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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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호 목차 › 옹달샘

세잎클로버

337호 · 2006-08-09

아이들이 뭔가를 찾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너희들 뭘 찾고 있는 거니?”

하고 엄마가 조금 떨어진 벤치에 앉아 물었다.

“네잎클로버요. 근데 없어요. 네잎클로버가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하기에 찾는데 안 보여요.”

아이들의 눈은 여전히 네잎클로버를 찾는데 두고 목청을 높여 답했다. 아이들 말에 엄마도 호기심이 발동해 벤치에서 일어나 잔디 쪽으로 갔다. 아이들이 있는 곳은 그야말로 클로버 밭이었다. 클로버가 무성한 곳에서 아이들은 이리저리 클로버 잎을 젖히며 네잎클로버를 찾고 있었다.

“애들아, 그런데 네잎클로버를 찾는다고 다른 클로버는 발로 막 짓밟아 놨네. 네잎클로버만 귀한 것이 아니잖니? 세잎클로버는 이렇게 막 밟아도 되는 거라고 생각하니?”

엄마의 말에 아이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많은 클로버들을 발로 뭉개고 뜯어내고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게, 우리가 네잎클로버 찾는 데만 정신이 팔려서 그만…”

사람들은 큰 행복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 부귀, 영화, 명예라는 네잎클로버를 찾으려고 그것만을 보고 달려가고 있다. 그래서 세잎클로버를 발로 짓밟고 손으로 따내버리고 만다. 부모를 찾는 시간, 아내와 함께 지내는 시간, 자식들과 놀아주는 시간, 그리고 삶의 여유 같은 것들은 놓치고 살아가고 있다. 대(大)에 눈이 팔려 소(小)가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네잎클로버를 찾았다고 그것이 정말 행운을 가져다주었는가? 우리가 학창시절에 네잎클로버를 찾은 후에 어떻게 했는가? 그저 책갈피에 잘 꽂아 말려두고 가끔 그것을 열어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던가? 네잎클로버를 찾았다는 그 때 잠깐의 행복이었지, 그것이 내 인생을 바꿀 만큼의 큰 행운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부귀영화를 쥔 자들이 정말 행복해 보이던가? 권세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던가?

푸른 밭을 일구고 있는 것은 세잎클로버다. 흔하기 때문에 가치를 발하지 못할 뿐 정작 세잎클로버로 인해 푸르러 보이는 것이다. 당신이 밟고 있는 작은 행복이 정말 가정을 푸르게 만들고, 삶을 푸르게 만드는 것이다.

“거부가 된 다음 자식과 놀아야지. 아들, 딸들아 조금만 기다려.” 하고 있다면, 당신이 거부가 되었을 때 아이들은 이미 장성하여 당신이 필요 없게 될 것이다. “부모님,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이사자리까지만 올라가면 그 때 효도하겠습니다.” 하고 있다면, 당신이 이사가 되었을 때 부모님은 안 계실 지도 모른다. “여보, 50평짜리 아파트 살 때까지만 참아. 호강시켜줄게.” 하고 있는가? 그 때 당신의 아내는 홀로서기를 했을지 모른다.

네잎클로버, 물론 귀하다. 그러나 네잎클로버를 찾느라 세잎클로버를 뭉개면 안 된다. 부귀, 영화, 명예 다 좋다. 그러나 그것을 얻으려고 일상의 행복을 놓쳐서는 안 된다. 진정 행복은 일상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은 행복을 귀히 여길 때 큰 행복도 따라오는 것이다.

오직 네잎클로버만 찾으려고 세잎클로버는 안중에도 없었던 아이들이 엄마의 말을 듣고는 조심스럽게 발꿈치를 들며 세잎클로버를 최대한 밟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었다. 엄마는 이런 아이들을 보며 흐뭇했다. 그 때 한 아이가 소리쳤다.

“와! 찾았다. 네잎클로버.”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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