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길 것은 숨기는 것이 지혜다 (잠25:1~2)
어느 집사님이 심란한 얼굴로 상담하러 왔습니다. “목사님, 같은 교인끼리 이럴 수가 있습니까?” 다짜고짜 이렇게 말문을 여는 집사님에게 저는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집사님 말이 이랬습니다.
“제가 가게 터로 정말 목이 좋은 곳을 발견하고는 너무 좋아서 가장 친한 집사에게 이 사실을 말했는데, 글쎄 제가 보증금을 구하는 동안 그 집사가 먼저 그 가게를 계약해버렸지 뭡니까? 어떻게 믿는 자가 그럴 수 있습니까?”
아직도 분통이 가라앉지 않아 얼굴이 벌건 그 집사에게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럴 수 있지요. 일이 이렇게 된 것은 그 집사의 잘못이 아니라 당신 잘못입니다.” “제가 잘못했다고요?” 그렇잖아도 흥분한 집사가 제 말을 듣고는 펄쩍 뛰었습니다. 그래도 짚어줘야겠다 싶어 말을 이었습니다.
“왜 일이 성사되지 않았는데 먼저 자랑을 합니까? 자랑할 것이 있고,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 겁니다. 말해야 할 것이 있고, 말하지 않아야 될 것이 있는 겁니다. 요셉이 꿈 이야기를 자랑하다가 얼마나 큰 봉변을 당했습니까?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습니까? 이번 일이 집사님 인생에 큰 교훈이 되었을 겁니다. 수험료 냈다고 생각하십시오. 집사님이 깨달았으니 하나님이 더 좋은 것으로 주실 것입니다.”
‘아는 놈이 도둑질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것이 다 무슨 말입니까? 아는 사람이라고 다 말하니까 알고 훔쳐가는 겁니다. 믿는 사람이라고 다 보여주다가 발등 찍히는 겁니다. 고로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도, 아무리 믿는 사람이라고 해도 속까지 다 보여주지는 말아야 하고, 다는 말하지 말아야 하는 겁니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외국에서 제일 큰 환대는 자기 집에 초대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네들은 우리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절대 침실만은 공개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리는 안방까지 다 보여주고, 심지어 안방에 앉아서 놀기도 하는데 그네들은 침실만은 보여주지 않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자들입니다.
언젠가 제 어머니의 친구들을 집에 초대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방 좀 다 열어봐라” 하시기에 제가 집안 구석구석을 다 보여드렸습니다. 물론 제 방도요. 그런데 그 분들이 가시고 난 뒤부터 자꾸 심장을 바늘로 찌르는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방을 다 청소해보니 장롱 밑에서 가슴에 바늘을 찔러놓은 인형이 나오는 게 아닙니까? 제웅이라고 하지요? 장희빈이 인현왕후인 민씨를 저주할 때 그렇게 했지 않습니까? 그 때 ‘아차’ 싶었습니다. ‘방까지 보여드리는게 아니었는데…,’ 어머니 친구분 중에 한 분이 무당이었는데 그 분이 그리 하신 것 같습니다.
성경에도 저처럼 다 보여주다가 호되게 당한 사람이 여럿 있습니다. 먼저 요셉을 볼까요? 요셉이 한 꿈을 꿨습니다. 해와 달과 열한별이 자기를 향해 절하는 꿈을요. 그런데 이 꿈을 간직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곧바로 형제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가 형제들의 미움을 사서 애굽에 팔려가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창37:8).
히스기야도 그랬습니다. “이사야가 가로되 저희가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궁에 있는 것을 저희가 다 보았나니 나의 내탕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왕하20:15). 히스기야는 바벨론 왕 부로닥발라단의 사자에게 군기고와 내탕고에 있는 것을 다 보여주고 자랑했습니다. 그 결과는 이렇습니다. “무릇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을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왕하20:17~18).
또 삼손은 소렉에 사는 들릴라라는 여인을 사랑하여 자신의 힘의 근원이 자신의 머리카락에 있음을 누설하고 맙니다.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뇨…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삼손이 진정을 토하여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우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하여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삿16:15~17).
이 비밀누설의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머리카락이 잘린 삼손은 여호와의 신이 떠나자 힘을 잃고 블레셋 사람에게 잡혀 눈이 뽑히고 맷돌을 돌리는 수치를 당하게 되었습니다(삿16:18~22).
믿으니까, 사랑하니까 속까지 다 보여주고, 다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을 봅시다. 그는 100세에 얻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아내와 한 마디도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갈등을 했겠습니까만 아내에게 괴로운 심정도 토로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아내인 사라에게 조금이라도 언급했더라면 아브라함은 절대 그 큰일을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그 아내가 “당신 미쳤소?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우리가 어떻게 얻은 자식인데, 그 아들을 드리냐?”고 난리를 쳤을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말씀 안 하시는 게 있습니다. 바로 주님 재림의 날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24:36). 정말 중차대한 일에 대해서 함구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저더러 비밀이 참 많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예, 맞습니다. 저는 비밀이 많은 목사입니다. 저는 어떤 일을 진행함에 있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일에 관여하는 몇몇 실무자 외에는 서울교회 담임도, 행정목사 조차도 모르게 일을 진행할 때가 있습니다. 왜요? 일을 그르칠까봐서요. 제가 늘 말하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면 동시에 악한 것들도 역사하거든요.
이게 다 엄청난 수험료를 치르고 배운 겁니다. 대사(大事)를 앞두고 먼저 나발을 불었다가 일을 망친 경험이 제게 많거든요. 몇 년 전에 서울교회 부지로 어느 한 곳을 생각하고는 기쁜 마음에 우리 교인들에게 발설했다가 아주 곤혹을 치르고, 결국 일을 성사시키지 못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는 입 다물고 조용히 일을 진행합니다.
가끔 친구에게 여자 친구를 자랑하다가 빼앗겨 이를 득득 가는 자들을 봅니다. 누구 탓할 게 없습니다. 본인이 어리석어서 그런 겁니다. 내 여자가 되기 전까지는 나보다 잘난 친구에게 보여주면 안 됩니다. 회사에서도 몇 년 동안 고생해서 개발하고 연구한 것을 회식자리에서 슬쩍 한 마디 했다가 순식간에 도둑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가 정보 역시 그렇습니다. 그래서 회사마다, 국가마다 기밀사항으로 분류하고 철통보안을 하는 겁니다. 아이디어나 꿈, 정보를 도둑맞지 않으려면 일을 이루기까지 숨기는 것이 지혜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10:16). 뱀의 특성 중에 하나가 뼈가 있으나 뼈가 없는 듯 행동하는 것입니다. 자기 속을 드러내지 않는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 속은 알다가도 모르겠어.”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큰일을 이룬 사람들은 대체로 속에 뭐가 들었는지 모릅니다. 오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잠25:2).
올해 ‘잃어버린 것을 찾는 한 해가 되자’는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그러려면 왜 잃어버렸는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잃어버린 이유 중 하나는 속을 다 드러냈기 때문일 겁니다. 일이 성사되기 전에 입방정을 떨어서 그랬을 겁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해서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것을 다 찾아야 하겠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할렐루야!
지혜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요 손대지 않고 코 푸는 것이다
전쟁에 나가려면 무기를 준비하라 지혜가 최고의 병기와 전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