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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신분에 걸맞는 자가 되라 (요 10:7 ~18)

263호 · 2005-03-09

가정이 숱하게 깨져나가고, 기업이 몰락하고, 교회가 세속화되고 분열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각자 자기의 신분을 잊었기 때문이며, 그 신분에 걸맞게 행동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번 신학교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을 향하여 “이제 여러분들은 신학생이 아니라 주의 종이 되었다. 그러니 주의 종답게 행동하라.”고 강조했습니다. 졸업을 하고도 아직 학생티를 벗지 못하고 있다면 졸업장은 받았을지 몰라도 아직 미졸업자인 것입니다.

요새 가정의 폐단이 어디서부터 초래되었습니까? 부모가 부모답지 못하기 때문에 기강이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기 때문에 자녀들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어머니가 어머니답지 못한데 어느 자식이 그 품에 달려들겠습니까? 그래서 방황하는 청소년이 많고, 비행청소년들이 늘고 있는 것입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주가 자신의 배나 채우고, 회전의자나 돌리며 억압하는 등 사주답지 못하다면 누가 그 밑에서 인생을 바쳐 일하겠습니까? 죽 쒀서 개주는 격인데 누가 땀흘려가며 일하겠냐는 겁니다. 그러니 인재들이 빠져나가고, 허점을 이용하는 자들로 기업은 도산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목사가 세상으로 흐르고 사리사욕만 채우려고 한다면 거기에 거할 양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도들에게 무거운 멍에만 지우고, 되레 성도들의 동정이나 받으려 하고, 목사가 성도들에게 짐만 된다면 한 집 넘어 교횐데 그 교회에 남아있겠느냐는 말입니다. 삯군 목사에게 누가 자신의 영을 맡기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문제의 자녀는 없다. 문제의 부모가 있을 뿐이며, 문제의 사원은 없다. 문제의 사주가 있으며, 문제의 성도는 없다. 다만 문제의 목사가 있을 뿐이다’라고 누누이 말하는 것입니다. 권위만으로는 다스릴 수 없습니다. 먼저 본을 보여 마음으로 복종하게 해야 지도력이 창출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모답고, 사주답고, 목자다워지려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먼저 깨끗해야 합니다. 부모가 도적질하면서 자식들에게 ‘너는 반듯하게 자라라’고 한다면, 세금이나 포탈하는 사주가 사원들에게는 ‘눈 감고 아웅 하지 말고 정직하라’고 한다면, 생활의 본이 되지 못한 목사가 성도들에게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라.’ 고 한다면 그것은 코미디요, 난센스일 것입니다. 정직하고 분명하면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습니다. 담력이란 깨끗함에서 표출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시24:3,4).

둘째는 공의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즉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면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마치 배의 한 쪽에 사람이 치우쳐 앉으면 그 쪽으로 넘어가는 것과 동일합니다. 부모가 공부 잘하는 자식만 편애하면 다른 자식은 상처받아 밖으로 돌게 되어 있고, 형제간에 불화를 낳게 됩니다. 기업의 사주가 귀가 얇아 아첨꾼의 말만 듣고 일을 처리하게 되면 분명히 잘못된 결정으로 사주의 체신이 우습게 됨은 물론 기업에도 치명타를 입게 될 것입니다.

컴퓨터계의 대부인 빌 게이츠는 ‘고객의 불만이 최대의 자산’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고객들이 쏟아놓는 불만을 수렴하고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매진하여 오늘날 당대 세계 최대의 기업이 될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목사가 선물이나 들고 오고, 돈 있고 명예나 있는 사람에게 치우친다면 그 교회의 장래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저는 어느 목사가 성도가 사준 냉장고 때문에 그 앞에서 제대로 설교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가슴을 찢고 싶었습니다. 냉장고 하나 때문에 그 사람의 비위나 맞추고 할 말을 못한다니…. 그것이 어디 목사입니까? 냉장고 없다고 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목사가 목사답지 못할 때 그는 이미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기회는 공평하게 주시나 장래에 심판은 공정하게 하실 것입니다. 즉 알곡과 쭉정이가 똑같이 햇볕을 쬐나 나중 알곡은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뽑아 불살라 버리실 것입니다.

