 교회를 다녀오셨다. 삼복더위도, 눈보라가 치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몇 십리 길을 아랑곳 하지 않으시고 그 먼 길을 걸어 교회에 다니셨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사실 시골에서 그 때까지만 해도 흔치 않았던 교회에 다니시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셋째 외삼촌이 그 즈음, 원인모를 질병으로 인해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한다. 이 병원 저 병원, 또 용하다는 한의사들을 다 찾아 다녀보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병명조차 몰랐다. 그러다 들른 곳이 전주예수병원. 그런데 그곳에서 외삼촌은 기적처럼 목숨을 건졌다.

“어머니, 예수 병원에서 고쳤으니 이제 저도 예수를 믿어야겠습니다.”

귀한 아들의 생명을 살려주셨기 때문이었을까? 절에 다니시던 외할머니도 곧바로 삼촌을 따라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그 이후 외할머니의 삶은 바뀌었다. 신앙생활이 최우선순위가 된 것이다. 주일이면 몸을 정갈히 하시고 새벽바람을 맞으며 길을 나서곤 하셨다. 깨끗이 세탁한 옷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헌금도 구깃거림 없이 정성껏 다려 하나님께 올렸다. 주의 종들을 정말 하나님 섬기듯이 각별히 섬기셨다. 훗날 자신의 아들들이 목회 길을 걸을 때에도 함부로 말씀을 낮추지 않으셨을 정도다. 소천하시기 전, 암으로 2년여를 고통 속에 계실 때에도 입가엔 애써 그 미소를 잃지 않으셨다.

가끔은 외할머니의 그런 모습들을 떠올릴 때마다 스치는 생각이 있다. ‘그렇게까지 하셔야 했을까?’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이 너무 격을 차리시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을 너무 어렵게 대하고 섬기는 것은 아닌지 하여, 때론 고루해 보이기까지 했던 우리 외할머니. 하지만 그 신앙과 기도 속에 아들 둘이, 그리고 외손자가 목사가 되었다.

우리를 자유케 하기 위하여 예수께서는 온갖 수모를 당하셨다.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를 대신 지셨다. 그로 인해 병에서, 온갖 저주에서, 그리고 죽음과 심판에서 우리는 자유케 되었다. 하지만 도리어 그 자유함을 핑계로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것은 우리 모두가 마땅히 경계해야 할 바가 아닐까!

자유케 되었다고 ‘막 살아도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자유함과 방종은 구분되어야 한다. 자유함과 가벼움 또한 구분되어야 한다. 자유함을 핑계로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것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은혜의 깊이가 없는 자유함에는 항상 일탈이 뒤따른다. 구원을 위해 치러진 희생의 가치, 그 무거움을 기억하지 않는 자유함 또한 항상 죄와의 타협을 부른다.

고루해 보인다 해도 좋다. 시대에 뒤떨어졌다느니 진부해 보인다느니 해도 좋다. 차라리 외할머니처럼 자유함 보다는 온전함을 우선하고 싶다.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그런 청지기가 되고 싶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5).

- Joseph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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