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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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9호 목차 › 옹달샘

밥이나 먹자!

479호 · 2009-05-01

“엄마!”

아들의 목소리에 엄마는 뛰쳐나간다.

“돌아왔구나, 내 아들.”

엄마는 목이 메어 미처 말을 잇지 못하고, 아들만 부둥켜안는다.

“엄마, 죄송해요. 제가 철이 없어서.”

“그래. 이제라도 돌아왔으니 됐어. 엄마는 네가 돌아온 것만으로 족해. 고맙다, 고마워.”

“엄마 맘고생 시켜드려서 죄송해요. 다시는 집 나가는 일 없을 거예요.”

“그래, 그 때 아버지가 진짜 너 집 나가라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야. 네가 하도 말을 안 듣고, 나쁜 친구들하고 몰려다니니깐 홧김에 그렇게 말씀하신 거야. 너 나간 뒤로 네 아버지 얼굴이 말이 아니란다. 말은 안 하시지만, 많이 속상해하셨어.”

“그 때는 그렇게 말씀하시는 아버지가 되게 섭섭했어요. 그래서 ‘그래, 아버지가 그렇게 원한다면 나간다.’ 이런 심산이었는데, 막상 나가보니 갈 데도 없고, 집도 그립고….”

아들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흐른다. 그걸 보는 엄마 마음이 아프다.

“그래, 내 아들 고생 많이 했구나. 그러니 다시는 그러지 마라. 너 고생하고, 엄마 아빠 맘고생하고 서로 못할 일 아니니?”

아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아버지를 어떻게 뵐 지가 걱정이에요. 화 많이 내실 텐데….”

“그냥 잘못했다고 해. 다시는 안 그런다고 하면 돼. 혹시 아버지가 화를 내셔도 너는 가만있어. 알았지?”

사실 엄마는 남편의 반응도 걱정이고, 남편 반응에 대한 아들의 태도도 걱정이다. 저녁이 되자 남편이 퇴근하여 들어왔다.

“여보, 애가 왔어요.”

엄마는 마치 자기가 죄를 진양 말한다. 아버지는 아들을 보고는 놀라 발을 멈춘다.

“아버지, 잘못했어요.”

아들이 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빈다. 아버지는 말이 없다. 엄마는 말이 없는 남편이 걱정되어 애원한다.

“다시는 안 그런대요.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그래도 말이 없던 남편이 아내에게 툭 한마디 던지며 방으로 들어간다.

“밥 안 차리고 뭐해? 애 밥 안 먹여?”

아내는 금세 얼굴이 환해진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빨리 차릴 게요. 얼른 옷 갈아입고 나오세요.”

아이의 얼굴도 따라서 밝아진다.

용서, 굳이 말이 필요 없다.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다. ‘죽는 곳까지 함께 가겠노라’ 큰소리친 베드로가 어린 아이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며 외면했다. 주님은 고통 중에 그의 음성을 들었고, 피 범벅인 눈을 뜨고 베드로를 바라다보셨다.

부활 후, 주님은 베드로를 찾아가셨다. 낙심과 상심으로 의욕을 잃고 그물질을 하고 있는 베드로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숯불에 생선과 떡을 구워놓고 베드로를 맞으셨다. 베드로는 그 분이 자신이 배신했던 주님이심을 알고 죄송한 마음에 어찌할 줄 몰라 할 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요21:12).

용서하신 것이다. 죄에 대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시고 무조건 그냥 용서하신 것이다.

용서란 과정이나 이유가 설명될 필요가 없다. 그냥 용서하면 된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하셨다. 십자가에서 당신을 드려 단번에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다.

그 때 주님이 하신 말씀은 이것 하나였다. “다 이루었다.” 우리를 다 용서하시고 구원하셨다는 것이다. 그 분은 남은 기력을 다해 우리에게 훈계하지도 않았고, 용서에 대한 단서를 달지도 않으셨다. 그냥 용서하셨다.

그 주님은 우리도 이웃에게, 가족에게 그렇게 용서하라고 하신다.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3:13). 요셉이 그의 형제들을 무조건 용서한 것처럼, 주님이 우리를 대가 없이 용서하신 것처럼.

용서는 아름다운 것이다. 사함을 받는 쪽보다 용서하는 쪽이 더욱 아름답다. 사전적 의미의 ‘용서’는 죄나 잘못을 꾸짖지 않고 덮어두는 것이지만, 진정한 용서는 죄나 잘못을 아예 잊는 것이다. 그래서 용서는 조건이 없는 것이고, 단서도 없는 것이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잘못을 용서받기 원하면 그냥 용서해줘라.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따지지 말고, 용서해주는 대신 ‘이렇게 하라’ 그러지도 말고 그냥 용서해줘라. ‘밥이나 먹자.’라고 말해라. 그것으로 모든 것이 용서되었음을 상대도 알게 될 것이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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