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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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3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부모님을 공경하라 (엡6:1~4)

533호 · 2010-05-14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여기에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지요. 다 아시다시피 어린이날은 3·1운동 이후 소파(小波) 방정환을 중심으로 어린이의 인격을 소중히 여기고, 어린이의 행복을 도모하기 위해 제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버이날이 어떻게 해서 제정되었는지 아시는 분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어버이날이 제정된 유래는 이렇습니다. 미국에 살던 안나 자비스는 교회 주일학교 교사로 수십 년 헌신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어머니의 은혜를 기릴 수 있는 어머니날을 제정하기로 마음먹고는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던 중, 교회학교 교장이요, 백화점 왕으로 불리던 존 워너 메이커를 만나게 되었고, 안나의 뜻을 가상히 여긴 존 워너 메이커의 도움으로 안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5월 둘째 주일을 기하여 어머니날 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날에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안 계신 사람은 흰 카네이션을, 어머님이 살아계신 분은 붉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어머니의 고귀한 희생을 생각하며 하루를 지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어머니날은 점차 퍼져 1914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윌슨에 의해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날로서 미국 전역에 공포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1956년 국회에서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제정하여 기념해오다가 1974년부터는 어버이날로 개정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번 어버이날도 예년과 같이 길에 차가 굉장히 많더군요. 모처럼 자식들이 부모님을 찾아뵙느라, 혹은 모시고 나가 식사라도 대접하느라 그런 것 같습니다. 참 좋은 일이지요. 하지만 어버이날만 효도해서는 안 되지요. 효도는 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효도’라는 말 대신 ‘공경’이라는 말로 쓰여 있습니다. 공경은 섬길 공(恭), 정중할 경(敬)입니다. 즉 부모님을 정중하게 섬기는 것이 공경입니다. 공경은 부모님의 자리에 앉지 않는 것이며, 부모님의 뜻에 거역하지 않는 것이고, 부모님이 들어오시고 나가시고, 앉고 서는 것을 살피는 것입니다. 이는 다른 말로 효도이지요.

우리는 부모님들이 우리를 어떻게 키우셨는지 사실 잘 모릅니다. 부모니까 당연히 자식을 위해 희생해도 되고, 나는 자식이니까 당연히 받아 마땅하다고들 생각하지요. 뭐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부모 자리에 앉고 보니 부모의 사랑과 심경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더군요. 양주동 시인이 쓴 ‘어버이 노래’가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는 것을 보니 그렇습니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 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머니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 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엔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니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우리 부모님들은 이렇게 우리를 키우셨는데 우리는 저 잘나서 혼자 자란 것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부모님을 몰라라 하고 있으니….

요즘 부모를 뒷전에 앉혀 놓는 자식들이 많습니다. 아니 그 정도는 효자 축에 속하지요. 부모를 학대하는 자식도 많고, 더는 부모를 내다버리거나 몰래 이민 가는 자식도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가슴이 아픈 것은 그런 자식들도 자식이라고 행여 자식들이 욕먹을까봐 부모들이 이를 숨긴다는 것입니다.

언뜻 고려장 때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고려장이 있던 시절, 어느 아들이 늙은 어머니를 지게에 지고는 고려장을 하기 위해 깊은 산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지게에 실려 가는 어머니는 길을 가면서 계속 주머니에서 빨간색 실을 꺼내 나뭇가지에 걸치며 갔습니다. 지게를 지고 가던 아들은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아들은 왜 그런지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나중에 갈 때 너 길 잃어버릴까봐 표시해두는 거란다.” 그 말에 아들은 털썩 주저앉았다고 합니다.

요즘 현대판 고려장을 하는 자식들이 많습니다. 그 놈들은 하나님 말씀을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욕했다고 저한테 뭐라고 하지 마십시오. 그 놈들은 욕먹어도 쌉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2~3).

정말 그런지 성경을 볼까요? 항상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쁨이었고, 부모의 뜻대로 행한 이삭을 보십시다. 그는 그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에게 죽기까지 순종했고, 또 결혼도 부모의 뜻대로 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장수했고, 성경에 기록된 많은 믿음의 선친 중 가장 편한 인생을 살다간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한 효자라고 하면 요셉을 빼고 말할 수가 없지요.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요셉이 결국 형들과 아버지를 다 거두어 풍부한 땅인 고센에 살게 했고, 또 그의 아비인 야곱이 죽었을 때 아버지의 원대로 선조의 무덤이 있는 곳인 이스라엘 땅에 장사 지냈습니다. 요셉이 받은 축복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지요.

룻도 보겠습니다. 그는 이방여인으로 유다지파인 나오미의 아들과 결혼했으나 남편이 죽자 나오미를 따라 남편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와서 시어머니를 섬겼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보아스라는 남편을 주었고, 다윗의 선조요,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피하고 싶은 자신의 뜻을 접고 ‘그러나 아버지의 뜻이거든 그리 하옵소서’ 라고 고백하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늘보좌에 앉으셨고, 또 돌아가시기 전에 사도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셨는데, 사도 요한은 마리아를 잘 모셨더니 제자 중 가장 오래 살아 요한계시록까지 쓰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불효막급한 놈들도 여럿 있습니다. 르우벤이 대표적인 인물이지요. 그는 레아에서 난 야곱의 장남인데, 글쎄 이놈이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아버지의 첩인 빌하를 취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장남이지만 탁월치 못하다는 지적과 함께 자손이 적을 것이라는 저주를 받게 됩니다.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 아비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갔으나 족보에는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할 것이 아니니라”(대상5:1). 또 불효자로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 있는데, 이는 다윗의 아들인 압살롬이지요. 그는 아버지의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키고 아비를 죽이려고 한 자입니다. 그의 결국이 어땠는가 하면 요압에게 살해된 후 기드론 골짜기에 장사되었습니다(대상18:17).

하나님은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할 때 주께 순종하는 범위 내에서 해야 함을 시사합니다. 즉 ‘교회 다니지 말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한다고 교회에 안 다니면 안 된다는 말씀이고, ‘장손이니 제사는 지내라’는 말씀에 순종한다고 제사지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과 상반되지 않는 범주 내에서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어머니를 두고 집을 나왔던 것은 ‘주 안에서 순종’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제사 문제 등등 갈등이 있었기에 그리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문제가 없습니다. 제 어머니가 예수님을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잘 되고 장수하는 법이 무엇인 줄 압니까?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잘 되고,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것은 바로 율법을 귀히 여기고, 율법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율법이란 곧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것을 지켜 행하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 즉 십계명 중 수평적인 관계인 인간관계에 있어 가장 첫 계명이 바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부모를 공경하는 일이 인생사 기본이며, 가장 큰 일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아생전에 부모에게 효도합시다. 돌아가신 뒤에 묏자리 잘 잡는 것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부모님이 우리에게 하신 것의 십분의 일만큼 해도 효자소리 들을 것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할렐루야!

효도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본을 보이는 것이다

공경은 부모의 자리에 앉지 않고 부모의 뜻을 거역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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