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의 전략에 속지 말라 (히 2:14~18)
지난 해 제가 뇌출혈로 쓰러져 잠시 정신을 잃은 적이 있었습니다. 한참 후에 의식이 돌아오자 저는 바로 기도했고, 다음 날인 주일에 4부 예배까지 의자에 앉아 설교를 했습니다. 넘어질 때 코가 깨지고 얼굴에 상처가 났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숨길 수 없어 그간의 일을 다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끝에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마귀란 놈이 사람을 잘못 건드렸습니다. 제가 이대로 쓰러질 사람 같습니까? 누구 좋으라고요? 이번 사건이 오히려 기폭제가 되어 더 열심히 귀신을 쫓고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정말 귀신녀석들이 사람 잘못 골랐습니다.”
귀신을 쫓다보면 ‘이초석, 너만 죽이면 돼.’ 하고 난리를 칩니다. 악한 것들이 저를 쓰러뜨리려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제가 귀신을 내어 쫓으니 그들에게는 원수이고 그러니 죽이고 싶겠죠.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저를 넘어뜨리면 저를 따르던 성도들이 신앙에 갈등하여 흩어지고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계산에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귀신을 내어 쫓던 목사가 넘어졌대. 하나님이 있기는 한 거야?” 이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귀신은 우리를 가난하게 하고, 병들게 하고, 다투게 하고, 나쁜 길로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닙니다. 악한 것들은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어 하나님을 원망하게 하고, 병들게 하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의심하게 하며, 서로 다투게 하여 하나님과 갈라서게 하고, 죄를 짓게 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네들이 갈 수밖에 없는 지옥으로 함께 끌고 가려는 것이 그들의 최종 목적입니다.
욥에게 재산이 다 날라 가고, 자식이 죽고, 자신의 몸에 악창까지 나는 극도의 고난이 한순간에 몰려왔습니다. 욥이 그런 모진 고난을 당하는 것이 마귀에게 어떤 유익을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마귀가 원하는 것은 욥의 재산도, 아들들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욥의 아내가 그러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욥은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요 취하신 이도 하나님이시다’라며 끝까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결국 마귀는 욥에게 손들었고, 하나님은 욥에게 이전보다 갑절의 영광과 부를 안겨주셨습니다.
악한 마귀의 전략을 알면 그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고, 반석 같은 믿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마귀는 ‘내가 마귀다’라고 이름표를 달고 오지 않습니다. 달콤한 이성으로, 환상적인 세상의 것으로, 보암직한 재물로 위장하여 다가와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늘 성령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순간 마귀의 전술에 넘어가게 되고, 마귀가 박아놓은 쐐기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되어 지옥행 열차를 타게 되는 것입니다. 악한 마귀는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꼬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게 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인간 모두를 지옥으로 끌고 갈 절호의 찬스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혈과 육을 입고 이 땅에 오사 십자가를 지심으로 죽음의 권세를 쥐고 있는 악한 마귀를 물리치시고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며 종노릇하고 있는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마귀는 죽이는 영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살리는 영입니다.
살다보면 실수할 때도 있고, 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그 때 마귀는 ‘너는 죄인이야. 죄인의 몸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낯을 뵐 수 있겠느냐?’라고 말합니다. 마치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동산 나무숲에 숨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 때도 하나님은 ‘아담아, 아담아 어디에 있느냐?’ 하시며 아담을 부르셨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를 애타게 부르십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1:18).
환자라야 의원이 필요한 것처럼, 죄인을 찾아 예수가 오신 것이니 아무 염려 말고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는 사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악한 마귀의 사슬에 얽혀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집을 나간 탕자가 자신의 죄에 눌려 영원히 아버지를 찾지 못했다면 그는 평생 쥐엄나무 열매나 먹으며 남의 집 종살이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아버지께로 오니 다시 귀한 아들이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오면 마귀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됩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탕자에게 이전 일에 대해 일체의 언급이나 질책 없이 그저 돌아온 자식이 기뻐 가락지를 끼우고 잔치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오래 전의 일입니다. 한 청년이 땅끝예수전도단 본부에 찾아왔습니다. 그 때는 본부 사무실이 고속터미널 옆에 있던 시절입니다. 그는 실수로 사람을 찔러 청송 감호소에 수감되었다가 뇌종양 판정을 받아 출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2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병원 측의 통보로 실의에 빠져 지내다 죽기 전에 좋은 일이라도 해야겠다고 장기 기증할 곳을 찾다가 터미널 옆에 있던 우리 본부 사무실로 오게 된 것입니다. 마침 이시대목사가 그를 맞았는데 사연을 다 들어본 이시대 목사가 “당신이 살 방법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십시오.”라고 말했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이 청년은 그 때부터 예수를 믿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그가 2개월, 3개월이 지나도 죽지 않고 오히려 안색이 좋아졌습니다. 몇 개월이 지났을 때, 하루는 이 청년이 이시대 목사를 찾아와 취직을 했다고 감사를 표했습니다. ‘어디에 취직을 했냐’는 말에 “나이트클럽의 뒤를 봐주기로 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시대 목사는 “너 거기가면 죽어.”라고 말렸지만 그는 결국 그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3년쯤 지났을 때 바싹 마른 한 청년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바로 그 청년이었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무슨 말이냐? 돌아와 주어서 고맙다.” 그 후 그는 변화되었고, 지금 신학교에 들어와 열심히 공부하며 봉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병도 다 나았습니다.
작년 봄에 시카고의 나훔 목사와 동행한 콜롬비아에서 온 목사를 기억할 것입니다. 그는 마피아 중간보스였습니다. 그러니 그의 손에 죽어나간 사람이 얼마이겠으며, 그가 무슨 일을 했는가는 짐작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나훔 목사를 만나 예수를 알고 변화되어 목사가 되었고, 지금 콜롬비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럴 수 있냐고요? 그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그의 죄를 완전히 씻어버렸으니까요. 기름때에 찌든 사람이든, 진흙탕에 빠진 사람이든 목욕탕에 들어가면 동일하게 깨끗하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듯, 큰 죄든 먼지 같은 죄든 다 예수의 보혈로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자식은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버리지 않습니다. 징계는 할 수 있으나 절대 호적정리는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우리가 실수했다고, 죄 지었다고 버리지 않습니다. 자식이 잘못했다는데 냉정할 부모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오히려 집 나갈까봐 더 신경 쓰고 다독거리는 것이 부모마음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여기지 못하기 때문에 그 앞에 나가 용서를 빌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웃집 아저씨 정도로 여기기 때문에 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제일 좋아하는 줄 압니까? 마귀입니다. 집 나가면 누가 채갑니까? 깡패나 포주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십니다. 그 분도 시험을 받으셨고, 고난을 받으셨기에 시험당하는 우리를, 고난당하는 우리를 너무 잘 이해하시고, 그것을 이길 능력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어서 예수께로 나오십시오. 밧세바를 취한 다윗의 회개를 받아주신 하나님이 당신을 용서하실 것입니다. 마귀전술에 빠지지 말고 어서 예수께로 나아오십시오.
귀신의 존재는 인정하되 그 능력은 부인하라
환자에게 의원이 필요한 것처럼 죄인이라야만 예수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