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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호 목차 › 금주의 말씀

사무엘하 15장 ~ 열왕기상 4장

550호 · 2010-09-10

* 다윗의 신하들

(사무엘하 15장 ~ 열왕기상 4장)

신숙주는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에 이르기까지 6명의 임금을 섬기면서 부와 명예를 누렸습니다. 그는 집현전의 학사로서 훈민정음 창제에 큰 공을 세웠으며, 그의 공부하는 모습을 발견한 세종이 어의(御衣)를 하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시키고 보위에 오르자 사육신을 배신하고 세조의 편에 섰습니다. 그는 세조를 적극 보좌하여 세조 3년에는 우의정, 세조 5년에는 좌의정, 세조 8년에는 영의정으로 등극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지금까지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반면 사육신(死六臣) 중 한 명인 성삼문은 집현전 학사로서 각종 서적을 편찬하였고 훈민정음 만드는 일에도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는 일찍 세종과 문종으로부터 단종의 앞날을 부탁받은 충신이었습니다. 하지만 단종의 삼촌인 수양대군이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잡고 단종을 폐위시키자, 그는 몇몇 충신들과 함께 단종을 복위시키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거사가 그만 들통이 나서 결국 처형되고 말았습니다. 성삼문은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이라는 유교적 충절을 다하였습니다. 그는 끝까지 세조를 ‘상감’이 아닌 ‘나으리’라고 불렀습니다. 당시 성삼문의 가족은 모두 처형되고 여자들은 노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그를 충절한 사람의 대명사로 여기고 있습니다.

다윗에게는 많은 신하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다윗의 가까운 친척들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유대인은 자기 사업이 어느 정도 확장하게 되면 형제를 불러들여 사업에 참여시키고, 더욱 번창하게 되면 또 다른 형제들을 불러들이는 식으로 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요압은 다윗의 누이 스루야의 아들로서 다윗의 조카이자 다윗의 군대 장관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공적을 세웠지만 끝내 다윗의 미움을 받아 솔로몬의 손에 의하여 죽게 됩니다. 그가 다윗의 가까운 친족이었기에 다윗이 처음에는 그를 형제애로써 대했지만, 나중에는 그를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에 맡겼습니다.

요압은 예루살렘 성을 공격할 때에도 선봉에 섰었고, 압살롬의 반역을 제압할 때에도 용맹하게 싸웠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윗의 공의로운 뜻을 거역하였습니다. 사울의 집에서 권세를 잡은 아브넬이 다윗에게 항복하자 다윗은 그를 공의로써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요압의 동생 아사헬이 아브넬의 손에 죽은 까닭에 요압은 아브넬을 죽임으로써 원한을 갚았습니다(삼하3:22~30). 또한 요압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는 다윗의 명령을 무시했습니다(삼하18:5,14). 요압은 상수리나무에 매달린 압살롬을 생포하여 반란을 진압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뜻을 무시한 채 그를 창으로 찔러 죽였습니다. 또한 요압은 다윗의 명을 받아 유다를 소집하러 갔던 그의 사촌 아마사를 죽였습니다(삼하17:25, 20:9~10).

다윗은 이러한 요압의 행동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아비새가 다윗을 저주했었던 시므이를 죽이자고 했을 때에도 다윗은 요압을 포함한 스루야의 아들들 전부를 꾸짖어 책망하였습니다(삼하19:21~ 22). 죽을 날이 임박하였을 때, 다윗은 솔로몬에게 요압으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왕상2:5~6).

비록 요압이 군대장관으로서 전쟁에서 용감히 싸워 공을 세웠지만, 권한을 남용하면서 자기의 일을 도모하였고 다윗 왕의 명령을 임의대로 어겼기 때문입니다. 그는 끝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의 손에 의하여 죽고 말았습니다(왕상2:28~34). 아비아달 제사장도 다윗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었지만 후일 아도니아를 왕으로 추대하였다가 결국 파면 당하였습니다(왕상2:26~27).

반면에 제사장 사독과 시위대장관인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아도니아를 왕으로 세우는 일에 참여하지 않았고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왕으로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는 일을 하였습니다(왕상1:8,25,35,46). 이들은 변절되지 아니하고 유약했던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는 일을 적극 실행하였습니다.

성경은 다윗에게 헷 사람 우리아를 포함한 37인의 용사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삼하23:8~39). 이들 중에는 블레셋 진영을 뚫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가지고 다윗에게 가져다 줄 정도로 충성된 자들도 있었습니다(삼하24:14~17). 다윗이 아둘람 굴에 나아온 자들의 군대장관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 중에서 다윗에게 충성하는 용사들이 나왔습니다(삼상22: 1~2, 삼하23:13).

그런데 이들 중에 요압은 빠져 있습니다. 요압을 제외한 나머지는 다윗과 함께 충성된 이름으로 길이 남았습니다. 모두가 이를 교훈삼아 신앙생활에 승리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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