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펑크났어요
길이 막힐 시간이 아닌데 갑자기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무슨 사고라도 났나?’하고 목을 길게 빼고 봐도 영문은 모르겠고, 길게 늘어선 자동차 행렬만 마치 기차처럼 이어져 있다. 거북이걸음처럼 느릿하게 차가 움직이기를 한참하고 나니 그제야 정체 원인이 눈에 들어온다. 소형차 한 대가 타이어가 나간 모양이다. 도로 한 복판에서 스페어 타이어로 교체하고 있다.
살다보면 인생길에 타이어가 펑크 날 때가 있다. 질주하던 사업이 졸지에 무너져 주저앉고, 성공의 문턱인가 싶었는데 갑자기 ‘펑’하더니 모든 것이 멈춰버리고, 오솔길에서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나타난 날카로운 쇠붙이에 졸지에 행복이 찢겨 펑크 나고 말 때가 있다. 우리는 그 때야 생각한다.
‘아! 스페어 타이어.’
우리는 주님을 스페어 타이어로 생각한다. 잘 나갈 때는 트렁크에 쳐 박아 두다가 인생이 펑크 나서 주저앉을 때야 비로소 주님을 생각한다.
‘아! 주님이 계셨지.’
그리고 트렁크에서 스페어 타이어를 꺼내듯 주님을 우리 인생에 대신 끼어 맞추려 든다. 주님은 우리 삶의 스페어 타이어 같은 대용품이 아니다.
당신이 스페어 타이어를 찾았을 때 트렁크가 비어있다면 어쩌겠는가. 당신이 급할 때 주님을 찾아도 주님이 보이지 않고, 당신이 부를 때 주님이 돌아보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왜 인생이 펑크 날 때만 주님을 부르는가. 왜 인생이 주저앉을 때만 주님을 찾는가. 잘 나갈 때 주님과 동승하면 얼마나 좋을까. 늘 주님과 동행하면 주님이 펑크 날 일을 미리 막으시고 다른 피할 길을 주실 것이며, 평탄한 길로 안전한 길로 인도하실 것인데 왜 그 때는 주님은 뒷전인가 말이다.
주님은 당신이 대접받은 대로 행하신다. 그러니 주님을 스페어 자리에 두지 말고 주된 자리에, 가장 귀한 자리에 모셔라. 그러면 주님도 당신을 가끔 생각나는 스페어로 생각지 않으시고 귀한 자, 주된 자로 여기실 것이다. 운동경기에서도 번외선수는 벤치에서 외롭지 않은가. 번외선수가 감독 눈에 들기까지 얼마나 애를 써야 하는지 아는가. 주님께 스페어 취급받지 않으려면 주님을 당신의 주된 삶의 자리에 늘 모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