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594호 목차 › 객원컬럼

용서했는가?

594호 · 2011-07-15

‘나는 과연 예수님처럼 용서할 수 있는 것일까? 용서한 것일까? 그는 용서를 받았다고 생각했을까?’

내가 용서를 해줘야할 사람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에 이 질문은 여전히 나를 아프게 한다.

다 지난 이야기인지라 다시 들추는 것 자체가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의문, 개운치 않음, 이런 것들이 여전하기에 용서라는 화두는 늘 큰 주제로 다가온다.

우리 부모님은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오셨다. 월남 후 아무것도 없이 무일푼에서 시작하신 아버님은 어머니를 만나 결혼하신 이후, 교편생활에서 받는 월급만을 가지고 알뜰살뜰하게 살림을 해 오신 어머니 덕분에 느지막하긴 하나 집 한 채를 장만할 수 있었다. 다 어려웠던 시절, 그래도 집안에 펌프가 설치되어있어 물 걱정은 하지 않는다며 좋아하셨다.

우리는 그 집에서 자라며 공부하고 꿈을 키워갔다. 그리 사교적이지 않은 가족들이 서로 보듬으며 행복을 만들어갔던 장소이기에 우리에게 집은 매우 소중했다. 더구나 부모님이 일생을 수고한 결과물이기도 하기에 애착은 더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급전이 필요하여 은행에 근무하던 아주 절친한 친척 분에게 자금융통을 부탁한 적이 있었다. 많은 액수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대출을 받으려면 각종 서류와 인감도장이 필요했기에 어머니는 그분에게 일체의 서류와 도장을 맡기셨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있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사건이 발생한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지난 후의 일이었다.

당시 부동산 시장이 활황이던 시절이라 친척 되는 분은 우리 집을 담보로 대출을 더 받아 부동산에 투자를 한 모양이었다. 그의 생각은 당시 흐름으로 볼 때 충분히 이익을 남겨 표시나지 않게 곧 갚아놓을 수 있다고 여긴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막차를 타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고, 결국 우리 집은 은행대출을 막지 못해 넘어가고 말았다.

알고 보니 그는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었고 여러 고객들의 정보를 이용하여 고구마 줄기 엮듯 줄줄이 대출을 받는 간 큰 짓을 서슴없이 저질렀던 모양이다. 그는 결국 도망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그나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일어난 일이라 다행이라며 정신을 가다듬으셨다.

그러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결국 어머니는 몸만 빠져나오셔야 하는 상황에 처하셨고, 철저하지 못했던 자신을 얼마나 자탄하시며 괴로워하셨는지 잘 안다. 그러나 돌이킬 수도 없었고, 더구나 당사자는 도망자의 신세로 더욱 비참한 상황에 처해있는 마당에 그를 찾아 따져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신앙이 이길 수 있는 힘을 준 것은 분명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용서의 마음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나도 그래야한다고 믿었고,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그가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고 나타났을 때, 절망해있는 그 앞에서 만감이 교차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진즉에 그를 찾아가 속 시원히 용서해주고 마음의 평안을 얻게 했다면, 이런 끔찍한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가 응당한 보응을 받았다는 생각과 나도 모르게 정의는 살아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해 가더니 결국 이렇게 되었구나 하는 식의 판단 아닌 판단의 마음이 스멀스멀 속에서 움트는 것이었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 더구나 아직도 우리에겐 상황이 달라진 것이 없었기에 더욱 쉽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암에 걸려 고생하다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동안 그를 만났을 때는 그를 위해 기도해주고 덕담을 주며 소망을 가지라고 해주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진정 진실된 자세로 대한 것인지는 확신이 서질 않는다.

예수님이면 나처럼 하진 않았을 거란 자괴감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는 신앙 속에 갔기에 천국에 갔다는 확신은 있었지만, 여전히 그에게 속 시원히 용서한다는 말을 해주지 못했었던 것이, 그가 확실히 용서를 받고 갔다는 느낌이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그렇다. 용서는 상대를 위해 하는 일이 아니다. 용서는 결국 나를 다스리는 일이요, 내가 사는 길이다. 용서할 기회가 있을 때, 절대로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지혜다.

후회보다 아픈 것이 없다고 목사님은 늘 말씀하신다. 용서할 기회를 놓치고 마음의 짐을 안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랄 뿐이다.

- Henry

594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Text 주일설교
Sung’s Story
Q & A
지혜의 말씀
귀를 기울이세요
Cartoon
붕우칼럼
세상을 보는 창
내가 매일 기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