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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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네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냐? (마 7:6~14)

277호 · 2005-06-15

인천 새성전에 들일 여러 가지 물품을 구입할 때 여러모로 고심을 합니다.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합당하고, 어떤 것이 성도들에게 맞을까 다각도로 생각하다보니 자연 신중에 신중을 기하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성전 안의 의자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대다수의 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긴의자로 할 것이냐, 아니면 혁신적인 것으로 할 것이냐를 놓고 건축의원들이 여러 번 토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긴의자를 피하고 예술회관 같은 개별의자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긴의자에 비해 턱없이 가격이 높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건축위원장한테 “찾아봐라. 분명히 우리가 원하는 가격대의 것이 있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건축위원장은 우리나라 여러 업체를 둘러보더니 그것이 흡족치 않았던지 멀리 중국까지 날아가 의자를 구입해 왔습니다. 그의 열정과 의지가 남다르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찾고자 하는 자가 얻게 되는 하나님 약속의 말씀이 건축위원장을 통하여 이루어짐을 목도하게 되어 너무 기뻤습니다.

찾고자 하는 자가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곧 의욕을 말하는 것입니다. 의욕은 넘지 못할 벽이 없고, 의욕이 넘치는 자 앞에는 장애물이 있을 수 없게 됩니다. 주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누누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구하면 얻고, 찾으면 찾게 되고, 문을 두드리면 열리게 된다.’ 왜 이처럼 반복적인 말씀을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의지를 초월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네가 얻기를 원하느냐? 그렇다면 네 의지를 보이고 의욕적인 자세로 구하라.’ 바로 이것입니다. 아들을 얻기 위한 한나와 재판관을 찾아가 원한을 풀어 달라고 애걸한 과부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의욕은 어떨 때 생성되는 것일까요? 가치를 알 때입니다. 돈에 대한 가치를 아는 자가 돈을 벌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공부에 대한 가치를 아는 자가 박사가 되고, 천국에 대한 가치를 아는 자가 더욱 예수를 위해 뛰는 것입니다. 또한 호기심이 발동할 때 의욕은 불일 듯 이는 것입니다. 콜럼버스가 호기심이 있었기에 신대륙을 발견하게 되었고, 에디슨의 남다른 호기심이 발명왕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도 의욕이 있는 자를 들어 하나님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밤이 맞도록 그물질을 하던 베드로와 열심당원이었던 바울, 죽으면 죽으리라던 에스더, 모두 의욕이 특출했던 자들이었습니다. 의욕은 학력이나 나이를 초월합니다. 모세가 나이 80에 40의 기력이 있었다 함은 가나안을 향한 그의 열정과 의욕이 넘쳤다는 것을 여실히 말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쓰시는 이유도 불타는 의욕과 열정 때문입니다. 제가 공부를 많이 해서도, 인물이 뛰어나서도, 제가 언변에 능해서도 아닙니다. 저는 예수를 알고 나서부터 이제껏 처음 사랑이 식지 않았고, 전세계를 예수 앞으로 인도하고야 말겠다는 의욕이 타올라 하루 24시간이 짧다고 외치며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는 것을 하나님께서 어여삐 보셨기에 부족한 저를 택하여 70여 개국을 맡기신 것입니다. 여러분도 베드로처럼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고, 콜럼버스처럼 에디슨처럼 대발견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하고자 하는 의욕만 있다면 말입니다.

당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입니까? 당신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당신이 열고자 하는 문은 어떤 문입니까? 찾고, 얻고, 열고자 하면 먼저 마음을 일으켜야 할 것입니다. 의욕의 불을 지피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의욕이란 불은 게으름을 떨치고 부지런을 떨어야 이는 것이며, 지속적인 의지가 뒷받침 될 때 계속 타오르며, 지식이라는 아궁이 속에서 타야 바르게 타오르게 됩니다. 그 지식의 아궁이는 바로 하나님 말씀 안을 일컫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一點一劃)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8).’ 우리가 아는 세상의 지식은 순리(順理)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6일째, 만물을 지으신 후,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이 모든 것을 너무 쉽게 악한 것들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거저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제 거저 주시지 않기로 하셨습니다. 찾는 자에게 찾게 하시고, 구하는 자가 얻게 하시며, 문을 두드려야 열리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사랑이 식은 것으로 혹은 변한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더욱 우리를 사랑하신 연고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소풍가면 보물찾기 게임을 하는데 그때 선생님이 보물쪽지를 숨겨놓습니다. 선생님이 보물이 아까워서, 선생님 혼자 다 가지려고 숨겨놓으신 걸까요? 아닙니다. 그것도 교육의 일환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보물을 절대 아이들 손닿지 않는 곳에 숨기지 않습니다.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에 두지 않습니다. 찾으려고만 하면 찾을 수 있는 곳에, 얻으려 손을 뻗히면 닿을 만한 곳에 두십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찾으려면 찾을 수 있게, 구하면 얻을 수 있게, 두드리면 열리도록 하셨습니다. 만일 찾는 데도 못 찾을 때는 하나님께 부탁하면 되는 것입니다.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주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싶은 것은 감나무 아래 돗자리 펴고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지 말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감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내가 사다리를 잡아주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앞에 가기를 주저하는 모세에게 ‘가봐라’ 하신 것이나 같습니다. 예수를 발견하고 바다에 뛰어든 베드로를 예수는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의욕이 없는 자는 죽은 자입니다. 고(故)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에 무조건 안된다고 말하는 자들에게 ‘니 해봤나?’ ‘니 가봤나?’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소경 바디매오가 포기했더라면 그는 평생 소경인 채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큰소리로 ‘다윗의 자손 예수’를 불러 소원인 눈을 떴습니다. 삭개오는 키가 작아 여리고로 들어오시는 예수를 볼 수 없게 되자 뽕나무에 올라가 예수가 지나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의욕적인 발상이 예수를 감동케 하사 예수가 죄인 세리의 집에 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가정의 행복을 잃었습니까? 우선 당신 마음속에 행복을 일구겠다는 의욕을 심고 행복의 구성요소를 모아 보십시오. 가족간에 대화를 하고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면 깨진 가정이 다시 화합할 것입니다. 건강을 잃었습니까? 건강을 찾기 원한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음식을 조절하는 의지가 있어야 하며,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앞서야 합니다. 그 의욕이면 암도 이길 수 있습니다. 기업의 영화를 다시 찾고 싶으십니까?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주입하고, 인재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십시오. 분명히 과거보다 갑절의 영화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을 찾고 싶으십니까? 다시 열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헌신해 보십시오. 초심으로 돌아가면 잃었던 믿음이 생길 것입니다. 세례요한 이후로 천국은 침노하는 자에 의해 침노를 당하고 있습니다.

처마 밑의 제비새끼들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어미가 입으로 먹이를 물어와서 어느 새끼 입에 넣어주는 지 보십시오. 입이 찢어지도록 벌리며 지껄이는 새끼 입에 먹이를 넣어줍니다.

당신이 찾지 못함은 찾지 않음이요,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은 연고이며, 열지 못함은 두드리지 않은 까닭입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당신이 열심히 찾고 구하고 두드리면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들어보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지 못한 크고 놀라운 것들이 당신 앞에 전개될 것입니다. 명작은 열정의 산물임을 아십시오. 할렐루야.

시작했으면 끝을 봐라 명작은 열정의 산물이다

문을 두드리지도 않는데 누가 문을 열어주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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