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화는 가치를 아는 자의 것이다 (마 13 : 44 ~52)
“아버지, 이것을 창피해서 어떻게 학교에 내요?”
지금은 장성한 아들이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학교에 납부금이 있을 때마다 그것을 몽땅 백 원짜리로 주었더니 아들이 울먹이며 제게 한 말입니다. 사실 어린 마음에 백 원짜리 동전 뭉치를 선생님께 갖다 드리려니 얼마나 난감하고 창피했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의붓아비도 아닌데 아들에게 그렇게까지 한데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돈에 대한 가치를 알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만 원권 몇 장으로는 돈의 가치를 가르치는 데 뭔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아들들이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그때는 그게 죽을 만큼 창피했는데 그 일이 정말 돈의 가치를 알게 했다.’고 제 사촌 동생에게 넌지시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아비의 마음을 알아준 아들들이 고맙기만 합니다.
아프리카 아이들이 축구공처럼 차고 노는 것이 번쩍이기에 보았더니 다이아몬드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몰랐기 때문에 그것을 발로 차면서 놀았던 것입니다. 맨발에 먹을 것이 없어 배만 볼록 나왔으면서도 말입니다. 가치를 모르는 자에게 진주면 무엇하고, 백지수표면 무엇하겠습니까? 눈을 떠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밭에서 보화를 발견한 자, 값진 진주를 발견한 장사, 그리고 큰 고기만을 고르는 어부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들 모두의 공통점은 바로 그것들에 대한 가치를 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가치, 천국의 가치를 아는 자는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그것을 산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예수가 누구시며,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이 무엇인 줄 제대로만 안다면 나가서 외치지 않아도 그들은 다 예수 앞으로 자진해서 나와 ‘나를 구원해 달라.’고 아우성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다른 것에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세상에서 방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화는 가치를 아는 자의 것입니다.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농촌에 폐가(弊家)를 보러 다녔다고 합니다. 잘 보수해서 노년에 자연과 벗하고 살려고요. 한 집에 가니 벽지가 두텁게 여려 겹으로 붙여져 있는데 한 쪽 벽지 벗겨진 곳에 글쎄 추사(秋史) 김정희가 쓴 글이 언뜻 보이더랍니다. 그래서 얼른 그 집을 구입했다고 합니다. 전에 살던 사람은 그 글씨의 가치를 몰라 그 귀한 것을 벽지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아마 그 글씨가 추사의 것으로 알았다면 그는 횡재로 ‘고생 끝, 행복 시작’이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미국이 알래스카를 얼마에 구입했는지 압니까? 겨우 미화 720만 불을 주고 러시아로부터 구입했습니다. 러시아는 무용지물인 땅을 팔았다고 좋아했지만 알래스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습니다. 그 안에 엄청난 원유가 숨겨져 있었던 것을 러시아는 몰랐던 것입니다. 그것을 알았을 때는 너무 늦고 말았지요.
지금 몽골에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몰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업가들은 몽골의 가치를 잘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급 인력이 값싸고 풍부하다는 것과 너른 땅, 그리고 까다롭지 않은 제반요건들이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어 기업들이 앞 다투어 몽골에 진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가치를 파악하는 혜안, 선견력이 있어야 영·혼·육에 성공을 가져옵니다.
이번 멕시코 라디오라마(RADIORAMA)방송국에서 인터뷰를 하는데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목회도 사업입니까?”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물론입니다. 목회도 사업입니다. 이익을 남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는 것이 남는 장사입니다. 예수님은 뛰어난 사업가이셨습니다. 그래서 열 달란트를 남긴 자에게 한 달란트를 빼앗아주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제게 “왜 힘들게 그 멀리 남미(南美)와 러시아권 쪽으로 집회를 자주 나가십니까? 미국이나 일본처럼 선진국에 가면 고생도 덜하고 거리도 가까운데 말입니다.” 하고 묻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제가 장거리 비행으로 고생하는 것이 안타까워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남미나 러시아권의 가치가 남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것을 마다할 수 없습니다. 그곳은 영적 황금어장입니다. 열 달란트를 가지고 열 달란트를 남길 수 있는 곳이 바로 그곳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큰 물고기만을 골라 일을 합니다. 즉 쓸만한 목사를 택하여 성령세례를 주고 제자로 키웁니다. 저는 그들의 이력서를 보지 않습니다. 그들의 달란트를, 그릇의 크기를 보고 씁니다. 그들은 지금 자기 나라에서 가장 큰 교회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사업은 같은 투자로 많은 것을 남겨야 성공했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가치를 아는 자는 지금 보이는 것이 없더라도, 당장 손에 잡히는 것이 없더라도 멀리 보고 크게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은 가치를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우리는 그 날의 가치를 압니다. 우리는 그 날의 상을 압니다. 그래서 지금 세상 사람이 볼 때는 얽매여 보이고, 무식하게 보이는 길을 자청해서 가는 것입니다. 러시아 쪽에서 보면 알래스카를 산 미국이 어리석게 보였습니다. 또 전 소유를 팔아 땅을 산 사람이 참으로 무지해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 지혜로운 자요, 혜안이 열린 자였듯이, 좁은 길을 가는 우리가 지금 비록 어리석게 보일지 몰라도 그 날 그들은 우리와 함께하지 않은 것을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9, 10).
우리는 우리 안에 보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가 능치 못할 일이 없으며, 장래의 일을 알 뿐 아니라 의롭게 하시며, 우리를 가르치시니 그것은 값진 진주보다 더욱 귀한 것이 분명합니다. 또한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속도 알게 하시니 그것을 사모해야 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이 보화를, 값진 진주를 잃어버리지 않게 늘 기도해야 합니다.
사업을 하건, 목회를 하건, 가정을 꾸리건 가치를 알면 분명히 성공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고물상 눈에는 남들이 버리는 고물이 다 돈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인천교회에 심을 정원수를 구하러 정읍에 다녀오면서 보니까 산에 있는 나무에 투자하는 것도 충분히 장래성이 있고 가치가 있는 사업 같아 보였습니다. 사업도 눈을 뜨면 성공하게 됩니다. 목회 역시 가치를 알면 성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를 찾아오신 것을 알았다면 어디에 가치를 두어야 할지 금세 알게 될 것입니다. 배부른 자들은 고기를 줘도 감사를 모릅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는 라면 한 그릇에 목이 멥니다. 그러니 가난한 자를 찾아가면, 병든 자를 찾아가면, 외롭고 버려진 자를 찾아가면 목회는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물고기를 잡으려면 물이 흐르는 곳에 그물을 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혼을 할 때도 그 사람의 현재 외형만 보지 말고 그 사람의 진가를 발견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하나님도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고 했습니다. 중심이란 곧 그 사람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거든요.
전쟁에는 왕도(王道)가 없습니다. 이기는 것이 장땡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왕도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 받는 지혜입니다. 가치를 발견하는 것은 또 다른 이름의 지혜인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그 지혜로 영·혼·육에 성공을 거두어 세상의 본이 되고 남에게 꾸어주며 복음을 전파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전쟁에는 왕도가 없다 전쟁은 이겨야 한다
이력서를 보지 말고 그 사람의 가치를 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