셋째는 노력하는 자여야 합니다. 아버지가 퇴근하여 매일 TV나 보고 잠만 자면 그 자식도 알게 모르게 닮아갑니다. 아브라함을 보고 자란 이삭이 순종을 배웠듯이 부모는 아이들의 거울입니다. 사주가 지식과 정보에 무지하다면 어떻게 기업을 이끌어 갈 수 있겠습니까? 목사가 기도하지 않고, 성경을 상고하지 않고 단에 서면 분명히 세상 이야기나 하고 말 것입니다. 들어간 만큼 나오는 법입니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발전이란 있을 수 없고, 발전이 없다는 것은 곧 퇴보를 의미하는 것이니 곧 자멸하고 말 것입니다.

저는 늘 사전을 끼고 삽니다. 언어영역은 물론 일반 상식에 관한 모든 것을 익히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야 외국 집회에 나가 그들의 문화와 풍습에 맞춰 행동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 인생의 사전, 진리가 수록된 성경을 늘 상고함으로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고, 인생에 성공하는 법과 지혜를 배웁니다. 부단한 노력이 오늘의 저를 만든 것입니다. 노력이 가장 좋은 스승이며, 가장 큰 무기인 것입니다.

왕이 되려면 왕도를 익혀야 합니다. 그래야 왕다운 왕이 될 수 있습니다. 결혼하여 자식을 낳으면 부모가 됩니다. 그러나 부모다운 부모가 되는 도(道)도 있습니다. 부모의 도를 익힐 때 진정한 부모요, 부모다운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또 단체의 장도 그 신분에 맞는 행동과 사고를 지녀야 합니다. 지금은 무력이 통하는 시대도 아니고 맹종이 먹히는 시대도 아닙니다. 사령탑이 사령탑다울 때 소리치지 않아도 그를 따르고 순종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영은 영을 알아봅니다. 목사가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말씀을 묵상하고 열심히 성도를 돌보면 성도가 먼저 알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고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자신들을 한 번 돌아보십시오. 과연 ‘나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고 있는가?’ 하고 자문자답해 보십시오. 아니, 주위의 평판을 한 번 들어보십시오. ‘저 아줌마는 교회집사다워.’ ‘저 사람은 예수중심교회 다니는데 과연 달라.’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를 보이므로 믿지 않는 자를 구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믿지 않는 남편을 구원하는 방법이요?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면 됩니다. 진실로 남편을 사랑하고, 부모를 공경하며, 매사 사랑으로 대하고, 지혜로운 여인이 된다면 아무리 쇠심줄 같은 남편이라도 주 앞으로 끌려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아내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벧전 3:1).

하나님 자녀로 사는 길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면 됩니다. 썩어져 가는 곳에 소금이 되어 녹고 어두운 세상에 광명을 주면 됩니다. 그리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로 세상의 본이 되면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악한 것들을 쫓아내고, 예수 이름으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여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매일 궁상이나 떨고 있다면, 건강하지 못하고 연약한 모습이라면 믿지 않는 자들이 ‘너희가 믿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비웃을 것입니다. 자신의 신분을 지키면 세상에 짓밟히지 않습니다.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는 법입니다.

기계의 톱니바퀴가 조금만 헐거워도 기계는 힘을 받지 못합니다. 부모가 함량미달이면 가정은 삐걱거리고, 사주가 사주답지 않을 때 기업에 위기가 오며, 목사가 목사답지 못할 때 교회는 문을 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삽시다. 할렐루야!

삯군 목자가 될 것인가 선한 목자가 될 것인가

사랑은 공의요 공의는 심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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