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노예가 되지 마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춘계산상집회를 잘 마쳤다. 총회장 목사님께서는 첫날엔 생각의 힘에 대해, 둘째 날은 꿈에 대해, 셋째 날은 지혜에 대해 가르치셨다.
목사님께서 멕시코에 계실 때, 한국이 4월인데도 춥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내가 가면 한국이 따뜻해질 거다”라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 말씀대로 목사님이 도착하신 날부터 날씨가 평년기온을 넘어 오히려 초여름의 날씨로 변했다. 집회 기간에도 좋은 날씨가 계속 되었다.
집회를 마친 목요일 밤, 익산 예수중심교회의 이전예배가 있었다. 기도원에서 바로 발길을 돌린 주의 종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총회장 목사님께서는 ‘과거의 노예가 되지 말 것’을 촉구하셨다.
“새 집으로 이사했다고 새로워지는 게 아니다. 과거를 잘라내야 새롭게 거듭나는 것이다. ‘나는 과거에 사업에 실패했어.’, ‘나는 과거에 결혼에 실패했어.’, ‘나는 과거에 목회에 실패했어.’ 이렇게 과거에 얽매어 과거의 노예가 된다면 절대 찬란한 미래를 꿈꿀 수 없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무대의 연극배우다. 그런데 그 배우가 과거의 역할에 연연해서 지금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면 그에게 어떤 미래가 다가오겠는가.
또 전도서 7장 10절에는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나는 과거에 돈을 물 쓰듯 했다.’, ‘나는 과거에 이런 자리에 앉아 있었다.’며 과거에 취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현재는 빈약하기 그지없다. 물론 그들의 미래는 말하나 마나다.
만일 여섯 남자를 데리고 살던 여인이 과거에 사로잡혔다면 그가 복음을 나가 외칠 수 있었겠는가. 일곱 귀신이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가 과거지향적인 사람이었다면 그가 과연 성경에 위대한 여인으로 기록될 수 있었겠는가. 마귀는 과거라는 올무로 우리를 얽으려고 한다. ‘넌 과거에 이런 여자였어.’, ‘넌 과거에 이런 사람이었어.’ 하며 달리는 우리를 딴죽 걸려한다.
그러나 주님은 과거를 잘라주시며 앞으로 전진하라고 하신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3~14).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 중의 하나가 망각이란 것이다. 왜 그것을 주셨을까? 아프고 힘든 과거를 잊고 달리라는 뜻에서 아니겠는가. 그러니 과거 일랑 잊고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사43:18)는 주님의 말씀대로 미래를 향해 달려라.”
또한 총회장 목사님은 익산교회가 성전 아래층을 세놓으려는 것을 아시고는 반대 의사를 이렇게 피력하셨다.
“사람의 생각으로 목회를 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 건물을 세놓으면 월세가 들어와서 목회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천천만만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일해야 교회에 어려움이 없다. 교회는 사람의 말을 듣고 나가면 망하게 되어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좇아야 한다.
생각해보자. 광야에서 사람의 힘으로 메추라기를 몇 마리나 잡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단번에 이빨에 고기가 낄 정도로 잡아 주시는 분이다. 그러니 욥기서에 있는 말씀대로 ‘나 같으면 하나님께 구하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욥5:8)는 고백을 해야 옳지 않겠는가.”
이 말씀에 양풍성 목사는 크게 깨닫는 듯했다. 이에 목사님은 양 목사를 향하여 “이름값을 하는 목사가 될 줄 믿는다. 양이 풍성하여 이 익산 교회가 이 익산 땅에서 가장 큰 교회가 되라.”고 하셨다.
익산 교회는 아름다운 교회였다. 외관이 아름다운 교회가 아니라 부족함이 없는 교회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목사님의 말씀대로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나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예배를 마치고 참석자 모두가 소머리국밥을 나누면서 이전을 축하했다.
양풍성, 그 이름대로 익산 교회에 양이 풍성하여 창대해지리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