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소통 연습
인간의 언어란 오랜 시간 걸쳐 공유된 서로간의 약속으로서, 학습을 통해 유지해가는 그룹 안의 질서이다.
하나하나의 이름과 뜻들은 이렇게 부르자고, 또 이런 것을 의미하자고 지켜져 온 약속과 그 실행의 역사인 것이다. 이와 같이 서로의 마음을 통하고(commu-nicate) 전달하는 언어는 오랜 시간 인류의 역사 속에서 꾸준히 거듭나고 발전해 온 약속이며 전달의 수단인 것이다.
그러나 이 약속의 교류가 전류처럼 계속 흐르지 않으면, 그 약속이 잊혀지고 교란되기 때문에, 이 약속은 항상 실천되고 공유되어야만 통할 수 있다. 가까운 예로, 남북으로 분단된 지 60여 년이 지난 남한과 북한 사이에 언어의 소통은 이제 점점 시간이 갈수록 심각한 수준의 “불통”으로 치닫고 있다.
인간 언어의 소통에도 이러한 연습과 교류가 있어야 할진데, “마음의 소통”은 가르쳐 주는 학교도 없고, 매뉴얼(manual, 설명서)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마음이 원하지 않는 말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오해를 불러일으키며, 또 상처받고 아파하며 살아가고 있다.
부부지간에도, 부모 자식 간에도, 형제끼리도, 친구 사이에도, 우리는 끊임없는 마음의 “비소통” 과 “불통”을 생산하고 공급 받으며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 이유는 훈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되고, 무형의 것이 유형의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인데도, 우리의 훈련은 늘 유형의 것들만을 다루기 때문에, 늘 서투른 인생의 주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물음만 있고 대안은 없느냐고 당신이 내게 묻는다면, 그 대안은 “스스로의 훈련”과 “통찰”이며, 가르쳐 줄 수 있는 학교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고 말하련다. 산업화 시대의 획일화된 공산품을 찍어내는 학교 같은 곳에서 “마음의 소통”을 배우려는 발상은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우리의 마음 하나하나는 유일하며 고유한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마음과 마음은 일대일로 주관적으로, 상대적으로 만나야 한다.
우리는 마음을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내 마음을 나도 모르고, 너의 마음도 모르는 채로, 엉클어진 공동체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제발 말보다 마음을 보는 연습을 하라. 상대의 말보다 마음에 집중하라. 상대에게 마음으로 말하고, 상대의 마음을 들으려고 하라. 상대가 당신을 미워한다고 말하여도, 사실은 당신을 사랑한다고, 그러니 사랑해 달라고 하는 마음의 말을 들어라. 그리고 기도하라. 상대의 마음을 들을 수 있는 귀를 달라고, 그리고 마음으로 대답할 수 있는 입을 달라고….
그리고 매 순간 한 마디 한 마디를 할 때마다, 그 말이 상대에게 건네는 것이든 당신에게 하는 것이든, 모든 한마디 한마디를 존중하고 사랑하라. 힘 있게 뱉을 수 없는 말이라면 공허하게 내뱉지 말라. 쭉정이는 거두지 못하고, 다만 수고만 축낼 뿐이니, 당신의 말들도 속이 꽉 찬 알곡들로만 내뱉어라. 그 알곡의 씨앗들은 훗날 풍성한 수확으로 당신에게 돌아올 것이다.
봄에 씨를 뿌려, 가을걷이를 하는 볍씨도 있지만, 심은 지 3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야 열매를 맺는 과실수도 있음을 기억하라. 3년이든 5년이든, 그 기다림의 세월이 마냥 길게 느껴질지라도, 이러한 과실수들은 한번 열매 맺기 시작하면, 당신이 다시 수고하지 않아도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