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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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믿음의 분량대로 살아라 (롬 12:1 ~8)

270호 · 2005-04-27

기도원호텔을 지을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저녁 식사 때 밴댕이젓갈이 나왔는데 그것이 얼마나 입맛을 당기는지 그만 밥 두 그릇을 뚝딱 해치웠습니다.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 매콤하게 묻힌 젓갈이 이것저것 신경 쓰느라 텁텁해진 입맛을 자극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중이 문제였습니다.

뱃속에서 한 바탕 전쟁이 일더니 그만 설사를 주룩주룩하는 것이었습니다. 공사현장에는 나가봐야 하는데 화장실을 들락달락해야 하니 참으로 난처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고…. 귀신 쫓는 목사가 배 아프다고 하면 또 뭐라 할지 모르겠고요. 그래서 그 후로 다시는 매운 것을 안 먹습니다. 더러 같이 식사하는 성도들 중에 ‘목사님은 믿음 없이 매운 것도 못 드시네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 저는 저한테 맞는 것, 제 분수대로 먹고 살기로 했습니다.

우리교회 교인들 중에는 병원에 가는 것이 무슨 큰 죄인 줄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아프게 하는 것은 귀신인지라 ‘예수 이름’으로 쫓으면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장성한 믿음을 가진 자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연약한 믿음을 가진 자는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아니, 집사가 돼가지고 무슨 병원이야?” 하고 핀잔을 하거나 “믿음이 없구먼.”하고 업신여기는 행위는 정말이지 잘못된 것입니다. 아이가 우유를 먹는 것이 당연하듯 믿음이 연약한 자가 의원을 찾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오히려 병을 이길 믿음이 없으면서 옆 사람 눈치 보느라 끙끙 앓는 것이 죄입니다. 그것은 외식하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면 그들도 딱딱한 것을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좇아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롬14:23).

하나님은 우리를 다 각자 개성 있게, 쓸모에 맞게 만드셨습니다. 그냥 공장에서 똑같이 획일적으로 만들어 내신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를 손수 계획하시고 창조하셨습니다. 우리의 그릇의 크기가 각기 다르고, 우리의 쓰임새가 각기 다르고, 우리의 달란트가 각기 다르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동일한 잣대로 사람들 측정해서 ‘너는 이것에 미달이다.’라고 판단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맹점이 바로 그것 아닙니까? 아이의 장점이나 특기는 무시 되고 암기식 위주의 교육을 하기 때문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입니다. ‘이 아이는 수학능력은 없으나 문학적 소질이 있고, 저 아이는 공부는 취미가 없지만 체육에는 남다른 재주가 있다.’ 이렇게 평가되어야 옳은 교육제도가 되는 것 아닙니까?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이 받은 은사가 다 다릅니다. 또한 달란트도 다릅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섬기는 일을, 어떤 이는 가르치는 일을, 구제하는 일을, 어떤 이는 다스리는 일을 각기 하게 됩니다.

그러니 어떤 일이 더 좋고 나쁨이 없고, 또 어떤 것이 더 중요하고 더 사소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각기 자기가 맞은 일, 자기가 잘하는 일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의사가 좋은 직업이라고 다 의사하면 농사는 누가 짓고 옷은 어떻게 입고 살겠습니까? 세상에 직업이 다 어우러져야 사람들이 살기에 합당하듯 교회 안에서도 각각의 역할이 다 중요한 것입니다. 다 연합하여 하나님의 일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다 사도겠습니까? 다 선지자겠습니까?

