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자에게 일을 맡겨라 (마28:16~20)
당신은 어떤 사람과 일하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어떤 사람과 손을 잡고 있습니까?
저는 지난 베네수엘라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한 만여 명의 목회자들에게 먼저 이 화두(話頭)를 던졌습니다. 왜냐? 그들이 세미나에 대거 참석한 이유는 목회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였고, 저는 그들에게 그에 따른 해답을 줘야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들에게 제시한 해답은 바로 요한복음 21장 15절에서 17절 말씀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자신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셨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비록 과거에 주님을 배반했었지만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고, 사랑하는 자기의 마음을 알아달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내용으로, 위의 대화가 무엇을 시사하는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 일을 맡겼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을 위임했다는 말이지요. 왜냐하면 사랑은 오해를 낳지 않고, 사랑은 어려움을 능히 이길 힘을 지니고 있고, 희생하기를 마다하지 않으며, 사랑은 나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유익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사랑한 베드로는 예수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던졌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떤 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있느냐 이 말입니다. 물론 능력 있는 자, 실력자, 그 분야에 전문가를 써야 함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반드시 플러스 되어야 할 것이 바로 이것, 나를 사랑하는 자를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을 하다보면 어려움도 오고 힘이 들 때가 옵니다. 또 ‘이건 아닌데?’ 할 때도 있고, 다른 곳에서 러브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 때 주저앉은 다리를 세울 수 있는 힘, 이해가 안 되더라도 오해하지 않는 비결과 요지부동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이 사랑입니다. 지도자를 신뢰하고 사랑하는 힘이 바탕이 되면 누가 뭐래도, 여건이 어떻더라도 끝까지 함께 하며, 나의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가룟 유다처럼 스승도 팔아넘길 수 있게 됩니다.
다윗은 그를 사랑하는 37명의 용사와 함께 했기에 소수정예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다윗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다윗이 고향이 가까우니 고향 생각도 나고 해서 혼잣말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 하고 말 한 마디 했는데, 이 말을 들은 세 용사가 죽음을 무릅쓰고 블레셋 진영을 지나 베들레헴으로 들어가 물을 길어온 사실이 사무엘하 2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그를 지극히 사랑하는 늙은 종에게 아들 이삭의 배필을 구해오라고 일임한 사건이 창세기 24장에 나와 있고, 바울 역시 그를 사랑하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자와 손을 잡고 일했음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통해서 당신의 경륜, 당신의 뜻을 이루어나가십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1:23). 즉 교회가 그리스도를 충만케 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교회’는 성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예수를 사랑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즉 예수를 사랑하는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일하신다는 것이지요. 잘나고, 똑똑한 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는 일 년의 반을 해외에 나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회가 아무런 문제없이 부흥하는 것은 바로 이 비밀, 저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일을 맡겼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무나에게 직함을 주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고, 거기에 저를 사랑해야 일을 줍니다. 그러면 절대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 목사들이나 장로, 그리고 각 기관에 속한 자들이 있기에 제가 안심하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러 다닐 수 있는 것입니다.
결혼도 그렇습니다. 인물이나 배경이나 능력, 혹은 돈이나 보고 결혼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세월가면 늙게 되고, 살다보면 험한 일도 겪고, 바닥을 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배경보고 결혼했다가 배경 날아가면요? 돈보고 결혼했는데 부도나면요? 그러면 갈라서는 겁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혹 어렵고 힘든 일이 오더라도 묵묵히 인내하게 되고, 더욱 사랑하는 계기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결혼의 첫째 조건도 ‘나를 사랑하는 자’여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경쟁력입니다. 사람이 힘이요, 사람이 능력입니다. 저는 가정도 경영이요, 교회도 경영이요, 사업이나 정치도 다 경영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영이 뭡니까? 곧 관리요 점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당신은 어떤 사람과 동업하고 있는지, 어떤 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있는지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도 베드로에게 한 번이 아닌 세 번씩이나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것은 철저히 점검하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한 말씀 더 드린다면 사람이나 생선이나 동물이나 죽으면 머리부터 썩습니다. 교회의 목사가 썩으면 교회가 흔들리게 되어 있고, 가장이 썩으면 가정이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나라의 통치권자가 썩으면 나라가 위태로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손발이 머리가 지시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손발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리의 어느 부분에 이상이 있는 것입니다.
즉 리더가 바로 서야 그 단체가 바로 선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 일을 맡기라’고 했는데, 지도자 스스로가 사랑을 받을 만한, 존경을 받을 만한 그릇이 되지 못한다면? 지도자가 무능하고, 무식하고, 제멋대로라면? 절대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구성원들이 자기를 믿고 사랑하도록 늘 지식함양에 애를 써야 하고, 안팎으로 자신을 갈고 닦는 일에 나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즉 사도 베드로의 말대로 행해야 할 것입니다.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5~7).
누군가가 자기를 믿고 사랑하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을 몰라서 묻고 되물은 것이 아닙니다. 다 아시지만, 확인하신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그래서 당신을 목사로, 전도사로, 그리고 구역장과 조장으로, 또 집사로, 권사로, 장로로 세우신 것입니다. 곧 당신의 사랑이 하나님께 입증되었기에 하나님이 당신에게 당신의 일을 일임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감사함으로 더욱 충성되게 일해야 할 것입니다.
주의 일을 하다보면 어려움도 오고, 핍박도 오고, 환난도 올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당신의 사랑이 이것들을 넉넉히 이기게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말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
결론입니다. 목회의 성장과 발전을 위하여, 당신의 기업의 발전을 위하여, 당신의 인생을 위하여 당신이 꼭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당신을 사랑하는 자를 쓰는 것입니다. 그려면 절대 그들이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스스로 공부하지 않는 순간
이미 삶을 포기하는 것이다
사람이 경쟁력이요
사람이 힘이고 능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