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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2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만사형통의 길은 분명히 있다 (창39:1~23)

542호 · 2010-07-16

복 중의 최고의 복은 만사형통의 복일 겁니다. 만사형통(萬事亨通)이란 모든 일이 뜻대로 잘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일들이 뜻하는 대로 두루두루 잘되어 가는 것, 어떤 일을 해도 어긋남이 없이 뜻한 바대로 잘 이루어지는 것이 만사형통입니다.

오늘 저는 만사형통의 복을 받는 길을 가르쳐드리려고 합니다. 항상 말씀드리지만 만사형통에 이르는 길이 없는 게 아닙니다. 다만 그것에 이르는 길을 모르는 것일 뿐, 길을 알면 분명히 만사형통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저는 만사형통은 신통(神通)+인통(人通)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곧 하나님과 통하고, 사람과 통하면 만사가 형통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고 사람에게 인정받으면 만사가 절로 형통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롬14:18).

오늘 본문은 파란만장한 삶 중에도 만사형통의 복을 받은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요셉은 야곱의 늙어서 얻은 아들이고, 더구나 애처 라헬의 아들이었으므로 이복형들보다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형들의 시기를 받았습니다.

더욱이 그의 꿈 이야기는 아버지에게는 큰 기대를 갖게 했지만 형들에게는 더 큰 노를 사게 해, 그는 결국 애굽에 팔려가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이 때 요셉의 나이 17세. 요셉은 애굽 왕 바로의 신하인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거기서 그는 열심히 일해서 인정을 받아 보디발의 가정 총무가 되고, 모든 소유를 주관하게 됩니다.

그런데 주인의 아내가 계속 요셉을 유혹하다 그것이 여의치 않자 도리어 비열한 보복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요셉은 시위대 뜰에 있는 옥에 갇히게 되나 거기서도 인정을 받아 죄수들을 관리하게 됩니다. 그는 거기서 바로의 술관장과 떡관장을 만나 그들의 꿈을 해몽하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결국 바로의 꿈을 해몽하기에까지 이릅니다.

바로는 요셉이 하나님의 능으로 꿈을 해몽하는 것을 보고는 모든 실권을 그에게 넘기고, 요셉을 자기 다음의 자리인 재상에 오르게 합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요셉은 형제들을 만나게 되고, 그토록 그리던 아버지 야곱과 상봉하게 되고, 그들을 고센 땅으로 인도하게 됩니다.

대략 요셉의 일생을 짚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왜 힘든 가운데서도 형통했는가를 살펴봅시다. 첫째, 그는 정직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진실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 유명한 일언(一言)을 남겼습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39:9). 요셉이 정직하지 못했더라면 보디발의 아내를 취하여 쾌락과 실리를 추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 정직했습니다. 왜요? 하나님이 은밀한 것까지 감찰하시는 분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왜 정직하지 않은 줄 압니까? 하나님이 안 보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우리아의 처를 취할 때 그는 완전범죄인 줄 알았습니다. 그의 맹점은 절대 하나님의 눈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직하지도 진실하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했습니다. 그러니 보이는 사람 앞에서야 오죽했겠습니까? 보디발은 요셉에게 죄가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보디발이 집안의 전권을 괜히 넘겼겠습니까? 그의 정직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만 아내의 체면을 살리려고 할 수 없이 요셉을 일반 옥이 아닌 시위대 뜰에 있는 옥에 넣었던 것입니다. 즉 그의 정직함이 하나님께 통했고, 사람에게도 통해 하나님은 물론이요 사람을 얻은 것이고, 결국 그것이 그를 만사형통의 길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욥8:6).

둘째, 그는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가 변명했더라면 그는 보디발을 잃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을 향하여 ‘당신의 아내가 유혹했었노라’고 했더라면 보디발은 그의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요셉을 처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이를 바라다보는 보디발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정말 괜찮은 놈이구나.’ 했을 것입니다.

또한 요셉이 옥에 들어가서 자기가 누명을 쓰고 들어왔다고 떠벌렸다면 절대 전옥이 그에게 죄수를 관리하라고 맡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변명하지 않았기에 전옥을 얻을 수 있었고, 옥중이었지만 형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창39: 22~23).

사울은 아말렉 군대를 무찌르고 전리품을 취해가지고 왔을 때 사무엘이 이를 보고 나무라자 사울은 주저리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는 결국 그의 변명으로 인하여 그는 하나님을 잃었고, 사무엘 제사장마저도 잃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삼상16:7).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서기관 앞에 잡혀 끌려갔을 때 아무런 변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 그래서 전 인류를 얻으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인욕이대(忍辱而待)’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욕을 당하면서도 묵묵히 참는다’는 뜻인데, 이 말의 근원은 여기입니다. 조선 전기의 문신인 윤회가 젊은 시절 시골길을 걷다가 날이 저물자 주막에 투숙하려니 주인이 숙박을 허락하지 않아 뜰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주인집 아이가 커다란 진주를 가지고 밖으로 나와 마당 가운데 떨어뜨리니 옆에 흰 거위가 있다가 곧 삼켜버렸습니다. 얼마 후 주인이 구슬을 찾다가 찾지 못하자 윤회가 훔친 것으로 의심하고, 그를 결박 지어 아침이면 장차 관가에 고발하려 했지만 그는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는 ‘저 거위를 내 곁에 매어 달라’고만 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구슬이 거위의 꽁무니에서 나왔습니다. 이를 본 주인이 부끄러워 사죄하며 “어제는 어째서 말하지 않았는가?” 물었더니 그 왈, “만일 어제 말했다면 당신은 거위 배를 갈라 구슬을 꺼냈을 거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잠시의 욕을 참고 변명하지 않아 거위를 살린 윤회, 그런 마음이라면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고, 그로 인하여 사람을 얻게 되지 않을까요?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연구치 않기로 결심하라”(눅21:14).

셋째, 요셉이 형통할 수 있었던 것은 과거의 죄를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형들이 과거의 일로 두려워 요셉 앞에서 떨었을 때, 그는 그들을 용서하며 끌어안았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창45:5). 이로써 그는 75명의 사람을 얻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마6:14). 곧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께 용서 받는 길이기에 만사형통으로 가는 첩경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과거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다만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심으로 죄를 다 덮으셔서 베드로를 얻음 같이, 포행자요, 훼방자요, 핍박자였던 바울을 용서하여 그를 얻음 같이 해야 합니다.

‘신통(神通)+인통(人通)=만사형통(萬事亨通)’입니다. 요셉이 형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고, 사람에게 인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인정받은 요셉에게 하나님이 길을 여셨고, 요셉이 얻은 사람들이 그 길로 그를 인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인정받고 사람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요셉 같은 만사형통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1:3). 할렐루야!

하나님과 사람에게 신뢰받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받자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사람의 도리를 해야 하늘이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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