미국의 유명한 갈보리교회의 척 스미스 목사는 한때 빌리 그래함 목사와 늘 자신을 비교했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저렇게 많은 군중 앞에서 예수를 증거 하는데 나는 왜 겨우 70명의 성도 앞에 서야 하는 것일까?’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용단을 내렸습니다. ‘나도 빌리 그래함처럼 해보리라.’ 하고는 단상을 없애고 무선 마이크를 사용하며 흉내를 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던지 그는 그만 설교를 망치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실망한 척 스미스목사는 목회를 접고 공사장에서 일했습니다. 그런데 공사장에 있던 사람들이 그가 한 때 목사였다는 소문을 듣고는 설교를 해보라고 했습니다. 다시는 설교를 하고 싶지 않았던 척 스미스는 하도 사람들이 간청하는 바람에 원래 자기 방식으로 설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은혜를 받기 시작했고 점차 그 수가 늘어났습니다. 힘을 얻은 척 스미스는 다시 목회를 시작해서 미국에 300개의 교회를 세우는 큰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생긴 대로 사는 것입니다. 다 빌리 그래함 목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 분수대로, 자기 받은 달란트대로 사는 것이 영적예배의 시작인 것입니다. ‘나는 왜 저 사람처럼 할 수 없을까’ 하고 낙망할 일이 아닙니다. 내 안의 있는 달란트를 찾으면 됩니다. 없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자기가 낳은 알 하나 책임지지 못하는 타조도 달리는 재주만은 탁월하다고 욥기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장점도 주셨고, 달란트도 분명히 주셨습니다. 그것을 찾으면 인생이 생기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식에게 대리만족을 느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너는 꼭 판검사가 되라’ ‘너는 피아니스트가 되라’고 강요합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전혀 공부에 흥미가 없거나, 음악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아이는 죽을 맛일 겁니다. ‘억지 춘향’이 정말 힘든 거거든요. 그러니 성적은 안 올라가고, 피아노 실력은 안 늘고 그러다보면 삐뚤어지는 겁니다. 저도 한 때 아이들을 제 나름대로 키우려고 했습니다. 둘째 녀석이 성악을 하고 싶다고 하는데 ‘사내가 무슨 노래냐?’며 ‘목사를 해야지’라고 강요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자기에게 맞는 것을 해야 신바람이 난다는 것을 늦게 알았습니다. ‘평양감사도 자기 싫으면 못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는 부흥사가 체질에 딱 맞습니다. 사실 총회장이란 직함이 어떨 때는 짐이 될 때도 있습니다.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에서 귀신을 쫓아내며 복음을 마음껏 전하는 것이 제가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서남북을 뛰며 주님을 전파하는 일이 피곤하지 않고 신이 납니다. 달란트대로 행하면 신이 나는 것입니다.

내 분량대로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간장종지가 어떻게 함지박이 됩니까? 간장종지는 간장을 담아야 행복하지 함지박이 되어보겠다고 자신을 찢으면 얼마나 힘들고 아프겠냐는 겁니다. 그렇다고 함지박보다 간장종지가 못합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발이 손보다 못합니까? 눈이 코보다 낫습니까? 아닙니다. 다 각각의 위치에서 맡겨진 일을 하면 신체가 강건하듯, 주 안에서나 사회에서 자기의 분수대로 살면 되는 것입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배탈이 안 나듯 말입니다.

한 농가에 개와 닭이 살고 있었습니다. 개는 밤새 도둑을 지키느라 잠을 설쳤는데 닭은 동이 틀 무렵에야 일어나 지붕에 올라가 ‘꼬끼오’하고 울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늘 주인은 ‘닭아, 고맙다. 덕분에 일찍 일어나게 되었구나.’하며 닭만 칭찬하는 것입니다. 개는 은근히 부하가 치민 것을 참고는 결심합니다. ‘내일은 내가 지붕에 올라가 주인을 깨워야지.’ 다음 날, 개는 닭보다 먼저 지붕에 올라가 동이 트기만을 기다리다가 ‘멍~’하고 짖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놀라 뛰어나와 “아니, 집안 망할 일이 있나? 어디 개가 지붕에 올라가고 난리야. 얘들아, 저 개를 잡아 당장 팔아버려라.”고 했습니다. 제 분수를 모르고 날뛴 경우입니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게 이와 같이 명하노라’(고전 7:17).

자녀들의 장점을 발견하고 특기를 살려줍시다. 그러면 아이들이 그 분야에 최고가 될 것입니다. 사회에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종사하면 고단하지 않고 남들보다 잘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남들이 하니까 덩달아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에 봉사하면 됩니다. 자기 믿음대로, 자기 분수대로 사는 것이 제일입니다.

너는 유일한 사람이다 너의 개성과 달란트를 찾아라

고래는 바다가 제일이고 호랑이는 산에서 으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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