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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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지금 당신은 어떤 상태입니까? (마25:31~46)

339호 · 2006-08-23

어느 목사님이 성도들의 신앙이 점차 나태해지고 또한 갈수록 이기주의가 심해져 사소한 것에도 서로 다투며 전도의 열정이 식어가는 것을 보고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주일예배 후 광고를 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교회 장례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들은 검정색 옷을 입고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나오지 않은 성도들에게도 꼭 연락해서 다음 주만은 꼭 참석하도록 해주십시오.”

성도들은 예배를 마치고 나오면서 서로 수군거렸습니다. “교회가 죽었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성도 중에 누가 죽은 거 아냐? 그렇다면 누굴까?” 성도들은 다음 주일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왜 이렇게 일주일이 긴 지…

드디어 주일이 되었습니다. 늘 늦장만 부리고 자주 교회에 빠지던 성도들도 오늘은 일찌감치 검은 정장들을 차려입고는 다들 성전에 모였습니다. 단에는 하얀 꽃이 장식 되어 있었고 긴 관(棺)이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성도들은 도대체 누가 죽었는지 궁금했지만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잠시 후 예배 시간이 되자 목사님이 검정 가운을 입고 단상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장례식을 거행하려고 합니다. 다른 절차는 뒤로 하고 먼저 헌화하는 순서부터 갖겠습니다. 한 사람씩 꽃을 들고 와 고인과 작별을 고해주십시오. 제가 관을 열어 놓겠습니다. 먼저 장로님들부터 올라오십시오.”

그러자 원로 장로부터 단상에 올라 준비된 꽃 한 송이를 들고는 열린 관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관 속을 들여다 본 장로가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밑에 있던 성도들은 화들짝 놀라 장로만 쳐다보았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다음 분 올라오십시오.” 하며 재촉했습니다. 다음 사람도 관 속을 보고는 놀라 소리를 질렀습니다. 단 밑에 내려온 장로에게 ‘누가 죽었기에 그렇게 놀라느냐?’고 물어도 그 장로는 고개만 숙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성도들의 헌화가 끝나자 교회는 숙연해졌고, 누군가 울며 회개하는 소리에 모든 성도들이 소리를 높여 울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은 그제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관 속에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겁니다.”

목사님은 그 속에 큰거울을 붙여놓아 관속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을 보게 한 것입니다.

그 관 속에 당신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무슨 소리냐? 내가 눈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하며 덤벼들 사람도 있을 겁니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영적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 죽음이 무엇입니까? 영혼과 육이 분리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믿음과 행함이 분리되었다면 그것은 영적으로 죽은 것이지 않겠습니까?

요즘 성도들 중에 많은 자들이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배워 성경지식은 정말 많습니다. 어느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고, 신학적으로 보면 이것은 무엇이 잘못되었고, 저것은 누구 이론에 걸리고 하며 논리적으로 말들은 잘 합니다. 머리만 비대해진 겁니다. 머리만 커지니 움직일 수가 있어야지요. 움직이지 않아 다리는 상대적으로 가늘어졌고, 머리 큰 가분수가 되었으니 어떻게 움직이겠습니까? 한 목사님이 제게 성경을 40독했다고 자랑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제가 그에게 “다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말씀을 읽고서라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고 말해줬습니다. 그렇습니다. 창고에만 쌓아둔 곡식은 쥐만 좋은 일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을 풀어먹일 때 곡식이 제 값을 하는 것입니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마11:16,17). 이것은 주님이 통탄하신 대목입니다. 한 마디로 ‘너희의 신앙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신앙이 죽었으니 피리를 분들, 곡을 한들 무슨 반응이 있겠습니까?

오늘 관 속에서 나와야 합니다. 신앙이 살아나야 합니다. 나가 전도하고 외쳐야 합니다. 살아있는 것은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중환자에게서 살 가망이 있는지 없는지 다리를 망치로 두드려보고 반사작용을 보면 안다고 합니다. 그 때 다리가 꿈틀하면 살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당신이 살아 있다면 움직여 주의 일에 전념하십시오.

죽은 사람은 싸늘합니다. 차갑습니다. 같은 교회 성도가 어려움을 당해도, 아픔을 당해도 관심이 없는 것, 힘들어 해도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당신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에게 무슨 사랑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에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마25:42,43).

양주 예수중심교회 황제희 전도사는 바로 옆 군부대의 장병들이 여름이면 땀 뻘뻘 흘리며 훈련받는 것이 안쓰럽고, 겨울이면 혹한에 벌벌 떨며 보초서는 것이 가슴 아파 여름에는 시원한 음료로, 겨울에는 따뜻한 커피로 꾸준히 대접했더니 군 부대장이 찾아와 정말 예수님의 사랑을 느꼈다며 교회 식당을 지어줬다고 이번 목회자 영성 세미나에서 간증했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마25:40)이라고 말씀하셨고,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잠14:31)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살아 있다면 따스함을 가족에게, 이웃에게, 성도에게 전해야 할 것입니다.

인천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강반석 목사는 정말 죽어 관 속까지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입니다. 그는 육체만 죽었다 다시 산 것이 아니라 관 속에서 나올 때 영적으로도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난하고, 병든 자를 찾아 심방 다니기를 마다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밤을 낮 삼아 열심히 뛰어다니며 전도하고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회개하세요. 죽은 신앙을, 도태된 신앙을, 식었던 사랑을 회개하세요. 그래야 왼편의 염소가 아닌 오른편의 양의 반열에 들게 되며 창세로부터 우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게 되고, 영멸이 아닌 영생에 들어가게 됩니다.

가정이 초상집같이 침울합니까? 그것은 당신이 관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살아난다면 당신의 가정은 잔치집이 될 것입니다. 가족을 사랑하고 믿음으로 이끈다면 말입니다. 기업에 회색기운이 감돕니까? 당신이 부활하면 기업이 활기를 찾을 것입니다. 당신이 먼저 열심을 내고 직원들을 격려하고 사랑한다면 기업이 분명히 살아날 것입니다.

우리 교단에 제2의 부흥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흥의 물결이 다시 밀려들까요? 그것은 우리 각자가 살아나면 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살아나면 우리 교단과 교회는 살아나게 됩니다.

관 속을 들여다보세요. 아직도 당신이 누워있는지 말입니다.

성장과 변화가 없는 것은 죽은 것이나 잠자는 것이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께 꾸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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